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GU 연 Quarterly Webzine 2015년1월 제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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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교수의 감성칼럼 공감대 2.고통은 지나가고 아름다움은 남는다. La douleur passe, la beaute'reste
칼럼 대표이미지

 인생은 기본적으로 불공평하다는 것을 이해한다. 우리가 땅콩사건으로 유명해진 조현아처럼 태어난 것이 아니고 전지현처럼 길게 태어난 것도 아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가진 눈, 코, 입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부모로부터 온 것이다. 그럼에도 공평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아무리 회피하고 거부해도 모두 공평하게 한 살씩 먹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년은 아무리 생경하고 두려워도 누구나에게 온다.

 중년은 인간 발달과정에서 보면 중간 즈음에 있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그 시기의 애매함은 중년에게 정서적으로도 애매함을 경험하게 한다. 그래서 종종 과거를 되돌아보며 추억을 되살리는 여유를 부려보기도,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빠지기도 한다. 중년에 이르러 우리는 삶이 꼭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가 바라는 때에, 내가 소망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깊게 이해한다. 인생이란 간절히 원한다고 해서 그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경험한다. 그러면서 관대함을 배운다. 존재의 우연성, 선택의 우연성을 이해하고 나면 자신이 무엇을 용쓰며 해야겠다는 생각이 달라진다. 자식을 내 방식으로 고쳐보려고 해도, 내 배우자를 길들여보려고 해도 그것이 실은 얼마나 허망하게 미끄러지던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어떤 영역이 있다는 것을 깨달음으로 해서 어떤 것은 기대해도 될 만한 것이고 무엇은 기대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인식한다. 이를 통해 중년은 선물을 받는다. 다른 사람을 수용하고 이해하는 ‘관대함’을...

 몇 년 전 소중한 사람이 하늘나라로 서둘러 떠났다.
당시 머리를 스쳐가는 생각은 ‘불행은 공평하지 않다’였다. 왜 내가 이런 고통을 겪어야하는가? 왜 하필 나인가? 그러나 운명은 나의 억울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나에게 닥친 불행에는 이유가 없었고 그래서 더 원통하고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랬다. ‘왜 나만 이런 고통을 겪는가?’라며 애통해하지 마라. 오히려 ‘왜 나라고 이런 고통을 겪으면 안 되는가?’라고 되물어야 한다고. 그렇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왜 나라고 이런 고통을 겪어서는 안 되는가? 누구나 행복을 꿈꿀 자유가 있다지만 누구나 행복하지는 않다. 누구나 불행을 거부하고 싶지만 누구나 불행을 겪지 않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불행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일 것이다.

 내 눈앞에 있는 고통과 시련을 다르게 보는 눈이 필요하다. 우리는 중년이기 때문에 이런 시각을 더 예민하게 가질 수 있다. 고통에는 나쁜 것만 있는가? 그렇다면 세상은 모두 나빠야 한다. 고통이 없는 인생을 찾아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이는 그 고통이 자기를 일으켜 세웠다라고 한다. 고통을 경험함으로써 비로소 내게 온 행운과 성공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나아가 내 인생이 지금보다 나아지기 위해서는 마땅히 겪어야 할 아픔도 있다. 지금의 나 역시 몇 년 전의 고통이 성장통이 되어 만들어낸 것임을 고백한다. 그렇다면 아픔 없는 삶이 좋기만 할까?

 어떤 사람이 죽어 저 세상에 가보니 날마다 놀고먹기만 하는 곳이어서 자기가 천당에 왔다고 기뻐했다. 그런데 계속 놀다보니 너무 심심해서 수문장에게 “여기는 너무 심심하니까 차라리 지옥에 보내주세요”라고 요청했다. 이 말을 들은 수문장이 눈이 둥그레져서 물었다.
“너 몰랐니? 여기가 지옥이야.”

 갈등이 없는 드라마는 재미가 없다. 고통은 삶을 힘들게 하지만 인생을 흥미진진한 ‘사건’으로 만들기도 한다. 고통을 없애려는 가운데 삶의 의미도 생기는 법이다. 의미 없는 고통만큼 가치 없는 것은 없다. 지금 겪고 있는 이 고통이 우리를 한 뼘 더 자라게 만들기 위해서는 고통을 통해 어떻게 성장할 것인지, 그 의미를 곱씹어야 할 것이다. 의미 없는 고통, 내가 왜 당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아픔은 견디기 어렵다. 그러나 그 고통을 가치 없게 만드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삶이 나락에 떨어졌을지라도, 내 고통의 의미를 곱씹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실패는 성장으로 가는 과정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벼락같이 찾아온 불행, 언제 끝날지 모를 고통이 나의 영혼의 ‘선물’이 될 수 있다. 오늘도 어둠 속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고통의 시간 속에서 의미를 찾으며 책상 앞에 붙여 놓고 힘을 얻었던 글귀를 함께 나누고 싶다.

시골의 무도회 르누아르

시골의 무도회: 르누아르 / 소장 : 오르세 미술관(프랑스)

“고통은 지나가고 아름다움은 남는다”
르누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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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국제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치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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