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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스티브 잡스, 애플을 망가뜨리다.
고집, 불통 오너의 신념으로 인해 벌어진 몰락 - 애플III

 기고만장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는 차세대 APPLE을 고민하던 중 시대를 3~40년쯤 앞선 생각을 하게 된다. APPLE COMPUTER와 APPLE II의 성공에 도취되어 마치 자신이 미래를 예견하고 세상을 바꿔버리는 창조주 같은 역할을 하고 싶은 꿈을 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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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먼 훗날 아이폰의 등장과 성공으로 한방에 이 청년의 꿈은 현실이 되어버렸다)

 워낙 괴팍한 소유자였던 그는 어느날, 연일 소음 이상의 무엇으로 여겨지던 컴퓨터의 발열팬을 아예 빼버릴 생각을 했다. 일반가정에서 사용하는 가전제품 중 어느 것도 이 정도 소음이 나는 건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청소기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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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애플3 기판. 칩 개수가 몇 갠데 발열팬이 없다니 삼겹살을 구워도 익을 것 같다.

 지금이야 기술의 발전으로 팬리스(FANLESS) 노트북도 출시되었지만, 당시엔 팬을 제거하고 컴퓨터를 구동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엔지니어들에게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기판에서 발생하는 100도에 육박하는 열을 팬 없이 배출해 흘려보낸다는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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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팬리스 PC의 경우 이렇게 최대한 열전도율이 높은 본체 케이스+히트파이프를 통해
열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배출한다. 그나마도 저전력 저발열 프로세서에만 가능한 기술이다

 30년이 지난 현대에서도, 인텔의 최신 저전력 저발열 칩셋에서 조차 모터가 달린 쿨러가 없는 자연 공랭식으로는 발열을 완벽하게 제어하지 못한다. 지금도 팬쿨링이 아닌 경우 고사양의 작업을 진행하면 발열로 인해 스로틀링(Throttling, 칩셋이 과도하게 과열될 때 기기의 손상을 막고자 클럭과 전압을 강제로 낮춰 성능저하가 되는 현상)이 발생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지금도 이런데 1970년대 후반에 팬을 제거한 공랭기술이 발전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을 생각해낸 사람이 바로 전 세계 최고의 컴퓨터 제조사. 그것도 의사결정 과정에서 아무리 담당자들이 아니라고 외쳐도 독단적으로 밀어붙이는 성향의 오너인 스티브 잡스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훗날 이 결정으로 인해 당시 APPLE II를 앞세워 세계 최고의 PC 제조업체가 된 애플의 차기작 ‘APPLE III’는 다양한 매체에서 [IT 역사상 가장 멍청한 기기 TOP10]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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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긴건 안멍청하게 생겼지만 ㅠㅠ

 이제는 거대 기업이 된 애플컴퓨터 내부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수한 엔지니어들이 대거 투입되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연구에도 발열을 잡을 엄두조차 못 냈다. 심지어 애플3는 당시 최고성능의 칩셋을 사용했었기 때문에 문제해결이 더 어려웠다.

 부품수급과 설계도 쉽지 않은데 발열까지 잡으라니! 잡스의 이러한 말도 안 되는 강요에 개발자가 여럿 갈려 나갔다.

 이런 기술을 30년 전에 구현하려 했으니, 퍼스널 컴퓨터의 ‘설계신 설계왕 설계덕후’였던 APPLE II의 진짜 아버지 워즈니악님도 이 문제에서만큼은 백기를 들었다.

 ‘스티브. 이건 못해, 지금 수준의 기술로는 불가능해.’라고 말했음에도 고집불통 잡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며 과도한 비용까지 투자해 개선점을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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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돼 스티브 기술적으로 불가능한거야! 아냐 하지마!”

 마치 왕처럼 군림해 조금만 자신의 생각과 달라도 바로 호통을 쳐버리고, 실무자와 소통하지 않는 오너가 자신의 고집마저 꺾지 않을 때, 아무리 건강한 회사라도 얼마나 빠르게 망가질 수 있는가를 당시 스티브 잡스의 애플컴퓨터가 아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애플컴퓨터의 투자비용은 날이 갈수록 눈더미처럼 불어나고 있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결국 미완성 형태로 출시된 애플3는 방열판을 이용해 발열을 아주 일부 컨트롤 해냈지만, 그나마도 사용하는 중간에 꺼져버리는 일이 빈번했다. 거기에 4,000달러라는 경이적인 가격이 형성되었다. 발열문제로 개발비용을 과다 투자한 결과물이었다.

 결국 APPLE III는 출시된 지 2년 만에 흔적도 없이 단종 되어 버렸다. 기업들은 컴퓨터가 고장나면 구형 APPLE II를 다시 구했고 납품업체는 APPLE III보다 II를 구하는데 혈안이 되어있었을 정도다.


시대를 앞서갔지만 가격이 너무 앞서간 - APPLE LISA

 APPLE III가 망했다. 스티브 잡스 또한 자신의 엔지니어 지식의 한계를 그 큰 실패 후에야 자책했다. 그리고 절치부심해 출시된 비운의 명작이 있었으니, 그의 딸의 이름을 빌리고, PC 최초로 마우스를 기본 탑재한 비즈니스용 컴퓨터 리사(LISA)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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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왼쪽에 있는 컴퓨터 LISA 말입니다

 리사에 사용된 운영체제는 과거 1978년 제록스사에 방문했던 스티브 잡스가 연구소가 개발한 GUI(Graphic User Interface, 이미지로 표현되어 작업을 실행하는 컴퓨터 환경)의 프로토타입을 보고 ‘저것이 미래의 컴퓨터다’라는 생각으로 마우스를 사용하는 컴퓨터 개발에 착수한 끝에 완성했다.

 이 LISA는 지금 현재 애플의 모든 컴퓨터 라인업에 사용되고 있는 MAC OS의 조상님이라고 보면 되겠다. 우리가 흔히 보는 윈도우 화면에 마우스 커서도 역사를 되짚어보면 보급이 활성화 된 아주 중요한 부분 즈음에 LISA라는 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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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과거 기기들은 디자인을 보면 늘 캬~ 하는 감탄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그의 독단적이고 이기적인 행동 탓에 결국 개발자들의 반발로 프로젝트 팀에서 좌천되기도 했다. APPLE III의 실패 이후 애플컴퓨터에서의 영향력이 많이 약해져 있던 그였다.

 과정이 어땠던, 비즈니스 사용자를 대상으로 높은 성능과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제공하고자 개발되어 출시 된 리사는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매우 완성도 높은 PC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라고 하지만 무려 출시 가격이 9,995달러!! 10,000불에서 5불 빠지는 금액이었다!!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무려 개인용 컴퓨터 한 대 값이 중형차 한 대 값인 3,000만 원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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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1982년 버전 크라이슬러 레바론의 출고가가 9,000불이었더랬다(이러니 누가 사겠나)

 600달러 수준이던 APPLE II로도 비지칼크라는 훌륭한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과 다양한 게임들을 구동할 수 있는데 굳이 15배의 엄청난 가격(다시 말하지만 레바론 한 대 값)으로 이 제품을 구매하는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다. 실패의 연속이었다.

 리사는 사실 ‘가격만 빼고 보면’ 지금 와서 돌이켜봐도 애플이기에 만들어낼 수 있었던 ‘발상과 즉각적인 개발, 그리고 제품화가 동시에 이루어진 훌륭한 결과물’이었다고 볼 수 있다. 최초의 마우스나 키보드를 사용하는 그래픽 인터페이스 컴퓨터가 가지는 의미는 한 세기가 지난 지금에서는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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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쥐를 닮아서 마우스라고 이름을 지어봤는데요
한 30년 뒤엔 이거 없인 불편해서 컴퓨터 못할지도 몰라요~

 그럴 만도 한 것이 현재의 GUI는 데스크탑의 윈도우, 맥OS는 물론이고 IPTV나 저가 MP3플레이어 등 다양한 기기에 매우 보편화 된 출력 시스템이지만, 리사 개발 당시의 컴퓨터는 언어를 키보드로 입력해 결과물을 출력하는 기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30년 전쯤 도스 등의 운영체제를 사용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1983년에 출시한 리사는 ‘GUI를 도입한 보급형 개인용 컴퓨터’라는 것만으로도 당시에는 거의 SF영화에나 나올법한 인터페이스를 보며 우주인을 납치한 기술 정도로 여겼을지 모르겠다.

 여하튼 리사의 초기 실패 이후 애플은 포기하지 않고 여러 기능이 보완된 리사2를 내놓았다. 무려 50%나 저렴하게 출시했지만, 이 역시 지금으로 따지면 준중형차 1대 값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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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당시 미국에 수입된 르노의 준중형급 세단이 5,595달러였다...

 결국 시장에서 매장당하다시피 없어져 버리고 리사 프로젝트팀은 아주 크게 망하게 된다. 생산된 물건 중 상당수는 재고품으로 남아 미국 유타주의 한 쓰레기매립장에 묻혀버리게 되는 슬픈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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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뒤의 LISA 중에 몇 개는 땅속에 있을텐데...

 다행인 것은 리사에서 처음으로 정식 채택된 마우스 컨트롤부터 높은 해상도, 데이터 손상 보호 설계, 내장형 확장슬롯, 하드디스크 기반의 운영체제, 보호용 메모리나 멀티태스킹 기능 등 리사를 개발하면서 갖게 된 기술력은 고스란히 애플이 후에 다시 어둠을 딛고 일어서게 만든 ‘매킨토시’ 플랫폼에 많은 부분 채용되었다. 돌이켜보니 회사 입장에서는 그저 삽질만 한 것은 아니었다.

 시선을 돌려 스티브 워즈니악은 리사 개발 즈음부터 잡스의 이해 불가능한 제품 기획과, 시대를 앞선 기술에 대한 개발 강요에 지쳐버리게 되었다. 워즈는 스스로 본인의 자서전에서도 고백했듯, 회사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즐기는 자유를 추구하는 성격이었다.

 결국 두 스티브의 공생관계는 생각보다 오래가지 못했고, 애플컴퓨터의 진짜 아버지 스티브 워즈니악은 애플에서 퇴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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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현재까지 암으로 고인이 된 잡스보다 훨씬 자유분방하고 즐겁게 살고 있다. 인생은 워즈처럼!


애플의 창조주, 애플에게 쫒겨나다

 애플2의 엄청난 성공 이후에는 출시되는 제품마다 시장에서 외면당한 스티브 잡스의 자존심은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확장되고 있었고, 다시금 애플2만큼의 밀리언셀러를 만들어내기만 하면 당시 업계 1위 애플이야말로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서 부족한 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리사프로젝트에서 퇴출된 뒤 잡스는 리사에 적용된 혁신적인 GUI를 이용하여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손쉽게, 그리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 있는 직관적인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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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킨토시의 gui로 멀티태스킹을 구현한 모습. 지금이야 흔하지만 당시엔 혁명 of 혁명이었다

 그동안 한정된 비즈니스 사용자그룹으로도 이 정도의 성과를 냈는데, 이를 비즈니스를 제외한 나머지 사용자. 즉 가정에까지 확대하면 수요가 폭발할 것이라는 예측이 그 이유였다. (그리고 그 예측은 정확히 맞았다. 2000년대 들어서부터는 PC가 없는 집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가 되었으니.)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잡스가 만든 개발팀이 바로 ‘매킨토시 프로젝트 팀’이었다. 매킨토시는 직관적이고 쉬운 컴퓨터라는 목표로 1984년 생산되어, 현대에 이르기까지 애플의 MAC라인업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개발 당시 매킨토시는 많은 문제점 속에서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그중 가장 치명적이었던 것은 제품 자체의 문제가 아닌 매킨토시 개발자들과 오너 간의 불협화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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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 인생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
스티브잡스가 별세했을 때 TIME지의 커버에도 이 사진이 쓰였다.

 당시 매킨토시는 IBM PC를 제치고 차세대 PC로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었다. DOS를 사용하던 시절에 지금의 윈도우 같은 GUI가 탑재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일반 사용자들에게는 진입장벽이 크게 허물어졌다고 볼 수 있었다.

 쉽고, 직관적이며, 누구나 마우스 클릭 한번만으로 프로그램을 구동할 수 있었다. 거기에 잡스의 가장 큰 장기인 디자인 부분에서 정말 멋진 가전제품 같은 미려한 디자인이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시장의 반응은 리사, 애플3때와는 사뭇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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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마케터 존 스컬리의 표정만 봐도 매킨토시는 성공의 냄새가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런 다양한 방식의 접근이 필요한 고차원적인 운영체제를 만드는 개발자들과 다양한 분야의 엔지니어들의 노력과 희생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기적인 최고경영자였던 스티브 잡스는 그들의 급여와 복지문제에는 매우 인색했고, 결국 리더의 무관심으로 형편없는 연봉을 받고 있는 데에 불만을 품은 우수한 엔지니어들이 하나 둘 프로젝트 팀을 떠나거나 이직하게 된다. 펩시에서 스카웃 되어 애플컴퓨터의 사장으로 부임한 존 스컬리가 뒤늦게 어떻게든 막아보려 나섰지만 소용이 없었다.

 팀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데에는 탁월했겠지만, 제품을 생산하는데 필수적인 작고 큰 도구들을 자신의 이기심에 전부 잃어버린 스티브 잡스는 결국 구성원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오너이자 모두의 적이 되어버렸다. 거기에 리사프로젝트부터 자신의 판단만으로 회사자산 몇억 달러를 허공으로 날려버린 잡스였다.

 스스로의 고집과 패기로 정신이 나가, 조금만 자신의 생각에 거슬리면 바로 고함과 물건을 집어던지는 독단적 오너. 그를 기억하는 당시 엔지니어들이 여러 인터뷰에서 한결같이 말하는 마지막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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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5년 5월
그리고 그렇게 잡스는 이사회의 의결 하에 본인이 만든 회사에서 본인이 해고를 당하게 된다.

 개인주의로 인해 철저하게 무너졌던 스티브 잡스는 이 일로 많은 성찰을 했는지, 후에 애플 CEO로 복귀 후 직원들의 연봉과 복지 수준을 전 세계 IT기업 중 최고수준으로 상향시켰다.

 그리고 2019년 현재, 잡스가 사망한 지 벌써 몇 년이 지났지만 애플은 수많은 혁신으로 전 세계 시가총액 1위의 기업의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잡스는 나이가 들어서는 가족을 포함한 직원들, 자신의 사람들에게 그렇게 나쁜 사람만은 아니었다. 되려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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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중년기의 모습들은 실패와 반성을 통한 개선인지, 아니면 그마저도 비즈니스적인 판단의 연장선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복귀 이후의 스티브잡스를 보면, 애플을 만들어낸 ‘창조주’의 권위는 다시 찾았었음이 분명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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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 Team Cheongs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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