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JCU 연 Quarterly Webzine 2015년 Autumn 제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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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기고 42살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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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나에게는 오빠가 한 명 있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오빠는 결핵성 뇌막염으로 8개월 만에 세상을 등졌다. 어린 아가를 떠나 보내야했던 우리 엄마아빠는 가슴이 얼마나 아팠을꼬?

 그리고 4년 만에 내가 태어났다. 후에 들은 부모님의 말씀이 가관이다. 자신들과는 다른 외모의 못생긴 딸이 태어나서 병원에서 아이가 바뀐 줄 알았다고 하신다. 그나마 피부는 뽀샤시 하게 하얀 덕분에 어릴 적 어른들에게 예쁘다는 칭찬을 겨우겨우 들었었다.

 투명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던 아가시절, 나는 유독 조금 파인 곳이 있으면 넘어질까 손을 짚고 넘어가서 손을 탈탈 털고, 울 땐 수건에 눈을 대고 울었다고 한다. 지나치리만큼 깔끔한 성격을 가진 아기였던 것 같다.

 그러던 아가가 아팠다. 병원에서 받은 진단은 세상을 등진 오빠와 똑같은 병. 결핵성 뇌막염. 엄마와 아빠는 그날부터 날 위해 안 해본 것이 없었단다. 병원에서는 못 고친다고 했고, 절에 다녀보기도 하고 굿도 하고, 별걸 다하다가 마지막엔 결국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놀랍게도 그 이후로 나의 병은 점차 나았고 엄마아빠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커가는 내내 또 아플까 걱정을 하시며 노심초사하셨고, 두 동생이 있음에도 유독 귀하게 사랑받는 자녀였다.

그래서일까. 어린 시절의 나는 욕심이 많았고, 잘난 척 했고, 성격이 못되었었다.

 그렇게 성장한 고등학생은 학교에서 알아주는 말괄량이로 유명세를 탔다. 그리고 주변엔 항상 친구들로 넘쳐났다. 친구들을 모아놓고 전날 본 드라마나 시리즈 만화를 눈물 흘려가면서 얘기해주곤 하면 친구들은 나의 행동 하나에도 주목하고, 울고 웃고 떠들었다. 행복한 한때였다.

 어느 날, 제일 좋아하던 짝꿍 같은 친구에게 또 다른 친구가 생겼다. 욕심이 많고 잘난 척 하던 나는 그것이 얼마나 질투가 났는지, 너무나도 소중하고 친했던 친구와 크게 싸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친구라는 단어에 마음 문을 닫아버렸다. 친구도 소유물로 생각했었나보다. 욕심쟁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때였다.

 마지막 학력고사 세대였던 나는 점수에 맞춰 대학을 갔고 하기 싫은 공부를 해야 했다. 전과를 하고 싶었지만 쉬운 문제가 아니었고 다른 학교로 시험을 봤지만 그 또한 쉬운 게 아니었다. 친구와의 불화로 고등학교 생활 내내 이어진 심적인 아픔들은 대학까지 이어져, 내 기억 속에 대학시절의 좋은 추억들은 쌀 한 톨 분량도 없다.

그래서인지 나의 대학시절을 참 불행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 이제는 시간이 흘러 그 때를 대신할 수많은 추억들로 채워져 대학시절의 한 때는 가물가물하다. 아니 아예 기억이 안 난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나도 모르는 새에 저 멀리 있는 무의식의 저장고 속으로 그때의 추억을 넣어 버린듯하다. 그렇게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한 삶을 살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의 엄마가 되어 버렸다.

어느 날 문득 생각지도 않게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있었다.

 그곳엔 너무나도 초라한 모습을 가진 현재의 나 자신이 서있었다. 내 인생은 무엇일까라는 생각과 고민을 수없이 하던 중, 예뻐하고 의지하는 고등학교 후배의 권유로 대학을 진학해 공부를 다시 하게 되었다.

사실 그냥 공부라는 걸 하고 싶었다.

 내 인생이 여러 에피소드를 담은 한권의 소설처럼 씌어 왔다면, 그 마지막 장을 좀 의미 있게 살아보기 위한 발걸음이기를 바랐다.

 그리고 학업을 하면서 되돌아 본 그때의 나를 바라보며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것은 내 자신을 설득시키기 위한 부수적인 명분상의 이유였고, 뭘 하고 싶은지 뭘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없이 이곳에 왔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듯하다.

 국제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치료학과에 입학하고, 한 주 한 주 심리학 강의를 듣는데 교수님들이 말씀하시는 모든 것들이 내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그랬구나!’, ‘그것이 나의 아픔이었구나!’, ‘내가 그래서 아팠구나!’

 학과에서 마련한 만남과 모임들은 늘 눈물 바다였지만, 그 속에서 하나씩 내려놓는 모습들이 생겼고 모두들 성장하며 서로를 위해 걱정하고 위안하고 격려하는 모습들을 마음 속 깊이 느끼게 되었다.

 세상의 중심이 나였던 시절, 나는 이기적이었고 배려하는 법을 몰랐다. 물론 다른 사람 앞에서 조심하고 조심했지만, 과거 내 깊숙한 저 안에 있던 감정들이 눈 녹듯 사라지고,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바르게 변화되고 있음에 감사드린다.

 앞으로 더 깊숙한 곳의 나와 마주칠 용기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용기를 내어본다.

 누군가에게 상담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준비로 내가 치유되고 있다는 게 상담심리치료학과의 가장 큰 장점이 되지 않나 싶다. 아직은 시작의 단계이기에 심리학 용어와 학자들의 이론이 조금은 어렵다. 보고 또 봐도 이해가 안 될 때면 젊지 않은 나이라는 게 새삼 아쉽기만 하다.

 내겐 엄마, 아내, 자녀, 직장인. 거기에 학생이라는 또 다른 삶이 더해지게 되었다. 어느 때에는 내가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 많아서 공부에 완전히 집중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상담심리치료학을 배우면서 이 모든 역할 속에서 작은 행복들을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공부를 시작한 후 작은 변화가 생겼다.

 평소에는 너무 좋은 남편이 가끔 이유 없는 화를 낸다. 왜 화를 내는지 알지 못한 채 중학생 아들과 나는 그냥 화풀이 대상이 되었다. 그러면 덩달아 더 화가 나서 씩씩거렸고 나도 함께 감정이 무너졌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남편이 이유 없이 화를 낼 때면 ‘저 사람이 화가 났네, 그럼 건드리지 말아야지’ 생각만 했는데, 어느덧 마음의 치유를 통해 회복되니 내 스스로가 아무리 그런 상황에서도 화가 안 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 남편이 화를 내면 심지어 웃음이 난다. 내가 스스로의 감정을 다스리고 있다는 게 신기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이러한 작은 변화들이 원숙미를 갖는 중년을 만들겠지. 완전한 원숙미를 갖추는 그날이 기대된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로
현명한 아내로
효도하는 자녀로
대인관계가 좋은 직장인으로 거듭나기에 이상적인,
더불어 다음 장의 인생을 그려갈 수 있는 곳이 상담심리치료학과라는 생각을 한다.

대학 공부를 하면서 앞으로의 꿈이 생겼다.

 바로 청소년에게 목표를 갖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점이다. 그리고 조금 더 나이가 들어 청소년들과의 소통이 어려워질 즈음이면, 노인 분들께 재미있는 그림동화책도 읽어드리고, 때론 딸 같은. 때론 친구 같은 사람이 되어드리며 삶을 의미 있게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상담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우리엄마’

앤서니 브라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그리고 멋진 우리엄마
굉장한 요리사이고, 놀라운 재주꾼이며
화장을 멋지게 하는 훌륭한 화가에
장을 보고 올 때 두 손 한가득 힘이 센 여자
착한요정이기도 하며
천사처럼 노래할 수 있고
사자처럼 으르릉 소리칠수 있는 정말정말 멋진 우리엄마
우리엄마는 무용가가 되거나
우주비행사가 될 수도 있었어요
어쩌면 영화배우나
사장이 될 수도 있었고요 하지만 우리엄마가 되었죠

 이 시를 읽었을 즈음, 나는 나의 엄마도 꿈이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가슴 절였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내가 엄마가 되었고. 나는 새로운 도전을 통해 꿈을 가진 엄마가 되었다. 앞으로의 길은 까마득히 멀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그 먼 여정에 꿈이 있기에 기대감이 더 크다.

무엇보다 꿈을 잊고 살아온 지난 시절을 뒤로하고, 나에게도 꿈이 생겼다는 그 자체가 너무 너무 행복하다.

 나에게 삶의 또 다른 기회를 준 사랑하는 후배 미진이, 김현미교수님, 이주연교수님, 그리고 그림동화책을 사랑하는 어른이 되게 해주신 이영주교수님께 글을 통해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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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지영
상담심리치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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