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주 특수상담치료학과 교수 칼럼
- 감정인문학
- #4.사랑이 버틸 수 있는 거리_이영주교수

랜선 모임이 곳곳에서 활발하다. 2020년 이전에도 있긴 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서 랜선은 중요한 모임 공간으로 크게 부각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거나 하향되거나 상관없이 앞으로 우리는 랜선에 크게 의존하는 사회에 살게 될 것이다. 이렇게 활발해진 장거리(비대면) 친교는 우리의 낭만성 혹은 사랑도 변화시키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그리움의 공간, 친밀함의 표현, 함께 함이 가지는 정서적 교감 등은 대면 때와 사뭇 다르게 될 터, 2020년 코로나를 전후로 해서 그간 생존을 위해 유보했던 생각을 이제는 자분자분 꺼내 논의를 해 볼 필요가 있다. 그중 하나가 과연 우리의 사랑은 랜선에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버틸 수 있는 사랑의 거리는 과연 얼마큼일까?이다.
관계 속에서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고통을 느끼기도 하는 우리다.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자연 사이, 사람과 세계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관계망(net)들이 서로 얽히고 얽혀 우리에게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준다. 다만 이들 사이에 그 관계망이 촘촘한가 느슨한가 정도가 다르다면 다르다. 종래에는 이 관계망은 혈연과 지역을 기반으로 하곤 하였다. 그러나 현대에서 특히 지역성은 크게 완화된 모양새다. 직장도 학교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자리 잡았고 랜선을 타고 학습이 이루어지는 국제 사이버대학이 이를 증명한다(전통적인 대학들이 휴강을 하고 대혼란을 겪었으며, 세계 곳곳에 포진된 학우들을 생각해보라). 환경과 조건이 바뀌면 관계도 그에 걸맞게 형성되고 변형되고 또 창조된다고 볼 수 있다.
접촉이 아닌 접속으로
들뢰즈는 접속에 관해 통찰했던 프랑스의 철학자다. 그의 독창성은 여러 가지 있지만 그중 하나가 ‘리좀(Rhizom)’이다. 리좀은 뿌리를 말하는데, 여러 가지 뿌리 중에 접목하기 쉽고 이를 통해 다른 것과 자유롭고 복잡하게 이어진 뿌리를 말한다. 들뢰즈 표현에 의하면 리좀은 “줄기들의 모든 점이 열려 있어서 다른 줄기가 접속될 수 있는 것, 혹은 다른 줄기의 어디든 달라붙어 접속할 수 있는 것, 하지만 접속한 줄기들이 어느 한 점으로 귀결되지 않으며, 배타적 이항성도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접속하는 것들이 다양할 수 있고 또 접속의 빈도가 자유로운 리좀에서 ‘관계’는 훨씬 더 즉흥적이고 우발적이다. 리좀의 특이점은 바로 이질적인 모든 것에 대한 자유로운 ‘접속’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진정한 의미의 다양성은 새로운 이질성들의 접속이며,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이 생성되는 것, 그래서 전체의 의미를 다르게 만드는 것이다.
랜선으로 공부하고 랜선으로 모임을 하고 또 랜선으로 사랑을 나누는 오늘날에 있어서 들뢰즈가 한 통찰은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무한히 열어준다. 특히 국제사이버대학처럼 배움이 랜선에서 일어나는 곳을 들뢰즈의 리좀이라는 새로운 시선으로 주목해 보자. 정답을 향해 모두 똑같이 대답하는 것이 기존의 배움이라면, 차이를 발견하는 것, 차이를 다양성이라는 차원으로 인정하고 그 다양성을 증식시키는 것이 오늘날의 배움이다. 바꿔 말하자면 들뢰즈에게 있어 배움은 알고 있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공부란 “미지의 것, 알 수 없는 것을 파헤치는 탐구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같은 곳에서 같은 문화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공부하는 것과 전 세계에 퍼져 다른 문화와 생각을 교환하는 것은 탐구 내용과 그 결과가 사뭇 다르다. 이질적이고 다양한 접속은 배움의 다양성과 학습결과의 창조성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즉 얼마나 다양한 존재들과 접속하는가와 그 다름에서 오는 생각들의 교류가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가는 배움의 질에 크게 작동한다.
리좀식 배움은 접속의 크기와 횟수, 그리고 다양함의 종류와 질(質)로부터 무한히 성장한다. 그래서 오늘날에 있어 접촉보다 접속이 더 중요한 사회적 관계의 질을 이끌고 학습 성장에 더 강력한 무기로 작용한다. 접속의 중요성이 커진 오늘날, 이쯤에서 접속의 질(質)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접속 빈도와 함께 접속의 질(質)은 리좀적 사유와 학습의 질에 크게 작용한다. 이것이 우리가 견딜 수 있는 사랑의 거리를 확대 시키는 지점이다. 접속의 빈도가 사랑 표현의 빈도라 한다면 이 빈도와 더불어 접속의 질은 사랑의 지속 거리와 사랑의 기간을 늘려준다. 우리 학교는 이미 접속은 활발하고 그 접속의 외연도 많이 넓혔다. 이제 그 넓어진 외연만큼 우리가 확보해야 할 것은 관계의 질, 즉 사랑이 버틸 수 있는 질적 거리이다. 특수상담치료는 개개인의 독특성과 삶의 조건들을 수용하면서 그 조건에서부터 출발하는 각기 삶의 다양함을 랜선 기반 질적 대화로 리좀식 융합과 창조를 대비하고 있다. 리좀식 사고, 리좀식 학습은 배움을 더욱 풍요롭고 창조적으로 만드는 21세기형 사랑 방적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