GJCU 연 Quarterly Webzine 2015년 Autumn 제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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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칼럼
아동복지상담학과 08‘ 엄익수 한국 로타리 청소년사업단장 인터뷰
  • 인터뷰 일시 : 2015년 10월 23일(금)
  • 인터뷰 대상 : 허금임 학우(현 골판지공예가 겸 미술치료사)
  • 인터뷰 장소 : 국제사이버대학교
  • 인터뷰어 : 국제사이버대학교 입학홍보팀 최재욱 직원

 우리는 흔히 새로운 분야나 방법을 생각하고, 창조해낸 사람을 ‘개척자’ 라고 부릅니다. 無에서 有를 만들어 내는 것에는 엄청난 고통이 수반된다는 말이 있듯, 개척자들의 위대한 업적 뒤에는 저마다의 시행착오와 삶의 희생, 어려움이 동반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개척자의 이러한 과정은 그의 업적과 함께 위대한 후일담으로 회자되기도 하고, 그 사람을 롤모델로 삼은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교과서가 되기도 합니다.
이번 2015년 웹진 연 가을호에서는 [골판지공예] 라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공예분야의 개척자이신 허금임 학우님을 모시고 그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살아온 삶, 그리고 배움의 의미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최재욱  인터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인터뷰 글을 읽으시는 웹진 독자 여러분께 인사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허금임  안녕하세요 재학생 및 동문 여러분! 저는 올해 2015년 상담심리치료학과 1학년에 입학한 허금임이라고 합니다. 웹진 연의 동문인터뷰를 하게 되어 영광이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 인터뷰를 하기 위해 의정부에서부터 운전을 하고 오다 보니, 산중마다 낙엽들이 져 가을의 색이 너무 아름답더군요. 여러분도 아름다운 가을을 충분히 만끽하고 계신지요. 인터뷰에 나올지 모르겠지만 마침 가을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옷을 입고 와봤습니다.(웃음)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살아오면서 겪어온 많은 일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독자 여러분과 많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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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욱  상담심리치료학과장이신 이주연교수님께 허금임 학우님을 처음 소개받았을 때, 제가 주목했던 타이틀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골판지공예가’였습니다. 유아교육을 전공하시면서 골판지공예를 시작하시게 되었다고 들었는데 과거 유아교육을 전공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허금임  10대때 제가 다니던 교회에 권사님이 한 분 계셨는데, 한국어린이선교원 신학교 몬테소리 교수님이셨어요. 그분께서 학교와 학과를 추천해주셨고 유아교육과를 알게 되었죠.

저는 사실 어릴 적 미술에 재능이 있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고 대학 전공으로 선택하고 싶었는데, 집안 형편 상 돈이 많이 드는 미술을 전공할 수 없었어요.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유아교육을 통해 미술학원의 선생님으로 활동하는 것이었죠.

막상 대학에 입학하니 현실이 너무 가혹했어요. 대학생들이 공부하는 오전에는 학비를 벌기 위해 유치원 보조교사로 일했고, 오후에 공부를 할 수 있었죠. 사이버대학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전혀 없으니 일을 병행해도 크게 어려움이 없지만, 당시 저는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한건지, 대학을 다닌건지 알 수 없을만큼 힘든 생활을 이어갔어요. 당연히 친구들과의 관계도 거의 없었고 대학을 다니는 것에 아무런 흥미를 느낄 수 없었죠. 지금도 추억이 너무나도 부족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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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성경을 읽던 날이 있었어요. 그 때 제 눈에 들어온 성경구절이 있었어요. ‘네가 가라, 내 양을 먹이라’ 라는 말씀이었죠. 너무나도 힘든 시기였지만 깊은 울림이 마음속에 전달되었어요. 어렵게 졸업했지만, 그때의 울림을 기억하며, 아이들을 돌보고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죠. 10년간 아이들을 엄마의 마음으로 지도하며, 미술활동을 겸하게 되었어요.

최재욱  오랫동안 아이들을 지도하던 중에, 골판지를 이용한 공예를 개발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허금임  하루는 아이들에게 종이로 하는 만들기 지도를 하는 날이었어요. 종이로 하는 만들기에는 종이접기와 종이감기라는 종류가 있는데, 종이감기는 15CM정도의 바늘을 사용해서 종이를 말아 모양을 내는 공예죠. 그런데 막상 종이감기를 해보니 공예용 바늘에 손가락이 찔리는 아이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아이들은 도구를 잘 다루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데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면서도 계속 상처를 입는 모습이 너무 마음 아팠어요.

종이감기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겠구나 싶어 대용으로 사용할 재료가 무엇이 있을까 다양한 소재를 고민하던 중 골판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골판지를 가져와 종이감기처럼 둘둘 말아봤더니 일반종이에 비해 형태가 금방 커졌어요. 그리고 골판지는 울퉁불퉁한 질감이 있는데 오감을 자극하면서 정서발달과 두뇌발달에도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별도의 도구가 필요 없이 골판지를 말아서 손가락으로 조금만 누르면 다양한 형태로 쉽게 변형이 되었어요. 물방울도 되고, 토끼모양도 되고. 하트모양도 몇 번만 눌러주면 쉽게 완성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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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적용시켜봤죠. 결과는 제 기대 이상이었어요. 아이들이 이 속에서 창의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발견했고, 설레었죠. 그때부터 골판지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최재욱  그렇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계기로 우리나라 최초의 골판지 공예 전문서적도 출시하시게 되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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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금임  네. 책을 팔아서 유명해지겠다, 이윤을 취하겠다는 목적이 아니라, 이 책을 읽고 많은 교사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아이들을 지도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썼어요. 그리고 그간 밖에 나가 일을 하는 엄마 밑에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고 지혜롭게 자랐던 아들에게 바치는 책이기도 했어요. 엄마가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여기 앞표지의 모델이 저희 아들이에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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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욱  결국 이 책은 전국에 엄청난 유명세를 타며 교보문고 유아교육 부분 베스트셀러 3위까지 차지하게 됩니다. 굉장히 뿌듯한 순간이었을 것 같습니다.

허금임  네 보람되고 감사한 일이였죠. 비록 당시에 제가 너무 아무것도 모른 채 책을 출간하겠다는 마음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집안경제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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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출판된 허금임 학우의 책. 교보문고 유아서적 베스트셀러에 오랜 기간 동안 랭크되어있었고, 번역본이 미국까지 출시되었을 뿐 아니라 미술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의 수업자료로도 사용되었다. 꽤 많이 재판되었지만 정작 출판사와의 부당계약으로 작가에 대한 고료는 전혀 받지 못했다고)

최재욱  책이 출판되고 나서부터 제 2의 인생을 사셨던 걸로 압니다. KBS 유아체능단을 통한 전국 투어 세미나를 다니시면서 허금임이라는 골판지 공예가로서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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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금임  그렇죠(웃음) 사실 초기에는 많은 문제들이 있었어요.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위한 재료는 제가 밤을 새워서라도 준비하면 되었지만, 전국단위의 강의를 하게 되니 재료가 없었어요. 당시엔 문구점 어디에도 지금처럼 형형색색의 골판지를 팔지 않던 시기였죠. 미술학원 교사였던 제가 종이를 제조하는 공장들을 전전하며 아이들을 위한 골판지를 직접 만들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기 시작했어요. 당시엔 꽤 큰돈이었던 1천만원을 구해 공장 관계자들을 만나고, 공예용 골판지 제작에 들어갔죠.

최재욱  개척자로서의 용기가 엄청나셨네요. 아무런 사업적 기반도 없던 시절이셨을 텐데, 쉽게 공장에서 제품생산을 해주던가요?

허금임  아니었죠.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한숨이 나올 정도로 힘들었어요. 심지어 제품 생산단계까지 들어갔던 골판지 공예용 제품의 재단(종이를 일정하게 자르는 작업)에서 전량 불량이 나와서 폐기 처리하는 사태까지 일어났어요. 골판지를 일정량 이상 쌓아놓고 재단을 하니 종이의 골들이 전부 눌려서 공예를 할 수 없는 수준의 제품이 나왔어요. 기존의 종이를 재단하던 기계로는 쉽게 골판지를 재단할 수 없었죠. 속상하고 안타까웠지만 해내겠다는 마음으로 다시 제작을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녔어요. 결국 공예에 사용할 수 있고 제가 원하는 수준의 제품을 얻어낼 수 있었죠. 12가지 색깔이 들어간 골판지 공예용 종이가 그 때 우리나라에서 처음 탄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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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욱  지금도 대형 문구코너나 팬시전문점에 가면 다양한 색깔의 골판지를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당시 패기 넘치는 젊은 허금임 선생님의 노력이 있었던 거군요?

허금임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죠 (웃음) 이것도 아픔이 있는데, KBS에서 진행해준 세미나를 마치고 돌아와 마트에 가보니 제가 제작한 골판지가 아닌, 똑같이 생겼지만 색깔만 두 종류정도 바뀌어있는 골판지가 시중에서 버젓이 판매되고 있었어요.

당시엔 특허권이나 실용시안이 지금처럼 철저하게 법제화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제가 어렵사리 만들어낸 작품이 쉽게 도용되어 생산되고 있었던 것이죠. 심지어 10회로 나누어 판매수익의 일부를 받기로 한 계약에서, 단 한번밖에 금액을 받지 못했어요.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만 생각하며 골판지공예를 통한 미래를 꿈꾸었던 저에게는 책의 출판과, 골판지 전용 종이제작이 오히려 마음을 멍들게 한 계기가 되었죠.

최재욱  선생님의 이름을 전국적으로 알리던 계기가 되었지만, 동시에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이 잊지 못할 상처가 생긴 셈이군요.

허금임  네 맞아요. 난 세상을 너무 모르는구나. 시장이란 곳이 이렇게 냉정하고 무섭구나 라는 사실을 그 때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심적인 고통이 상당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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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욱  그래도 그러한 상황을 딛고 계속적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가시고, 강의를 하셨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허금임  골판지 공예라는 것이 단순히 종이감기의 확장정도로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10년 이상 이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리고 그 사람들의 마음이 이 조그마한 골판지를 통해 치유되는 모습을 발견했죠. 골판지 공예가 아이들의 놀이로서의 범주에서 벗어나, 심리적인 안정과 치유에도 도움이 되는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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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욱  그 심리적인 안정과 치유라는 부분에 관련 된 에피소드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을까요?

허금임  정말 수없이 많은 에피소드가 있어요. 기본적으로 창작활동은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죠. 개인의 감정적인 내면일수도 있고 사회의 부정적인 부분, 긍정적인 부분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해요. 결국 자신의 지금의 상황을 그대로 묘사하게 되죠. 골판지공예는 전문적인 예술보다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도구예요. 그러다보니 누구나 조금만 익숙해지면 구체적인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죠.

누군가의 소개를 받아 만나고, 4년간 골판지공예를 통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줬던 한 여성이 있어요. 지금은 동생 같은 존재로 보듬어주고 있는 사람인데, 어린 시절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성장하면서 고통과 학대의 아픔을 겪고 소년원을 들락거리면서 인생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사람이었어요. 처음 소개받았던 시기에는 결혼을 했지만 거의 삶을 포기하고 24시간을 TV를 보면서 자신의 아이도 등한시 하는 그런 상황이었죠. 마음을 여는 것이 중요했어요.

한 달에 두세 번씩은 지방에 있는 그 집으로 향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처음 만났을 때 “우리 종이 말아서 미술치료 한번 해볼까?” 라고 말을 건네자마자 돌아오는 대답은 “안 해요”였죠. 그때부터 내 경험과, 이야기를 해주고, 감싸주면서 골판지를 통해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기 시작했어요. 표출되지 못하고 혼자만의 내면 안에서 쌓여있던 상처들과 고통들이 표출되고, 그걸 이해해주고 보듬어주기 시작하니 사람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어요. 골판지를 통한 창작의 위대함을 새삼 알게 되었죠.

최재욱  다음은 선생님의 창작활동에 대한 배경을 좀 여쭈고자 해요. 예전에 쓰신 글 중에 ‘어머니 몸은 창조학교다.’ 라는 표현이 있었어요. 선생님의 작품들에 대한 예술적 영감이 어머니에게서 많이 나오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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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금임  엄마란 단어만 나와도 가슴이 뭉클해지네요. 사실 제가 이렇게 창작활동 하는데 큰 배경이 될 수 있던 것은 어머니를 통해서였죠. 어릴 적 저희 집은 문방구와 옷가게를 했어요. 제가 지금 여러 가지 컬러들과 다양한 도구들을 사용해서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배경이죠. 문방구에서는 다양한 도구를 경험하고, 재료들을 경험할 수 있었고, 엄마가 옷가게를 했기 때문에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옷을 늘 저에게 입혀주셨어요.

어머니가 절 아름답게 키우지는 못하셨어요. 어머니 인생이 아름답지 못했기 때문에... 하지만 늘 바른 마음으로 자식들을 사랑하셨죠. 딸이었지만 아들과 차별을 두지 않으셨어요. “우리 딸~” 늘 우리 딸이라고 말씀하시며 많은 것을 경험하고, 교육해주셨죠. 그러한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으로 성장했던 것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창조학교라고 표현했던 것은 어린 시절 엄마의 모습을 통해서 제가 지금 가진 모든 교육이 습득이 되었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 만든 것이었죠.

최재욱  그렇군요. ‘어머니’ 라는 말은 늘 우리에게 많은 감정의 요동을 주는 것 같습니다. 저도 저희 어머니가 떠오르네요. 가족이란 공동체가 선생님의 인성을 만든 토대가 되었던 것이군요.

허금임  아버지는 참 멋쟁이셨지만 힘든 시절, 약주를 하시면 아버지의 화를 피해 도망을 나와야 했어요. 제게는 두 살 많은 오빠가 한명 있는데, 그럴 때면 오빠가 저희 동생들을 따뜻하게 안고 보호해줬어요. 아버지의 부족한 따뜻함을 오빠가 채워줬던 것이죠. 모두가 힘들던 시절에 가족들이 서로 톱니바퀴가 되어 조화롭게 살아왔던 것 같아요. 멋진 오빠였고 좋은 가족이었어요.

최재욱  다음은 저희 국제사이버대학교에 대한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강의부터 여러 가지로 굉장히 바쁘셨던 삶을 접고 2015학년도 신설학과인 상담심리치료학과에 입학하시게 된 계기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허금임  처음엔 우연히 아파트 게시판에 있는 국제사이버대학교의 홍보지를 보고 관심이 생기게 되었어요. 상담심리치료학과가 신설되었다는 글귀를 보고 바로 학교에 전화를 하고 입학을 하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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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욱  우연찮게 본 홍보지 한 장을 통해 직접 전화를 하시고, 급작스레 입학을 결심하게 되셨군요?

허금임  어떻게 보면 계획대로 진행된 것이기도 해요.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이미 미술치료 관련 자격증을 따서 미술학원과 출강을 통해 미술치료를 하고 있었고, 상담심리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쉬는 날이면 도서관에 가서 심리학 관련 책도 읽고 독학으로 노력했지만 공부할수록 배움에 대한 갈증이 커져갔죠. 그렇게 딱 필요한 시기에 국제사이버대학교를 알게 되고, 상담심리치료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어요.

최재욱  저희 대학에 입학하실 때, 운영하시던 미술학원도 정리하시고 미술치료사의 길을 본격적으로 걸으시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허금임  네. 국제사이버대학교 입학은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죠. 작품을 만드는 활동도 물론 행복했지만, 저를 통해서 상처받았던 아이들이 치유되고 살아나는 모습을 보면서 ‘아. 공부를 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심리학에 대한 이론지식이 부족하다고 늘 생각했었죠. 입학을 하게 되면서 미술학원을 과감히 정리했어요. 그리고 남편에게도 말했죠. “나 모든 걸 정리하고 공부해야 될 것 같아.” 지나고서 보니 당시에는 참 대단한 결심이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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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욱  갑자기 가르치는 입장에서 배우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어려우신 점은 없으신가요?

허금임  사실 어릴 적, 후두엽을 다친 이후로 공부를 하려고 해도 집중하기가 참 힘들었어요. 그래서 공부를 끈질기게 해본 적이 없어요. 상담심리치료학과에 들어와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강의를 듣던 중 후두엽을 다치게 되면 실명하거나 뇌에서 정보수집이 어려워진다는 말이 나왔죠. ‘아! 내가 공부가 어려운 이유가 있었구나. 그래서 어릴 적부터 가장 잘한다고 생각하는 미술활동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죠. 배운 만큼 안다고, 대학을 들어오지 않았다면 이런 지식을 알 수 없었겠죠. 요즘은 그러한 핸디캡을 잘 극복하고 성장한 스스로를 사랑하고 보듬으며 상담심리학 공부를 이어가고 있어요. 요즘 너무 즐겁습니다.

최재욱  얼마 전엔 저희 대학 동아리인 ‘예찾사’에서 미술치료 강좌도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1학년이신데 빠르게 대학생활에 적응하셔서 많은 활동을 하시고 계시네요.

허금임  준비되어있는 부분을 교수님이 잘 캐치해주시고 1학년이지만 기회를 주셨어요. 이미 미술치료 활동을 하고 있었고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어서 교수님께서 미술치료를 해달라고 말씀하셨을 때 바로 진행했습니다. 선배님, 동기들과 너무 좋은 시간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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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욱  공예를 하시던 때와 학업을 수행하게 되고서 부터의 삶은 여러 변화가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변화된 점에 대해 여쭐 수 있을까요?

허금임  창작활동을 할 때 에는 외향적인 삶을 살았어요.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예쁘고 옳은 말과 표현을 했죠. 창작활동이 보통 나의 만족을 위해 만들던 것들도 어느새 남들에게 인정받고, 보여지기 위해 만드는 것들로 변질되죠. 제가 가진 에너지가 외향적으로 퍼져나가는 삶을 오랫동안 살았어요.

상담심리치료학과에 입학하고부터는 많은 것이 변했어요. 제 에너지들이 내면을 향해 있죠. 그간 남들을 의식했던 삶을 내려놓고, 나라는 존재를 탐구하기 시작했죠. 내 무의식을 분석하고, 내 원형을 찾아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어요.

최재욱  새로운 삶과 배움 속에서 본인에게 온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까요?

허금임  무엇보다 좋은 점은 학우들을 만나 서로 공감을 한다는 점입니다. 서로 살아온 인생이 달라도 지금 비슷한 나이 대에 생각하는 것들과, 돌아보는 것들이 비슷해요. 서로가 가지고 있던 상처들을 마음속에 쌓아놓고 살다가,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노래도 부르고, 글도 쓰고, 이야기도 하며 서로 울기도 하죠.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미술로 치료하고, 감정을 공유했지만 제 자신에게 솔직했던 적은 별로 없었어요. 정작 제 감정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죠. 학문을 탐구하면서 내담자를 치료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스스로를 먼저 치유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긍정적인 변화는 여기서 시작되었죠. 요즘은 저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는 중입니다. 오늘도 인터뷰하러 오면서 홀로아리랑이라는 노래도 부르고, 스스로 나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즐겁게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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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욱  아까 말씀하셨던 대로 상담심리치료학과에 입학한 것이 삶을 살아가는 방법과 방향을 통째로 바꾸어버리는 터닝 포인트가 된 것이군요.

허금임  미래를 생각하며 늘 바쁜 삶을 살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처해진 환경이나, 하는 일이나, 사람을 만나는 오늘을 감사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있어요.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거예요. 지금 이 순간이 쌓여갔을 때 제 모습은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있겠죠.

최재욱  지금 이 순간을 쌓아간다. 그렇게 미래를 만든다. 세상의 성공을 향해 오늘의 소중함을 간과하고, 지금만 할 수 있는 것들을 쉽게 놓쳐버리는 저와 같은 젊은 사람들에게서는 쉽게 들을 수 없는 표현이네요. 공감되는 말입니다.

이렇게 허금임 학우님의 삶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킨 상담심리치료학과인데요, 지금 저희 학교에 입학을 하고자 준비 중인 예비학우님들이 많이 계세요. 그 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말씀이나 응원메시지가 있으시면 전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허금임  상담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어요. 그 전에는 내가 편리한 쪽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세상을 바라보았죠. 사람의 다양성과 다름을 인정하게 되었어요.

상담심리학이라는 학문의 매력은 내가 상담자로서 편견을 버리고 내담자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훈련한다는 점에 있어요. 내 앞의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죠. 그러다보면 내 자신의 내면의 자아도 발견하게 됩니다. 나와 상대방을 탐구하면서 공감능력을 지속적으로 개발하죠.

상담심리치료학과는 무엇보다 이론을 배운 뒤에, 다양한 모임을 통해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저희 학과는 특강이나 워크숍, 소모임이 크게 활성화되어있어요. 이러한 소모임에 꾸준히 참석하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고요.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현장에서 바로 적용하며 실무 능력을 배양할 수 있죠.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하며 상담하는 일을 배우는 상담심리치료학과에 특화된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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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을 고민하시는 분들 뿐만 아니라 이미 입학하신 후에도 온라인상에서만 배움을 이어가시는 분들 중에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좋은 프로그램과 훌륭한 교수님들께서 지도해주시는 모임이 많으니, 꼭 참석하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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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욱  사이버대학의 한계라고 생각했던 오프라인 모임이 활성화되니 상담심리치료학과 같은 학과에는 큰 시너지효과를 주는군요. 입학을 고민하는 예비입학생들과 현재 공부를 하고 계신 학우님들께 좋은 정보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보시는 재학생, 동문 여러분께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인터뷰 · 영상 편집
최재욱
국제사이버대학교 입학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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