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JCU 연 Quarterly Webzine 2015년 Autumn 제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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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칼럼
동문인터뷰 김민준 사회복지사
  • 인터뷰 일시 : 2016년 4월 14일(목) 14:00
  • 인터뷰 대상 : 김민준 학우(현 사회복지사)
  • 인터뷰 장소 : 국제사이버대학교 1층 대회의실
  • 인터뷰어 : 국제사이버대학교 입학홍보팀 최재욱 직원

인생에서 값진 성과를 얻으려면 한걸음 한걸음이 힘차고 충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단테

 웹진 제작에 앞서, 동문들을 뵙고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주로 제가 던지는 질문을 종합해보면, 아마 그것은 ‘당신의 인생은 어땠습니까’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동안 이 질문을 받은 분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인생에는 수많은 우여곡절들이 존재했고, 그것을 극복하고 이겨내며 내 자신이 성장해 지금의 내가 되었다라고 고백하곤 했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필자는 김민준 학우님의 삶을 통해 그 어느 인터뷰보다 우리 개개인이 처한 우여곡절을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이겨내고, 경험으로 승화시켜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장애라는 어려움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마음. 그리고 긍정적으로 내가 사회에서 해야 할 일을 찾아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며 ‘세상에서 한걸음 한걸음 힘차고 충실하게 나아갈 때, 값진 성과를 얻는다’는 단테의 고백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해 준 김민준 학우님께 인터뷰 글에 앞서 진심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최재욱  인터뷰에 앞서 먼저 웹진을 읽으시는 학우 여러분께 간단한 인사 부탁드립니다.

김민준  웹진을 읽으시는 동문, 재학생 학우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복지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다시 공부를 좀 더 하고 싶어서 상담심리치료학과에 편입학 하게 된 16학번 김민준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웹진을 통해 인사를 드리게 되어 반갑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영광으로 생각하고, 기회를 주신 학교와 교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최재욱  먼저 웹진을 제작하는 제작자로서, 국제사이버대학교 웹진 연의 동문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김민준  별말씀을요. 이렇게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고자 인터뷰를 마련해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

최재욱  2016학년도에 복지행정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시고, 다시 편입학으로 상담심리치료학과에 입학을 하셨습니다.

김민준  네. 복지행정학과에 입학 해 나름 최선을 다한 결과로, 3년 만에 조기졸업을 했죠. 다시 새로운 공부를 위해 3학년 편입학을 했으니 5년 동안 국제사이버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최재욱  인터뷰에 앞서 지도해주셨던 교수님들께 김민준 학우님에 대해 간단히 질문을 드렸는데 한결같이 “학업에 대한 열의가 대단한 학생”이라며 칭찬일색이었습니다. 조기졸업까지 할 정도로 우수한 학생이셨는데요, 저희 대학의 복지행정학과에 입학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김민준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도 저는 사회복지현장에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만나게 된 많은 사회복지사 분들이 국제사이버대학교에서 공부를 하셨더군요. ‘아 이런 곳이 있었구나’ 라고 알게 되었을 즈음 저는 장애인 학교에서 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10학번 최승순 선배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제 비전을 알고 계시던 선배님께서 전문가가 되기 위한 공부를 추천해주셨고, 보건복지행정학과 김형진 교수님을 뵙게 되어 국제사이버대학교에 들어오게 되었죠.
 
대학에 들어오기 전부터 사회복지공부를 체계적으로 하고자 하는 마음은 늘 있었어요. 하지만 대학을 가기엔 너무 늦은 나이라는 생각에 시작 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죠. 사이버대학교는 온라인으로 공부하면서 제가 조금만 더 부지런하게 살면 충분히 좋은 미래를 바라볼 수 있을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특히 사회복지사면서 동시에 사회복지행정가로서의 목표가 있던 저에게 복지행정학과는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분명한 방향이었죠.

최재욱  제가 우리 대학에서 일한지가 몇 년 되었는데, 학교 행사에서 모습을 자주 뵐 수 있었습니다. 한 교수님은 ‘공부도 학교생활도 백점 만점’이라고 김민준 학우님을 표현해주셨는데, 이렇게 열심히 대학생활을 했던 이유가 있을까요?

김민준  네, 생각해보면 거의 대다수의 행사에 참여했던 것 같아요. 제가 열심히 봉사하고 많은 분들과 친목을 다지게 되니 제 삶도 즐거워졌죠. 공동체라는 기쁨을 알게 되어서 개인적으로는 너무 좋았습니다. 그 덕에 2013년엔 총장님 표창도 받았구요. 대학생활에서 많은 학우님을 알게 되고, 그분들에게 인정받은 것은 제가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대학을 다니면서 제 자신에게 변화된 부분이 많아요. 온라인으로 공부를 하는 것이 대학에 입학하게 된 주 목적이었지만, 특강이나 워크숍 등을 통해 많은 학우님들과 교수님을 만나면서 대학생활은 단순히 공부가 아닌 제 삶의 일부분이 되었죠.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동안 가지지 못했던 생각들이나 지식의 폭이 늘어남을 느꼈어요. 아무래도 사이버대학교에는 이미 현장경험이 충분하신 분들도 많이 들어오시고, 젊은 사람들부터 연륜이 충만한 분들까지 다양한 분들이 학생으로서 학업에 매진하고 계시잖아요.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내 자신이 성장하는 것을 실감했죠. 성취감은 물론이구요.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고, 한학기동안 내가 노력했던 결과가 좋은 성적으로 나올 때, ‘아 나도 할 수 있구나. 내가 해냈다!’라는 자신감과 성취감을 느꼈어요.
 
사고가 나고, 수많은 수술을 견디며 7년 가까이 병원생활을 했어요. 이후에도 수없이 재활치료를 받았구요. 그 긴 시간을 참고 인내하며 다짐했던 것이 있었죠. ‘난 장애를 입었기 때문에 무조건 배워야 한다’라는 생각. 그 과정이 저를 강하게 만들었고, 최선을 다해 대학생활을 하게 한 원동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재욱  복지행정학과에서 학교생활을 하실 때, 학교 활동이나 고등학교 홍보에서 자주 김민준 학우님을 뵈어왔었는데요, 항상 함께하는 학과 패밀리가 있으신 걸로 아는데요.

김민준  네 있죠. 항상 희노애락을 함께해주는 든든한 선후배들이 있습니다. 그 모임은 구성원 전체가 만학도죠. 사이버대학이기는 하지만 나이 들어서 공부하는게 쉽지는 않아요. 동반자로서 힘들 때 같이 돕고, 때론 선의의 경쟁자로서 서로 자극이 되어주기도 하면서 공동체의 즐거움을 느낍니다. 제가 그 모임에서는 나이로는 막내인데요, 저보다 그만큼 사회경험도 많으시고 삶의 조언도 많이 해주셔서 도움을 많이 받고, 배우는 부분도 많습니다. 그리고 제가 도울 수 있는 부분도 많이 있고요.

최재욱  주로 도움을 받는 편인가요 드리는 편인가요(웃음)

김민준  (당황하며)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아마도 주로 도움을 드리는 편인 것 같긴 하네요.(웃음) 특히 레포트 작성하실 때 어려움이 많으면 자주 불려가는 편이었습니다. 하하.

최재욱  성적이 좋으시니, 학문적으로는 리더 역할을 담당하시겠습니다.

김민준  네 자랑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제가 그런 부분을 담당하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는 선배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주변 분들의 추천을 받고 14, 15학번 후배들을 위해 특강도 진행했죠. 아무래도 나이가 조금 있으신 분들은 간혹 학기 초에 학업을 포기하는 분들이 계세요. 그들이 공부를 시작하기엔 그동안 살아온 환경이 너무 다르고, 삶에서 포기해야 하는 부분들이 생기기 때문에 장벽이 높죠. 대학을 다니면서 저 뿐 아니라 많은 분들이 그 장벽을 허물고 잘 걸어갈 수 있도록 멘토역할을 할 수 있는 선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심지어 공부를 포기했다가 금세 후회하고 다시 재입학 하는 학생들도 봤거든요.

그런 학우들을 뵐 때마다 도움이 될 수 없을까라는 안타까움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생겨났어요. 한 학기만 잘 이끌어주고, 공부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선배들이 가진 노하우들을 공유하면 충분히 그들도 우리처럼 열심히 공부를 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지 않을까 생각했죠.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조금 앞서 걸어간 사람으로서 드릴 수 있는 것들을 알려드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지금 4학년들이 조기졸업을 할 때 왜 벌써 졸업을 하냐고, 같이 1년 더 공부하자고 권유를 하는 바람에 애도 많이 먹었죠.(웃음)
나를 필요로 하고 생각해주는 사람이 이렇게 많이 있었구나. 내가 대학생활을 잘 했다 라는 생각에 많은 보람도 느꼈습니다.

최재욱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고 졸업하신 뒤에, 애초에 본인의 목표와는 조금 다르게 다시 상담심리치료학과에 진학을 하셨습니다. 편입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김민준  현장에서 오랫동안 사회복지사로 활동하다보니, 많은 분들과 상담을 하는 일이 잦았죠. 지역 내 주민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어려운 분들이 찾아와 상담을 의뢰하는 횟수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고민을 하는지 눈높이를 맞추고 다가갈 수 있는 열린 자세가 필요했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면에서 매우 부족한 사람이었죠.
 
전문적인 상담능력을 갖추어야 했어요. 요즘은 보이는 장애를 가진 사람보다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훨씬 많죠. 삶의 어려움 때문에 찾아오시는 분들의 대다수는 그렇게 마음 속 아픔을 가진 분들이었어요. 이러한 것들이 늘 고민으로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죠. 지도해주셨던 교수님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상담심리치료학과에 입학하는 것이 분명히 내 일에. 그리고 그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배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실제로 상담심리치료학과에 들어와서 느끼게 되었죠. ‘먼저 내 자신에 대해 잘 알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공감을 줄 수 있는 대화를 해야만 마음의 문이 열리게 된다.’라는 것을요.

최재욱  공감에 대한 말을 하셔서 자연스럽게 이어가게 되었는데, 시집을 낸 시인이시더군요. 실제로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가장 눈에 들어온 인상 깊은 프로필이 ‘시인’이라는 직함이었습니다. 시를 쓰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김민준  저는 글을 쓰는 전문교육을 받은 전문가가 아니다보니 어딘가 미흡하고,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목적은 있었죠.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재활치료를 시작하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그 때엔 할 수 있는 일이 매우 제한되어있었죠. 그 때 시작한 것이 ‘틈틈히 글을 쓰는 것’ 이었습니다.

당시에 글 쓰는 것에 빠져 ‘자기글 쓰기’라는 카페의 운영자를 맡게 되었었어요. 카페 운영자를 하면서 카페의 회원들에게 매일 아침 쪽지나 메일로 내 이야기들을 글로 풀어 전달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주시고, 공감해주시는 것을 보며 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리고 서툴지만 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 마음의 정서나 상태에 대해 알게 되었죠. 제 자신에게도 위로의 시간이 되었었습니다.

최재욱  작년에 시집을 내셨는데, 1편이 대략 몇 편 정도였나요?

김민준  정확히 세어 보진 않았는데, 80편정도 되요. 시집이지만 에세이도 들어있고, 일상적인 느낌들을 서술한 짧막한 글들도 있죠. 시라고 볼 수 없는 것들도 있고요.(웃음)

최재욱  인터뷰에 앞서 김민준 학우님의 시를 몇 편 읽어보았습니다. 공통으로 ‘사랑’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하더군요. 단순히 풀이를 하기엔 우리말의 사랑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함축적인 표현이고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시인 김민준이 적어내린 사랑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김민준  그 의미가 전부 맞다고 할 수 있겠어요. 일상에서 고백할 수 있는 ‘엄마 사랑해, 아빠 사랑해’ 라는 것도 사랑이죠. 남녀 간의 사랑도 사랑이구요. 하지만 결국 제가 쓴 시라는 것이 제 마음속에 있는 감정을 표출한 것이기에, 굳이 시 전체의 ‘사랑’을 뜻으로 정의한다면 ‘내 자신에게 외치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내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 남들에게도 사랑을 줄 수 없다’는 생각을 항상 마음속에 새기며 살아갑니다. 결국 어떠한 의미를 넘어 제가 삶을 살아가는 전체적인 방향이 되죠. 살아가는 방법이구요. 사회복지 공부도 이러한 연장선이죠. 어려운 사람들을 사랑해서,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제 인생의 철학이니까요.

최재욱  이러한 인생의 철학이 한권에 담긴 본인의 시집을 읽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요, 누군가에게 읽혀질 때 이러한 순작용을 했으면 한다. 라는 바람이 있을까요?

김민준  사람이 살아가다보면 수많은 일을 겪게 됩니다.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죠. 그분들이 제 글을 보고, 작은 희망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살아가면서 희망적인 감정을 가진다는 것은 참 중요해요. 자칫 정체될 수 있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한줄기 희망은 그 사람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주죠. 제가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저처럼, 혹은 저보다 더 어려운 장애를 가진 분들도 많이 있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분들에게 희망의 빛이 되고 싶어요. 제 책을 그분들에게 나누어드리면서 위로를 드리고 싶습니다. 과거 내가 보았던 희망과 위로를 그분들에게 전해드릴 수 있다면, 그것이 이 시집을 써서 얻게 된 가장 큰 기쁨이 되지 않을까요?

최재욱  꼭 그 분들에게 희망의 빛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과거 쓰셨던 학과 논문에서 김민준 학우님은 장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장애를 극복하셨던 모습을 발견 할 수 있었는데요, 본인의 장애를 ‘신이 나에게 준 선물’이라고 표현하셨던 것을 봤습니다. 장애라는 벽을 딛고 일어서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을 것이라고 보는데요, 자신의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께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김민준  저는 장애를 입은걸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이 나에게 준 선물이라는 표현은 제가 예전에 한 장애인 모임에 나가 토론을 하던 중, ‘장애란 무엇인가’ 라는 주제에서 저도 모르게 대답했던 표현인데요, 장애를 얻게 된 후, 많은 부분에서 스스로를 성장시키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충실하게 살아갈 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보다 더욱 감사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죠.
 
병원에서 퇴원하고, 재활치료를 받으면서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생겼어요. 비로소 주변에 힘든 상황을 가진 많은 장애인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죠. 제 삶에 새로운 과제와 도전이 생기게 된 것이죠. 그분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무언가를 고민하고, 찾기 시작했습니다. 편견과 맞서 싸울 용기를 가지게 되었구요. 그리고 다양한 노력과 경험들이 쌓여 제 삶의 원동력이 되었죠. 참된 저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최재욱  김민준학우님이 장애를 입으신 이후 걸어온 길들을 쭉 보니 참 많은 노력을 하셨던것 같습니다. 사회복지사, 자립생활센터 간사, 장애인학교 강사, 장애인노동자센터 간사 등등. 자신도 불편한 상황에서 장애인들을 지도하고, 그들이 일어설 수 있게끔 돕는 역할을 직업으로 택하게 되신 까닭이 있을까요?

김민준  장애인들도 여러 종류가 있죠. 선천적 장애가 있고, 저처럼 중간에 사고나, 병으로 인해 장애를 갖게 된 중도장애인도 있습니다. 특히 300만정도의 대한민국 장애인 중 80~90%가 중도장애인이죠. 저도 29살에 사고로 장애를 가지게 된 중도장애인이구요.
 
중도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자해, 심지어 자살 등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 살아왔던 삶이 전부 틀어지고, 기존에 하던 것을 이제는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엄습해오기 때문이죠. 제 경험으로는 그 때 가장 중요한건 본인의 의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족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받아야 하고, 주변 환경들도 중요하지만 본인이 이겨내야겠다는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죠. 그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귀감이 되는거죠. 장애를 입고도 떳떳하게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으로 옆에서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죠.
 
그리고 장애인들은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사고 이후에 깨닫게 되었죠. 제가 2005년 4월에 다치고, 10월에 장애판정을 받았는데요, 수많은 수술과 재활을 거치면서, 서서히 장애인이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신기한게,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보이는 것이 변한다고. 그때부터 나보다 어렵고 소외 된 장애인들이 보이기 시작했죠.
 
하루는 우연히 사회복지시설에 방문하게 되었는데, 중증장애인들이 취업이 되지 않아서 늦은 시간까지 어려운 몸을 이끌고 직업교육을 받고, 장애 때문에 학교를 가지 못해서 몇시간이고 어려운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죠. 그리고 꾸준히 그곳에서 활동하는 자원봉사자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함께 늦은 시간까지 있어주고, 공부를 도와서 마침내 대학생이 된 중증장애인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나도 장애인이지만, 이런 분들처럼 내 능력을 발휘해서 조금이나마 장애인들이 차별 없이 해낼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었어요.

최재욱  그때부터 장애인학교에서 봉사를 시작하셨군요?

김민준  그렇죠. 장애인 학교에 가서 1,2급의 중증장애인들을 상대로 검정고시 공부를 도와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분들이 검정고시에 합격해서 활짝 웃는 모습들을 보면 정말 큰 보람을 느껴요. 사회복지사가 되기 정말 잘했다라고 느끼는 순간이죠.
 
원래 주변에는 어지간해선 제 이야기를 안하려고 해요. 외적인 모습만 보고 사람들이 슬퍼하거든요. 힘들긴 했죠. 수술을 36번이나 했으니까요. 극복하는 과정은 절대 쉽지 않았구요. 저도 앞서 말했던 중증장애인들처럼 극단적인 고민도 많이 했고, 어려움도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극복했죠. 저와 같은 중증장애인들에게 절대 절망하지 말고, 충분히 장애는 딛고일어날 수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가 도와주겠다고.

최재욱  지금은 다양한 봉사를 겸하면서 안산시 재활센터에 재직중이시라고 들었습니다.

김민준  네. 요즘은 장애인 시설 개선사업에 집중하고 있어요. 일반 건물들을 방문해 장애인들을 위해 법적으로 요구되는 편의시설등을 점검하죠. 틈틈이 교통약자들을 위한 민원차량 봉사도 하고 있구요.
 
우리나라의 많은 장애인들은 안타깝게도 다양한 여가시설을 맘껏 즐기지 못해요. 아직까지도 선진국들에 비해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죠. 일례로 극장에 가게 되면 휠체어에 탑승하면 아무도 앉지 않는 가장 앞줄에서 영화를 시청해야만 하죠. 같은 돈을 내고도 그 시설을 온전히 이용하지 못하는 데에는 사회적으로 장애인들을 위한 기본적인 인프라가 구축되지 못한 이유가 크죠.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도 많이 개선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구요.

최재욱  아직도 대한민국에서는 장애인들이 편하게 활동하기엔 부족한 것이 너무나 많죠. 장애인들에 대한 배려가 아닌 ‘당연히’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장애인시설을 설치하는 것이 대단한 배려인 양 행동하는 기업, 자치단체들이 많은데요. 시민들의 인식 개선이 절실히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민준  그렇죠. 저도 시설에 근무하면서, 경기도청과 6개월 정도 일반 초중고등학교를 방문해 장애인 인식개선사업을 했었는데요, 그 곳에서 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정말 무섭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죠. 아이들이 지체장애인들을 보면 일단 혐오감부터 나타내는 경우가 많아요. 그 사람의 내면은 첫인상부터 전혀 고려되지 않는거죠. 이러한 외적인 혐오감이 극대화 되는 이유는 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개선이 고려조차 되지 않는 이유가 큽니다. 장애인을 하나의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더불어 살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하는데 지금 매스컴에서나, 교육현장에서나 그러한 노력을 전혀 볼 수 없죠.
 
그런 편견과 시선 때문에, 비장애인보다도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장애인들이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어요. 장애인고용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업종도 꽤 많이 있구요. 재활과 인식개선을 위한 사업을 지속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시설이나 단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현장에서 들죠. 요즘은 그래서 힘이 닿는 한, 장애인들이 제대로 된 교육과 재활을 받을 수 있고, 동시에 사회적 편견을 해소할 수 있는 사회적기업을 만들고자 하는 목표도 생겼습니다.

최재욱  그 목표가 꼭 이루어지기를 저도 응원하겠습니다. 이제 편입학 한 상담심리치료학과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상담심리치료학과에 편입하자마자 학과 부대표를 맡으셨습니다. 공부하시는데 어려움은 없으신가요?

김민준  네. 학과장님의 추천으로 부족하지만 부대표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제겐 매우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죠. 복지행정학과에서는 나름의 공부를 해왔지만,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는데 있어 많은 학우님들을 알게 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여자학우님들이 많은 학과인만큼, 남자학우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최선으로 일하기 위해 노력중입니다.
 
공부에 대한 어려움이라... 처음 국제사이버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지금까지 제 자신을 채찍질 하면서 생긴 버릇이 있어요.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출근까지 한 2시간정도 강의를 듣는 버릇이죠. 그리고 퇴근 후에서 2시간정도 공부를 하고요. 남들은 간혹 ‘사이버대학은 공부가 쉽지 않아?’라고 말하지만 저에겐 굉장히 힘든 공부였어요. 제가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할 수 있는 건 노력뿐이었죠. 나름대로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공부했었어요. 그런데 상담심리치료학과에 들어와서는 또 다른 공부가 기다리고 있더군요!(웃음) 바닥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어려움과 즐거움을 동시에 느끼며 학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최재욱  아침엔 공부하기도 바쁘실 텐데, 학생들에게 문자까지 보내신다고 하시던데요?

김민준  네 맞아요(웃음) 학우님들께 매일 아침에 메시지 보내는 걸로 제 일과는 시작되죠.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고, 싫어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제발 보내지 말라는 분도 계셔서 민망한 경우도 있고요. 하지만 대다수의 학우님들은 좋아하시고, 공감해주세요. 제가 아직 학과 지식이 부족하지만, 제가 처음에 학과에 입학해 이해한 ‘상담심리’라는 것은 ‘사람간의 관심’이었거든요. 소통하고 대화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게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인 것 같아요. 그렇게 하루를 기쁘게 살아가시기를 바라며, 매일 아침마다 문자를 보내는 것이 어느덧 제 일상에도 작은 행복이 되었어요.

최재욱  앞으로 학업을 유지하면서 세운 계획이 있다면?

김민준  일단 상담심리학과에 입학했으니 졸업 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 학업을 수행해야죠. 사회복지사로 활동하면서 가져야 하는 상담역량을 키우기 위해 시작한 공부이니만큼 어려운 분들에게 올바른 상담을 통해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사실 이번 공부가 끝나면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공부는 할수록 욕심이 늘어나는 것 같아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장애인들의 고충을 제일 잘 알고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입장에서, 그들을 대변하고, 도울 수 있는 사회복지기관을 만드는 것이 제 인생의 목표이자 꿈이죠. 그 목표를 위해서는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무와 이론을 접목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장애인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끊임없이 노력 할 것입니다.

최재욱  마지막으로 웹진을 읽으시는 학우 및 동문여러분께 인사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기획 및 취재 : 최재욱
촬영 및 보조 : 이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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