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덧 10월도 하순에 접어들고, 조석으로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부는 것을 느낍니다. 출근길에 나서는 아침이면 쾌적한 기운과 청명한 날씨가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합니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본격적인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을 알리듯 어느덧 산중에는 오색빛깔 가을 단풍의 향연이 어느새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처럼 가을은 수확이라는 결실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축복과도 같은 사색과 독서의 시간도 갖게 합니다. 요즘같이 가을바람이 완연한 노을 진 오후가 되면 생각나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바로 등화가친(燈火可親)입니다.
燈 火 可 親 (등화가친)
등불등 불 화 가능가 친할친
등화가친(燈火可親)이라는 사자성어는 당(唐) 대의 대문호인 한유(韓愈)(768~824)가 사랑하는 아들의 독서를 권장하기 위해 지은 시(詩) 《부독서성남시(符讀書城南詩)》 중의 한 구절인 ‘등화초가친(燈火稍可親)’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 한 명인 한유는 중국 당 나라 때 문학가, 정치가, 사상가로 널리 이름을 떨쳤지만, 그의 아들 한부는 학업에 힘쓰지 않고 놀기 좋아하며 책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속을 썩이는 18세의 한부를 바라보며 한유는 고민에 빠졌다.
한유 : ‘어떻게 하면 저 골칫덩이 아들이 책을 가까이 할까?’
어느 가을 저녁, 고민을 하던 한유는 아들에게 책을 읽게 하는 회유책보다는, 아비의 마음을 온전히 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의 진심이 전달되면 아들이 마음을 바꿔 책을 읽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한유 : 여봐라. 가서 부를 데려오너라.
아들 부는 아버지가 갑자기 무슨 생각으로 자신을 부르시는지 의아했지만, 곧장 아버지가 계신 별채로 향했다.
한부 : 아버님, 이 야밤에 무슨 일이십니까?
한유 : 부야, 아비가 부탁이 있다. 마을과 들판에 서늘한 바람이 불고, 이제 날도 금새 어둑해져 등불도 가까이 할 수 있으니, 책 읽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구나. 앞으로 성남으로 가 글을 읽어보지 않겠느냐?
한유는 이렇게 말하며 아들에게 <부독서성남시(符讀書城南詩)>라는 한편의 시를 지어주게 됩니다. 이 시에는 아들이 책에 가까워졌으면 하는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을 듬뿍 담고 있습니다.

한유(768~824)
<부독서성남시(符讀書城南詩)>
時秋積雨霽 (시추적우제)
때는 가을이 되어, 장마도 마침내 개이고
新凉入郊墟 (신량입교허)
서늘한 바람은 마을에 가득하다
燈火稍可親 (등화초가친)
이제 등불도 가까이 할 수 있으니
簡編可舒卷 (간편가서권)
책을 펴 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서늘한 가을 저녁, 아버지의 진심을 알게 된 아들이 밝은 등잔불 아래서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독서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게 만드는 구절입니다.
흔히 오래 된 문헌에서부터 최근의 문학서적에서도 '등화가친의 계절'이라는 말이 가을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가을이 독서하기에 좋은 계절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좋은 책은 세상을 보는 안목을 넓혀 주고, 삶의 지혜를 얻고 사고의 깊이를 더하는 데 에도 큰 역할을 합니다. 올 가을, 바쁜 일상을 잠시 뒤로하고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등불 대신 스탠드 아래에서 책 한권의 여유를 통해 독서의 계절 가을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