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동가족상담학과장
- 김영미 교수 칼럼
- #4.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애착)
어느 고민상담 프로그램에서 한 연예인이 자신은 연애가 시작되려 하면 도망치고, 사랑을 하면 항상 을의 입장에서 양보하다가 거절당하기 전에 먼저 관계를 끊어서 힘들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내면을 들여다보니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공포스러운 기억이 타인과의 편안한 관계를 맺지 못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어쩌다 이 사람은 30살이 넘은 성인이 될 때까지 어린 시절의 상처로 힘들게 사는 것일까?

그 해답은 애착에서 찾을 수 있다. 애착(attachment)은 영아와 주양육자와의 깊은 정서적 유대를 의미하며, 영아가 인생을 살면서 만날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마음의 창이다. 놀이터에서 한 아이가 엄마를 정기적으로 확인하면서 신나게 노는 것을 상상해보자. 그러다 엄마가 시야에서 보이지 않으면 아이는 놀이를 멈추고 울면서 엄마를 찾을 것이다. 이 아이에게 있어 엄마는 두렵고 놀란 마음에 안정을 주고 위로라는 안식처를 추구할 대상, 안전기지(secure base)인 것이다.
영아기 형성된 애착은 부모 > 친구 > 연인 순의 사회관계망으로 넓어지면서 계속해서 영향을 주고, 이것은 부모-자녀 세대뿐만이 아니라 세대간으로 전이가 된다. 선행연구들에서는 할머니-엄마-아기, 3세대 간의 애착 유형의 일치도가 매우 높음을 발견하였다. 부모가 어릴 때 조부모와 신뢰롭고 안정적인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게 되면 그것이 적절한 부모 역할을 하는데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고, 결국 자신의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생애 초기 안정 애착을 형성한 사람은 이후 또래나 연인과도 안정적이고 신뢰로운 관계를 맺고, 자신의 자녀와도 긍정적이고 건강한 상호작용을 유지해 나갈 수 있다. 영아기 발달단계에서 애착은 다른 어떤 시기보다 가장 중요한 발달과업이지만, 이것을 이 시기에만 중요한 개념으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애착이론가들은 영아가 타인에게 의지하는 방식을 토대로 안정애착, 불안정애착으로 분류하고, 불안정 애착은 다시 회피애착, 양가-저항애착, 혼란애착으로 유형화하였다. 양육행동에 따라 어떤 애착유형이 형성되는지 알아보고, 애착유형에 따라 성인이 되었을 때 연인과의 사랑방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보자.

# 안정 애착 (secure attachment)
대부분의 영아는 안정애착(65%)에 해당되는데, 이 유형의 양육자는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민감하고 파악하여 즉각 대응한다. 예를 들어, 침대에서 영아가 울면 재빨리 들어올려 조심스럽게 안아주되, 안겨있고 싶어하는 동안에만 안아준다. 양육자의 속도나 목적을 강요하기보다는 자신의 리듬이 유아의 리듬과 순조롭게 맞물리게 한다. 주양육자가 ‘안전기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에 있어 거리낌이 없다. 친밀감에 편안하고 자율적이며 관계에 전념할 수 있다. 연락 빈도가 적당하며, 상대가 연락을 받지 않으면 단순히 ‘바쁜가 보네’라고 생각한다. 또한 버림받을까 두려워하지 않고, 건강한 연애가 가능하며 헤어져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을 지녔다.
# 회피 애착 (avoidant attachment)
불안정애착 유형 중 회피형 애착 유형의 양육자는 무심한 편으로 아이가 다가오는 것을 귀찮아하는 반응을 할 때가 많고, 아이가 울거나 슬픈 표정을 지어도 안아주거나 다정하게 대하지 않는다. 양육자가 자녀와의 신체 접촉을 불편해하는 경우이다. 반대로 지나친 보호나 간섭을 하고, 아이가 원치 않을 때도 쉴새없이 자극을 주는 경우에도 나타날 수 있다. 이 유형의 영아는 두렵고 스트레스 상황에 있을 때 안정을 찾기 위해 양육자를 찾는 대신 스스로 감정을 억누르면서 마음의 고통을 최대한 스스로 조절하려는 전략을 발달시킨다. 이들은 주로 의존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데, 한 사람에게 헌신하는 것을 어려워하며 자유와 독립을 선호한다. 대개 타인을 믿지 않으며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연애를 할 때에도 연인과 지나치게 가까워지는 것을 불편해하고, 자신에 대한 얘기를 하기 싫어하고 상대방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한다. 이들은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처음부터 내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가지지 않아 바람둥이가 되거나 연애 기간이 짧을 가능성이 크다.

# 저항 애착 (ambivalent attachment)
불안정애착 유형 중 양가-저항 애착 유형의 양육자는 양육태도가 일관적이지 않아 아이의 불안이 더욱 강화된다. 어떤 날은 아이의 요구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다가 어떤 때는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거나 기분이 좋지 않아 화를 내는 등 비일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동생이 태어나거나 부부 사이에 불화가 생겨 아이에게 소홀해지는 식으로 애정 표현이나 보살핌의 정도가 갑자기 달라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변화도 아이를 불안하게 만드는 큰 요인이 된다. 이런 불안으로 인해 어머니에게 접근과 접촉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분노와 저항적인 행동을 보이는 양가적인 행동을 나타낸다. 아이는 양육자에게 울거나 매달리면서 애정과 정서적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노력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 슬퍼하면서 양육자를 원망하게 된다. 이 유형은 상대방에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특히 애착 대상이 멀어질 경우 자신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상대방의 관심과 애정을 잃을까 불안해하고, 이러한 불안으로 끊임없이 연락하고, 연락을 받지 않으면 화를 낸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애인에게 너무 빠르게 다가가도 강한 애착을 요구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겁을 먹고 도망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러한 이별의 고통으로부터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한다.

# 혼란 애착 (disorganized attachment)
혼란 애착 유형은 양육자로부터 학대 경험이 있거나 무시당하는 극단적인 양육태도로 인해 발생하는 불안정 애착 중 가장 심한 형태이다.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보호하는 존재인지 아니면 위협하는 존재인지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고, 주양육자가 위로의 대상인지 아니면 또다른 불안의 대상인지 판단하지 못한다. 심한 우울증을 보이는 양육자의 자녀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는 유형이다. 이 유형은 고전적인 밀당의 형태를 보인다. 상대방이 다가오는 것이 불편해서 거부하면서도 친밀한 관계를 만들고 싶어 한다.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상대에게 언제든지 버려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으면서도 자신의 불안을 드러내지 않으려 스스로 멀어지며 차갑게 반응하는 것이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수동적인 태도를 보일 때가 많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난폭한 행동을 보일 때가 있다. 이러한 유형으로는 어떠한 관계도 지속될 수 없다.
삶의 초기에 정해진 애착 유형은 결코 바꿀 수 없는 운명이 아니다. 양육자와 안정 애착을 형성하지 못하였더라도 다른 친밀한 타인과 깊고 안정된 관계를 맺으면서 불안정 애착을 안정 애착으로 바꿔나갈 수 있다. 변화를 위해서는 현재 자신의 모습을 알고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부모와 자녀는 참 닮은 존재들이다. 서로의 구석구석을 너무 잘 알고 있고, 자녀가 많이 자랐다고 해도 강하게 맺어진 애착의 끈은 온전히 남아있다. 자녀를 키우고 있다면 자녀의 목소리를 더 민감하게 듣고 보듬어주자. 부모님도 사랑받고 싶어 하는 미숙한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여보자. 관계 속에서 서로 용서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관계의 안정을 다시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