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해를 맞이하며

 정치(政治)란 ‘신뢰를 바탕으로 국민을 번영과 행복으로 이끄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신뢰는 ‘’과 행동 그리고 실적 등으로 표현되고 쌓여가는데, 이 중에 효과가 가장 즉각적인 것이 ‘말’이기에 구사하는 데 신중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제자 자로(子路)가 공자(孔子)에게 물었다 ‘정치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공자는 ‘말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라고 답한다. 말을 바로 세운다는 의미는 사실에 근거한 올바른 말을 적절히 구사한다는 뜻이다. 거짓이거나 왜곡된 말을 상황과 대상을 구분하지 못한 채 자신의 약점을 감추거나 혹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존재감을 보여주기 위해 남발한다면 신뢰를 상실하게 됨은 물론 됨됨이가 수준 이하라는 취급을 받게 된다. 이처럼 말의 진정성과 적절성은 신뢰 구축의 핵심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는 기본이기 때문에 위정자(爲政者)들만이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같이 평범한 범인(凡人)들도 똑같이 주의해야 한다. 정리해 보면, 개인의 존재감은 ‘말’의 신뢰 위에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인데, 여기서 핵심은 ‘존재감의 기반이 되는 신뢰는 진실하고 시기적절한 말과 행동이라는 토양에서 싹튼다’는 것이다.

 많은 말을 해도 기억에 남지 않은 사람이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존재감이다. 존재감은 분명 어딘가에 있으나, 누군가에게는 있고 누군가에게는 없다. 조직 심리학자이자 런던정경대학교 연구원인 레베카 뉴턴 박사는 조직 내 구성원의 존재감은 말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을 규명했다. 현란한 언어 구사나 오랜 경력에서 알고 있는 옛날얘기를 나열하면서 소위 ‘라떼 - 과거 내가 한창 일할 때를 의미하는 신종 어’ 타령만 해서는 절대 존재감이 부각 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사실에 근거한 내용, 적절한 시기와 환경, 선택적 전달 능력 그리고 전달 방법 등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필수적인 요소라고 강조한다. 우리가 함께했던 많은 회의를 뒤돌아보자. 특정 주제에 대해 발표를 해도 전달력과 설득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있다. 얕은 지식 조각들과 전문 용어 몇 개를 엮은 후, 마치 오랜 기간 고민하고 생각한 의견인 양 포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성이 담긴 고민의 흔적이 담겨 있지 않기에 그의 말은 신뢰를 주지 못한다.

 말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appeal)하려면 적어도 두 가지 조건이 전제되어야 한다. 첫째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오랜 기간 생각하고 조사하고 고민한 결과를 정리해서 말해야 한다. 이런 과정 없이 즉흥적이고 단편적인 지식으로만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려는 사람은 공감의 수명이 길지 않다. 둘째는 말의 적절성이다. 내용(content)의 선정에 있어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어리석고 품성이 저급한 사람들은 어떤 콘텐츠를 어떤 방식으로 누구에게 전달해야 자신의 존재감이 드러나는지 잘 모른다. 그러기에 내용 없는 ‘라떼’ 타령이나 남을 비난하는 것으로만 존재감을 나타내려 하니, 공감을 주지 못한다. 자신의 분야에서 이뤄낸 실적을 바탕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국면(局面)을 말로 때우고 자신의 능력을 과장해서 떠벌리는 수준밖에 안 되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반면 조용한 한마디가 주목받는 일도 있다. 그의 말은 근거가 있고 사리 판단의 결과이며, 적절한 고민과 많은 생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말 한마디에 국면이 전환되고, 얽혔던 문제가 풀리며, 새로운 해결책이 마련되고, 조직의 결속력이 강화된다. 반면에, 생각 없이 던지는 말은 긍정적인 영향은커녕 반목과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말하는 사람의 인품도 스스로 깎아 먹는 결과를 낳는다. 역량이 모자라고 자신의 분야에서 성과를 못 내는 사람일수록 근거 없는 억울함을 남발하고 무능력은 감추면서 불현듯 소외된 피해자인 척한다.

 필자는 존재감이란 말로서 보여줄 수 있지만, 말은 여러 수단 중에서 하나일 뿐 전부는 아니라고 믿는다. 오히려 말을 아끼고 음지에서 자신의 역할과 임무를 조용히 수행하고 있는 ‘침묵의 실천’이야 말로 ‘진정한 존재감’의 표본이 아닐까 생각한다. 현란한 언어 구사 능력으로 신뢰를 쌓고 더 나아가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 시키는 사람일수록 속이 비었고, 허황한 가식(假飾)으로 포장한 경우가 많다. 진짜 존재감은 말이 아니라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끊임없이 정진(精進)하고 그 결과 긍정적인 실적(實績)을 생산할 때 비로소 드러나게 된다. 앞서 언급한 ‘침묵의 실천’이다. 자신의 분야에 정통하고,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업적과 활동을 하는 사람은 요란하게 떠들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는다. 엉뚱한 주제를 안주 삼아 헐뜯고 비방하는 대화에 말을 섞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어디든 자리하게 되면 엄중한 무게감을 풍기면서 참석자들의 주의를 집중시킨다. 진정한 존재감이 발현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사람이 많은 조직은 요란하지 않지만, 건전한 토론이 풍성하게 진행되고, 항상 바른 방향으로 발전해 간다.

 위에서 언급한 존재감에 전혀 해당하지 않으면서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또는 먼저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저급한 수준의 존재감을 보여주려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이런 종류의 사람일수록 말로써 실수를 남발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부족한 업적과 성과로 인해 항시 조급하고 불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존재감이란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영역에서 성과를 내다보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다. 이 점을 잘 알면서도 자신의 게으름과 무관심으로 인해 만들어진 무존재감을 남을 헐뜯고 비방하는 것으로 메꾸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소외되고 뒤처졌다는 강박감에 엉뚱한 방법을 동원한다. 떠도는 잡학(雜學)과 억지 논리를 가지고 자신의 약점을 포장하기에 바쁘다.

 ‘인간을 인간으로 지탱해주는 힘 가운데 가장 원초적인 것이 무엇일까? 염치(廉恥)를 아는 것이다’. 서강대 철학과 최진석 명예교수가 한 말이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염치가 있는 사람은 자신을 뒤돌아볼 줄 안다. 눈앞에 놓인 이익과 존재감을 위해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혼동하거나 자신의 약점을 감춘 채 남을 비난하지 않는다. 염치가 있는 사람은 자기 성찰(省察)을 한다. 성찰을 통해 겸손과 감사가 발현되는 것이다. 그래서 염치는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염치없는 사람은 고마움을 모르고, 주변의 도움으로 이룬 성과와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한 과거의 인연을 부정하면서 혼자만의 업적으로 치부한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줄 모르는 우매한 사람으로서, 주변에 불신과 배신감을 안겨주기에 결과적으로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게 된다. 우리가 어떤 존재감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할지 스스로 되돌아볼 일이다.

국제사이버대학교 총장
경영학 박사 이 경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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