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JCU 연 Quarterly Webzine 2015년 Autumn 제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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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善)한 고집과 집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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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연초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세계가 주목하는 흥미로운 음악회가 열린다.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신년 축하 공연을 하는데 이 공연이 전 세계 90여 개국에 생중계 된다. 오스트리아가 낳은 ‘왈츠의 아버지’ 요한 스트라우스 부자(父子)의 곡을 중심으로 왈츠와 폴카 등을 최고의 지휘자 주빈 메타가 지휘를 한다. 필자도 1991년 세계채권 딜러 연차 회의에 참석했을 때 경험한 빈 필이나 빈 소년 합창단 공연의 충격적인 황홀감을 기억하며 매년 TV를 통해 감상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가끔씩 카메라가 객석을 비추는데 그때마다 예외 없이 십 수 명의 동양인들이 현장에서 감상하고 있는 모습이 화면에 잡힌다. 눈에 띄는 것은 동양인으로 보이는 여자 거의 대부분이 기모노를 입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여성 관객들이 발가락 갈라진 버선에 게다(일본식 슬리퍼)를 끼워 신고 기모노 차림으로 관람하는 장면이 왠지 어색하면서도 독특하게 느껴졌다. 전 세계로 중계되는 연주회 현장에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확실히 알리는 구나라고 가볍게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의 신년 하례 예절에 있어서 지켜야 할 자기 것에 대한 고집과 집착, 그리고 자부심에 놀라움과 부러움이 교차한 것도 사실이다.

 또 다른 경험을 얘기해 보자. 작년 겨울 가족 동반으로 일본 규슈에 다녀왔다. 2001년 필자가 우리 광동학원과 일본 문리(文理)대학 간의 교류 협정을 맺기 위해 오이타를 방문한 이후 13년 만의 일이다. 렌터카를 이용해서 시골 마을 중심으로 다니곤 했는데, 그 중 한곳이 기츠키 무사(사무라이) 마을이다. 에도시대 규슈 북동부의 무사 마을로 지금도 당시 주거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진눈깨비 내리는 추운 날에 혹시 하고 들렸더니 예상대로 관광객은커녕 주민들도 보이질 않고 방문객 주차장에도 우리 차 한 대만 주차하는 형색이었다. 춥다고 불평하는 가족들을 이끌고(?) 영주(領主)집을 시작으로 구옥(舊屋)들을 구경하기 위해 들어갔다가 우리 모두가 깜짝 놀란 일이 벌어졌다. 추운 겨울 방문객 한명 없는 날 전기난로에 의지한 채 안내인이 우리를 맞아 주었기 때문이었다. 전혀 예상 밖의 안내인 등장에 놀란 마음으로 이런 날에도 근무 하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변은 “정해진 오픈 날이기에 당연히 근무하는 것이고 그 일은 자신의 책임이며 자신 만이 가장 잘 한다”는 얘기였다. 젊은이의 책임감에 할 말을 잊었다. 주어진 임무에 대한 선(善)한 고집과 집착이 감동의 직업의식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규슈의 깊은 산골에 있는 온천이 구로카와(黑川)다. 검은 화산재 암석이 깔린 골짜기 위를 온천수가 흐른다. 이 험한 골짜기 한 구석에 네비게이션에도 잘 나타나지 않는 야마미즈끼(山水木)이란 온천이 있는데 자연을 그대로 이용한 온천으로 유명하다. 이곳에 투숙객을 위한 안내 도우미가 있는데 40대 초반 정도로 영어와 한국어를 꽤 잘한다. 경력이 23년 이라는데 그 정도 외모에 외국어 실력이면 큰 도시 어느 특급 호텔에서도 경쟁력이 있어 보이 길래 왜 그 같은 산골에서 소박(?)하게 사는지 궁금해서 물어봤다. 그쪽 태생인 그녀가 말하기를 “자신은 구로카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전문가라 할 수 있으며, 동경이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는 그 지역 출신들의 경험과 지식이 필요한 것이지 자신의 영역은 아니다”라는 대답을 했다. 또 지역에 뿌리내린 자신의 조상처럼 자신이 집중할 곳은 그곳이고 20년 정도 더하다보면 규슈 최고의 온천 여관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포부도 말했다. 물어본 내가 머쓱해 졌다. 우리로 치면 강원도 태백의 어느 산골 마을인데 3개 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고향의 80여년 된 온천 여관을 자신의 평생직장으로 생각하며 집중하고 파고들며 고집스럽게 한 길을 가는 구나라고 생각하니 다시 한 번 일본인 바탕에 깔린 ‘보통의 저력’ 그리고 ‘변방(邊方)의 고집과 자부심’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

 주방 청소 3년하고 그 후 밥 짓기를 최소 3년을 한 뒤에 비로소 야채라도 다듬을 수 있게 되었고 그때부터 식구로서 인정받았다는 경력 60여년의 도쿄 긴자의 초밥 장인 얘기를 본적이 있다. 우린 어떤가? 2년 외국에서 요리 배우고 오면 곧바로 강남 한복판에 식당 내고 이름 좀 알려지면 요리 개발은 뒤로하고 TV 연애 프로그램을 종회무진으로 다닌다. 소스 냄새가 밴 장인의 도마와 앞치마보다는 콜롱과 헤어 스프레이 향기가 진동하는 멋진 정장을 입고 방송국으로 출근한다. 예상컨대 방송과 광고로 번 돈으로 강남에 빌딩을 살 것이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식당은 화려하게 재 오픈하지만 월급 주는 쉐프를 고용하고 본인은 방송인 겸 자본가로서 일상에 안주할 것으로 보여 진다. 이러니 우리에겐 전통을 이어가는 음식 장인 하나 변변한 분이 없을뿐더러 요리사라는 직업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도 약하다. 슬프게도 다른 직업군에서도 동일한 현상을 본다. 어떤 경우든 성공의 척도는 경제적 효과에 달려있고 그것의 종착역은 과학자든 연예인이든, 의사든지 간에 결국 자본가인 것이다. 수많은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는 슈퍼 파급력을 가진 ‘원천기술’을 개발했을 때 비로소 흔한 자본가를 뛰어 넘어 인류를 구하는 구원자가 될 수 있는데 말이다.

 올해까지 노벨상 과학 부분에 일본인 21명이 수상했다고 한다. 부러우면서 속상한 뉴스다. 우리 민족 DNA에는 과연 선(善)한 고집과 집착의 유전자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사회전체가 지나치게 경제적 성과와의 연관성에만 관심을 보이고 그 결과 우리 과학자들로 하여금 고용과 수익 창출의 임무 달성을 최우선시 하라고 과하게 재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돌이켜 보면 언제부턴가 과학 진흥과 관련된 우리의 국가 정책과 지원은 인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주는 원천기술 개발 보다는 단기간에 경제 효과가 가시화되는 응용과학 분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수십 년이 지나도 당장 실용에 적용될 결과물이 나온다고 장담할 수 없는 기초연구 분야를 파고드는 ‘선(善)한 고집과 집착’의 과학자들에게 국가의 응원과 지원이 제대로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나를 포함한 일반 국민들의 의식은 어떠한가? 우리 사회에 깊고 넓게 깔려있는 조급함과 과시욕이 변방에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과학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고 경제적 성과만을 연구 성공의 척도로 인정하는 원인이 된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과학자와 의학자 출신의 벤처 기업가만을 양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모두 되돌아 봐야 한다.

 가망 없다는 연구에 20년을 매달린 결과 청색 LED를 개발하여 2014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나카무라 슈지 교수의 선한 고집과 집착을 괴팍하다고 등한 시하고 성과 없다고 비난하는 사이에 우리의 미래 성장 동력은 남의 것이 됐다. 우리도 불가능에 도전하는 과학자나 불치병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의학자에 대한 재정지원과 관심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 비록 당장에 상업화되어 수익 창출로 이어지지 못해도 그 같은 사실이 단순히 지속적인 지원을 하느냐 마느냐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선진국으로부터 모방의 잔기술에 능한 민족이라고 평가 절하됐던 일본이 어느덧 기초 과학과 생명 과학 분야의 신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더더욱 놀랍고 두려운 점은 이 같은 연구 성과를 선도하는 이들이 자국에서 학위 받은 토종학자로서 주류대학이 아닌 지방 대학에 적을 두고 있는 ‘선(善)한 고집과 집착’의 표상(表象)이라는 점이다. 국가를 강대국으로 이끌고 더 나아가 질병과 불편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인물은 화려한 조명과 뉴스의 초점이 되는 자본가가 아니라 오히려 누구나 가는 길을 가려고 하지 않는 ‘고집’과 남들이 포기 한 것에 대해 ‘집착’하는 성향을 가진 은둔의 평범한 천재들인 것이다.

이경우
국제사이버대학교 부총장
보건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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