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JCU 연 Quarterly Webzine 2015년7월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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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칼럼
아동복지상담학과 08‘ 엄익수 한국 로타리 청소년사업단장 인터뷰
  • 인터뷰 일시 : 2015년 7월 7일(화)
  • 인터뷰 대상 : 엄익수 동문 (현 한국 로타리 청소년사업단장, 아동복지상담학과 졸업)
  • 인터뷰 장소 : 국제사이버대학교
  • 인터뷰어 : 아동복지상담학과 김현미 교수
    입학홍보팀 최재욱 직원
귀감(龜鑑)[명사] 본받을 만한 모범. 본보기.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귀감이 되는 사례의 주인공은 대체적으로 사회적인 성공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나 거대 기업을 일군 사람들이 주를 이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품이나 인간성을 바탕으로 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고, 업적과 결과물 자체로 그 사람의 성품까지 포장되어 버린 채, 우리에게 물질적인 성공만을 강요하는 듯합니다.

이번 엄익수 동문님의 인터뷰는 개인적으로는 현 시대에 귀감이 되는 인물들에 대한 선입견을 허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그간 놀라울 정도로 많은 업적을 만들어낸 배경에는, 그가 가진 진솔함과 사람을 대하는 자세, 누군가의 말을 경청할 줄 아는 성품. 그리고 확고한 목표의식이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웹진 연[椽] 4호 동문인터뷰에서는 엄익수 동문이 들려주는 ‘늦은 나이에 시작했던 배움에 대한 자세’와 ‘노력의 참 의미’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최재욱  바쁜 시간에도 이렇게 국제사이버대학교 웹진 연에 시간을 내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웹진 구독자 여러분께 간단한 인사 부탁드립니다.

엄익수  안녕하십니까. 제가 국제사이버대학교를 졸업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늦게나마 이렇게 여러분께 인사드리게 된 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제 경험과 생각을 통해 독자 여러분과 긍정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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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욱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본교 김현미 교수님이 갑작스레 인터뷰를 부탁드렸음에도 불구하고 망설임 없이 요청에 흔쾌히 응해 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학을 아끼고 사랑하는 많은 졸업생들과 같이 엄익수 단장님께서도 국제사이버대학교에 특별한 애정이 있으실까요?

엄익수  물론이죠. 오늘 이 자리에 있게 해주신 원동력 중 하나가 국제사이버대학교이고, 은사님이신 김현미 교수님이십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은 주변에서 국제사이버대학교 졸업생들을 많이 만납니다. 그만큼 우리 대학의 졸업생의 사회진출이 많이 늘어났다는 증거겠지요. 사회 전반에서 다양한 졸업생을 뵈면서 국제사이버대학교에 대한 생각과 애교심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최재욱  많은 사이버대학 중 국제사이버대학교에 입학하게 된 계기가 있으시다면?

엄익수  옆에 계신 김현미교수님의 추천으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한창 수원 청소년문화센터에서 관장의 업무를 담당하던 때였는데 현장업무를 하면서 전문화 된 학문적 지식이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사이버대학은 일을 하면서도 밤에 공부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편입을 지원했고 졸업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최재욱  엄익수 단장님은 본교가 위치한 수원에서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셔서, 저처럼 젊은이들에게도 익숙한 유명인 이신데요, 특히 청소년과 관련된 다양한 사회사업에서 단장님의 성함을 뵙곤 했습니다. 그간 활동하셨던 다양한 청소년 관련 사업에 대한 소개와 본인에게 어떠한 의미의 일이였는지에 대해 여쭈고 싶습니다.

엄익수  제가 그동안 청소년 사업 쪽에 쭉 몰입하게 된 동기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겠군요. 아주 오래 전 일이지요. 제가 금융위원회 지점장을 할 때 법무부의 청소년 보호관찰위원을 겸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주 짧은 찰나에 잘못된 생각이나 행동을 한 청소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죠.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고 그 친구들의 멘토 역할을 수행하면서 ‘정말 이 아이들에게는 사람이 주는 따뜻함이 절실하게 필요했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청소년들이 갖는 문제와 사회적 현실을 적극적으로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국제로타리’와의 연을 통해 청소년 관련 활동을 중점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이사장을 맡게 된 수원 가정법률상담소에서는 법으로부터 소외받는 청소년들의 가정폭력, 성폭력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쉼터, 상담소를 지속적으로 설치, 상처받은 아이들이 회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사회봉사만으로는 늘 부족하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죠. 청소년 문제의 근원지는 정말이지 다양하고 복잡했습니다. 현장에서 청소년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끊임없이 비슷한 청소년 문제가 다양한 이유로 발생하는 것을 볼수록 고민거리는 커져갔죠. 어느 날 수원시의 권유를 받아 본격적으로 청소년문화센터의 관장직을 수행하면서부터 제 가야할 방향을 확고히 정했습니다. 청소년사업에 목표를 두게 되었죠.

최재욱  그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지난 5월에는 여성가족부가 주관한 ‘2015년 청소년의 달 기념 유공자 시상식’에서 국민포장을 수상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늦게나마 학교를 대표해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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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익수 단장 국민포장 수상 모습 / 출처: 아세아뉴스통신

엄익수  감사합니다. (웃음) 한 가지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시상 당일에 사실 저는 만감이 교차해 있었습니다. ‘내가 이제 정말 이곳에서도 정점에 도달했구나. 이것도 이제 내려놓을 때가 되었나보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시상을 하시던 장관님이 저에게도 ‘고생하셨습니다’ 라는 말씀을 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시상대에 서있는 저에게 ‘앞으로 더 많은 봉사를 기대 하겠습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머리가 멍해졌죠. 이제는 이 일의 마무리를 할 시간이라는 생각으로 서 있던 제게 장관님이 갑자기 숙제를 주신 겁니다. ‘아. 그럼 지금서부터 또 시작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죠.(웃음)

최재욱  재미있는 일화네요. 장관님이 일을 잘하시는 것 같습니다.(웃음) 그만큼 아직도 단장님이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미래를 만드는데 많은 역할을 담당하실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시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엄익수  (웃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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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욱  단장님께서 본교 아동복지상담학과를 선택하신 것도 청소년 사업에 대한 목표를 이루기 위한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엄익수  네 물론입니다. 그래서 아동복지상담학과를 선택한 거구요, 아동복지상담학을 전공하면서 제가 실무에 적용할 수 있는 과목들이 굉장히 많더군요. 사회에서 청소년에 대한 많은 활동을 했음에도 학술적인 부분에서 늘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공부를 하고 현장에 접목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할 수 있죠. 전공공부가 수원 청소년 문화센터내의 청소년 육성재단을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교육기관은 학교 중심교육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학교를 벗어난 아이들이 갈 곳이 없죠. 전공공부를 하면서 이것이 청소년 뿐 아니라 교육시스템 전체의 큰 문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해 많이 고민하던 중 우리나라의 교육기관, 청소년이나 아동 시설에 아동학, 청소년학을 전공한 지도자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활동하던 청소년 사업 분야의 예를 들어보면 시설에 고용되어 활동하는 대다수의 청소년 지도사들이 계약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정 연령층을 케어할 수 있는 인력은 특히나 학술적인 능력이 중요합니다. 청소년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고 아이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분야의 전문가들을 채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죠. 하지만 고용의 불안정 때문에 훈련된 전문가들이 아이들에게 헌신적인 봉사를 할 수 있는 사회적 구조가 없다시피 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많은 관련 종사자들을 만나면서 알게 된 점이죠. 이러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 수원 청소년 육성재단에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100%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였죠. 청소년 관련 각 분야에서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전국에 나비효과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전공공부를 수행하면서 일어난 변화였죠.

최재욱  이번엔 단장님의 개인적인 삶에 대해 조금 언급해보고자 합니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단장님의 이력을 찾아볼수록 흥미로운 점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당대 수원 최고의 명문고등학교로 일컬어지는 수원고등학교를 졸업하시고는 뜬금없이 흔히 말하는 ‘농삿일’에 뛰어들어 농업인으로서의 20대 초반을 보내셨다는 점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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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익수 단장의 청소년 시절 모습

엄익수  일단 부모님이 굉장히 연로하셨었습니다. 제가 쉰둥이라고 해서 제가 태어날 때 부모님 연세가 50세셨죠. 9남매의 막둥이로 태어났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을 거슬러보면 활동적인 청소년기를 보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그 당시에 YMCA를 통한 동아리 활동을 정말 열심히 했었어요. 시민회관에서 발표회를 갖기도 하는 등 문학도의 꿈을 키워나갔죠.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많은 고민이 되었어요. 부모님께서 이렇게 어렵게 나를 세상에 내보내주셨는데, 내가 잠시라도 모시고 함께 살다가 연로하신 부모님을 보내드리는 것이 올바른 방법인가, 아니면 나 자신을 위해 서울로 올라가서 학업에 정진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냐를 놓고 많은 시간을 고민 속에서 지냈습니다. 결국 당시 농촌이었던 동탄에 거주하면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겠다, ‘시골에서도 나의 역할은 많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농업에 종사하면서, 꿈이었던 문학활동을 하며 자연과 함께 사는 것도 ‘내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심하셔서 결국 뜻을 거스를 수 없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너는 젊다. 너의 젊음을 우리의 삶 때문에 희생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연로했기 때문에 살아있는 동안 막내인 네가 우리를 모시면서 농사나 짓는 것은 너의 인생에 바람직한 과정이 아니다. 네 스스로가 결정해서 세상으로 나가라.’ 라고 말씀하시며 권유하셨죠. 참 강직하고 존경스러운 부모님이셨습니다. 결국 저는 서울로 상경하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최재욱  첫 직장은 국민은행 출자기관에서 견습 직원으로 사회의 첫발을 내딛으셨고, 갑자기 30대에는 상호신용금고에서 젊은 나이에 지점장까지 지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변화무쌍한 2~30대를 보내신 배경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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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익수  늦게나마 사회생활을 경험하면서 야간대학을 통해 학업을 수행하겠다는 다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죠. 말씀하신대로 국민은행 출자기관에 견습사원으로 입사했습니다. 그 당시에 금융기관은 최고의 직장이었어요. 최고의 두뇌들이 경쟁하는 곳이었죠. 하루도 빼놓지 않고 농사를 짓다가 상경한 내가 어떻게 하면 이곳에서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습니다. ‘목표를 설정’하는 버릇은 이때부터 생겼어요. 명문대학 출신 경쟁자들과 경쟁하기 위해서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남들보다 조금자고, 더 많이 열심히 일했어요. 정말이지 힘들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처음 발령 받은 곳이 종로지점이었는데 처음부터 서울시 전체를 미친 듯이 돌아다녔어요. 집에 돌아와 누워 천장을 쳐다보면 내일의 일을 항상 고민했습니다. 쉴 겨를이 없었죠. 가끔 예전 일을 돌이켜보면 내일을 준비하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에 대해 느끼곤 합니다. 그때는 늘 미래를 내다봐야 했죠. 그 덕분인지 직장생활 중 한번도 2등을 해본 없어요. 늘 성과부문에서 1등을 차지했었죠. 열정과 노력이 재능을 이긴다는 신념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정신없이 살다보니 30세라는 젊은 나이에 금융기관의 인사부장 겸 지점장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지도자’라는 반열에 오르게 되었죠. 지도자는 무엇을 해야 할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늘 공부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고 혜안을 가져야 진정한 지도자’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의 내일을 바라보던 과거가 아니라, 직원들과 회사의 내일을 바라봐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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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익수  당시에 금융기관의 미래는 무엇인가에 대한 혜안을 가지기 위해 고민하던 중 해외의 선진 금융서비스를 보게 되었어요. 당시 해외에서는 금융기관의 진화가 일어나던 시기였습니다. 고객과의 밀착을 위해 직접 방문해서 금융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제도를 국내 최초로 시도했죠. 당시만 해도 은행문턱이 높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출이나 금융서비스에 대한 소상공인들에 대한 정책이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인터넷뱅킹도 없었고 폰뱅킹마저도 활성화되기 전이었는데 찾아가는 금융서비스는 획기적인 시스템이라는 평을 받았죠.

경영 부분에서도 많은 것을 개선시키고 싶었습니다. 80년대 초에 은행에 ‘연봉제’를 최초로 도입했습니다. 그 당시 금융기관은 굉장히 보수적인 체계였어요. 공무원과 같이 호봉, 급수제로 운영되었죠. 능력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그 실력을 발휘할 이유가 없었던 거예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승진할뿐더러, 출중한 능력을 발휘하면 간혹 ‘쟤는 왜 저렇게 나대’라는 의식이 만연하던 시대였죠. 제 생각은 달랐어요. 선진화 된 사회에서는 능력있는 사람이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늘 있었죠. 아무도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지 않는 조직에서는 그 사람의 가능성과 잠재능력이 발휘되기 어렵습니다. 자연스레 회사의 발전도 정체될 수 밖에 없죠.

끊임없이 많은 것들을 개선하고, 발전시키려 노력했습니다. 오히려 젊은 시절 개인의 목표에만 치중한 삶보다 훨씬 더 치열하고 바쁘게 살았습니다.

최재욱  부지런함과 성실함이 결국 지금의 단장님을 만들어낸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30대 초반의 인생을 살고 있는 저에게도 도전을 줄 수 있는 좋은 말씀이셨습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는 소위 ‘잘나가던’ 금융인의 삶을 사시다가 사회사업과 봉사에 눈을 돌리시게 된 이유, 즉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있었다면?

엄익수  IMF였죠. IMF사태를 맞이하면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산업은 아마도 일반기업이 아니라 금융기관이었을 것입니다.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곳곳의 기업들이 도산하면서 제가 근무하던 기관에서 기업에 제공했던 대출금도 회수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죠. 자연스레 속속들이 피해가 저희 은행을 믿고 예금을 한 개인에게 발생했어요. 금융기관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던 것이죠.

그러다보니 그동안 고객들에게 예금을 유치한 성실한 직원들에게 어마어마한 데미지가 들이닥쳤어요. 저는 물론이고 누가 봐도 고객들에게 최선을 다했던 성실한 우수사원들에게 고객들의 질타와 책임이 돌아갔고, 무너져가는 것을 직접 겪으며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어요. 답답했죠.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믿었던 저와 직원들이 어려운 피해를 겪는 것을 보며 이것은 사회의 정의와는 너무 동떨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 각 요소에서 최선을 다한 소시민들이 이렇게 힘든 상황에 처한다면, 그 누가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겠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괴로운 하루하루를 살던 차에 갑자기 생각났던 것이, 법무부 보호관찰위원을 하면서 어려운 청소년과의 소통을 통해 느꼈던 ‘보람’이었어요. ‘내 삶에서 이만큼 보람을 느낀 적이 있었나’ 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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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익수 단장 로타리 청소년 연합 활동모습

직장생활은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어요. 어느덧 쉴 새 없이 달려온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사회생활을 하면서 최초에 세웠던 내 목표치도 넘어서버린 자신을 발견했죠. 망설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내 자신이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청소년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최재욱  단장님의 제 2의 인생은 그때부터 시작되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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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익수  그렇다고 볼 수 있겠죠. 많은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각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만한 계기가 있기 마련이더군요. 저는 청소년들과의 만남을 통해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고, 사회에서 날 필요로 하는 또 다른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죠.

최재욱  또 하나 궁금했던 점은 청소년 사회사업을 시작하시기 전인 20대 때부터 지금까지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끊임없이 정진하시는 모습을 발견한 점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시고도 저희 국제사이버대학교에도 입학하셨고, 경희대 대학원 석사까지 이수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엄익수  사실 늦게나마 공부를 시작한 것은 현장에서 부족한 부분을 공부하면서 보충하고자 하는 의도였죠. 젊을 때야 패기를 가지고 매달리면 해낼 수 있었지만 나이가 드니 정말 공부가 어려웠습니다. 20~30대 학생들과 겨루자니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죠. 국제사이버대학교 공부도 대학원 공부도 너무 힘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웃음)

국제사이버대학교에서 실무에 관련된 전공을 했다면, 대학원에서는 속한 단체를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전공을 택했어요. 글로벌경영학이었죠. 청소년육성재단을 설립하면서 여전히 현장에서 부족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던 효율적인 운영방안에 대해 수없이 고민하고, 연구했고, 논문을 써내려갔습니다.

그 때 여러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 논문이 완성되지도, 석사과정을 이수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당시 도움을 주셨던 김현미 교수님께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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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우리 국제사이버대학교에 재학하셨던 시절에도 굉장히 열심히 하셨어요. 단 한번도 결석을 하신 적이 없으시죠. 거기에 편입을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졸업하시기 전에 청소년지도사까지 취득하셨어요. 청소년지도사 자격증 취득에는 반드시 치러야 하는 연수과정이 있는데 그 과정에서 전체 1위로 장관상까지 수상하셨을 정도니까요. 그 바쁜 스케줄에도 사회복지사 2급도 취득하셨을 정도로 열정적인 학생이셨어요.

(참고로 2008년 입학해 2010년 졸업한 엄익수 단장의 학점 평점은 4.5점 만점. 전 과목 A+였다.)

최재욱  장관상까지 수상하셨을 정도면 정말 단순히 공부를 열심히 하는 정도로는 불가능할 것 같은데요?

엄익수  지도사 연수를 받으면 시간마다 체크를 하며 시험을 봅니다. 굉장히 까다롭죠. 연수를 갔는데 젊은 친구들과 겨뤄서 지기 싫은 마음이 들었어요. 당시 국제사이버대학교 재학생이었으니 대학의 명예를 걸고 수백명의 응시생과 겨뤄야겠다는 생각도 했지요. 결국 종합평가에서 1위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늦은 나이였지만 내가 이렇게 노력을 하니 가능하구나라는 점을 느꼈어요. 재학생 여러분들도 자신의 노력의 여하에 따라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히 성취할 수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못한다는 마음은 가질 필요가 없어요. 늘 용기를 가지시라는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김현미  오랫동안 단장님을 뵈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청소년에 대한 열정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해요. 아마 청소년지도사 취득하실 때에도 그러한 열정이 바탕이 되어 좋은 성적을 거두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최재욱  열정과 노력으로 결실을 맺는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했던 사례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인터뷰 중에 늦은 나이에 새로운 공부를 하시는 데에 대한 어려움을 잠깐 말씀하셨는데, 본교 또한 단장님처럼 새로운 배움의 기쁨을 찾아 5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매년 입학을 하고 있습니다. 배움에 대한 의미와 늦게 대학공부를 시작하시는 만학도 여러분께 유익한 말씀을 전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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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익수  저도 늦게나마 여러 공부를 했지만 늦은 나이에 학업을 수행하시는 분들은 존경받아 마땅하신 분들입니다. 일단 대단하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재학생 여러분들 중에서 학업을 수행하시다가 본인의 부족한 점이나 미진한 부분에 있어서 실망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것을 시작했다’라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일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다른 일을 해오던 사람이 갑자기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상상 이상의 용기와 도전정신. 그리고 굳건한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내가 이것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압박감이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하죠.

누구나 처음 시작하는 일이나 공부를 한순간에 완벽하게 해내기는 어렵습니다. 모든 일에는 과정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스스로가 부족한 점이 보이고, 미진한 부분을 알아낸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에 대한 목표치가 높아지는 것을 의미하죠. 노력 여하에 의해 얼마든지 인생은 바뀔 수 있습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저와 같이 늦게나마 공부를 시작하시는 학우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공부를 시작하던지, 일을 시작함에 앞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쉽게 무언가를 시작하면서 ‘아마도 이렇게 될 것이다’ 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목표설정이 뚜렷하지 못한 경우에는 쉽게 실망하고 포기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죠.
아마도 대학에 입학해 공부를 하고, 졸업을 한다는 것으로 만족을 얻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큰 의미를 갖지 못할뿐더러 스스로에게 성취감을 가지기가 어렵죠.

요즘 현장에서 동문들을 많이 뵙습니다. 그분들과 대화를 해보면 한결같이 말씀하시는 고민이 있습니다. ‘정말 어렵게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학업을 수행했는데, 이걸 대체 어디에서 활용해야 하는지에 모르겠다’ 라는 것입니다.

최재욱  네. 특히 장년이 되시어 사회적인 활동을 하시다가 입학하시는 분들 중 중간에 포기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공부를 해보니 내 나이에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라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그러한 경우였죠.

엄익수  그래서 대학 공부의 시작에 앞서, 내가 앞으로 전공 할 학문을 가지고 사회에서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에 대한 목표설정의 부분부터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후에 안정된 수입을 목적으로 공부를 하는가, 혹은 내가 꿈꾸는 사회사업이나 활동, 봉사 등 내 삶을 윤택하고 보람 있게 하기 위해 공부를 하는가에 대한 부분도 이러한 목표설정의 고려대상에 포함됩니다.

사실 수입의 창출에만 목적을 두게 되면 장, 노년층이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부분에 많은 제약이 생깁니다. 새로운 공부를 해서 다시 취업하기에는 젊은 청년들과의 경쟁이 불가피해지고, 간혹 성공사례도 있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전공 관련 산업에 진입조차 하지 못한 채 도태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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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이 ‘직업’이라는 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청소년 관련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분야의 정규수업 이후 현장교육을 예로 들어보죠.

요즘 인성교육의 필요성이 절실해지면서 정규수업 이후 청소년들의 인성, 특기 적성교육의 일환으로 퇴직자들의 사회참여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회에서의 경력과 우리 대학 학생들처럼 뒤늦게 새로운 전공공부를 통해 제 2의 인생을 준비한 분들을 위한 새로운 개척로가 될 수 있는 부분이지요.

아직까지는 시작단계라 거의 대부분이 ‘재능기부’ 형식으로 이루어지지만, 이러한 인성교육이 긍정적인 결과물을 계속적으로 보이고 있고 교육계 전반적으로도 중요시 되는 상황입니다. 점차 국가적인 지원도 늘어날 전망이라고 들었습니다. 노년층의 일자리 제공도 국가에서는 아주 중요한 핵심과제니까요. 노년층의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기회가 점차 확대될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가 노년이라고 해서, 장년이라고 해서 사회의 혜택을 본다는 생각만으로는 사회의 발전에 따라갈 수 없습니다. 기회는 옵니다. 우리도 충분히 사회참여를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100세 시대를 맞이해야 합니다. 55세에 정년퇴임을 하고도 살아온 만큼을 더 살아나가야 하는 시대입니다. 점차 나이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해지지 않게 될 것입니다. 끊임없이 자기 발전과 노력을 해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재욱  본교에 재학 중인 다양한 연령의 학우님들이 많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말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더불어 저희 웹진은 재학생과 졸업생 외에도 사이버대학 입학을 고민하는 예비 대학생도 다수 구독하고 있습니다. 단장님께서 국제사이버대학에서 공부하시면서 느끼셨던 점이나 장점이 있다면 소개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엄익수  제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은 국제사이버대학은 교육의 내용이나 질이 ‘현장위주’로 되어있습니다. 현장에 접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줍니다. 온라인상의 교육이지만 오프라인상의 교육과 연계되는 점이 많습니다. 그리고 사이버대학을 넘어 지역민들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고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인프라가 점차 확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저처럼 현업에 종사하면서 학업을 수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될 때까지 반복해서 수강을 들을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늦은 시간에도 구애받지 않고 직장인들이나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이 언제든지 컴퓨터만 옆에 있으면 자신의 시간을 투자해서 학업을 수행하는 부분이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컴퓨터를 잘 못 다루시는 이유로 주저하시는 분들도 계실 줄로 압니다. 제 경험으로는 학업을 수행하는데 있어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국제사이버대학이 누구나 쉽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을 위해 고민했고, 그 결과 가장 최적화 된 온라인 대학교육을 제공하기 때문에 인터넷 등 기본적인 컴퓨터 능력만 갖추신다면 충분히 학업수행이 가능하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최재욱  마지막으로 국제사이버대학교 재학생 여러분께 인사말씀 부탁드립니다.

인터뷰 · 영상 편집
최재욱
국제사이버대학교 입학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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