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JCU 연 Quarterly Webzine 2019년 Winter 제18호
  • GJCU 2019 신년사
  • GJCU 커버스토리
  • GJCU 알림
  • GJCU 칼럼
  • GJCU 교수기고
  • GJCU 가족마당
지난웹진보기
상단으로 이동
선진(先進) 시민의 조건

 “자신을 존엄하게 여기는 일은 ‘윤리’의 문제이고 타인을 존엄하게 대하는 일은 ‘도덕’의 문제입니다. 윤리우리 스스로가 최선의 모습으로 살아가라고 우리 자신에게 명령합니다. 도덕은 우리가 끊임없이 타인을 배려(配慮)하라고 말합니다.” 언젠가 읽은 기억이 있는 김원영 변호사의 글이다. 그는 지체 장애 1급으로 검정고시와 로스쿨을 거쳐 현재 인권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평소 내가 생각하던 선진사회로 가기 위한 시민의식의 조건에 부합하며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글이라고 생각되어 반가웠다. 규정과 법에 어긋나지 않게 항상 자신을 추스르고 나의 자존감 못지않게 남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신념과 행동이 성숙한 사회의 전제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두부를 자르듯이 명확히 구분 할 수는 없지만, 윤리는 자신을 뒤돌아보는 개별적 문제에 대한 것이고 도덕은 나 이외의 다수를 돌아보는 다중적 차원의 것으로 단순화시킬 수 있다. 도덕적이지 않은 행위는 타인에게 피해를 끼친다는 점에서 성숙한 선진 사회일수록 일생을 두고 도덕교육에 국가의 교육 역량을 집중하고 있음을 우리는 주지(周知)해야 한다. 윤리와 도덕은 우리들의 행동거지를 규정하지만 상호 무관한 별개(別個)의 개념으로 받아들인다면 실로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게 된다. 즉, 자신은 생각과 목적이 정의롭고 항상 규정과 법에 어긋나지 않기에 한 점 거리낄 게 없다는 생각만 하고 결코 타인의 입장에서 고민하고 배려하는 습관이 없다면 성숙하지 못한 위험한 마음가짐이란 뜻이다. 타인을 위한 배려와 고민이 없는 공동체는 정의만 앞세우는 지독한 이기주의자들의 자기 잘난 오만함이 가득한 사회로 전락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 아무리 법과 규범을 준수하면서 윤리적으로 살아간다 해도 타인에 대한 배려심 없는 비도덕적 행위 하나가 공동체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게 하거나 특정 구성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을 준다면 우린 여전히 후진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제천, 밀양의 화재와 대전 요양병원 화재로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걸 기억한다. 새롭게 법이 만들어지고 규정이 정비됐지만, 똑같은 부주의와 무관심으로 인한 화재가 또다시 천안의 호텔에서 발생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 문제로 온 나라가 몇 년째 난리를 치렀는데 여전히 규정대로 정비(整備)하지 않고 운항하기 일쑤고, 과적이 일상화되어 있으며, 허가된 항로를 벗어나 불법 영업을 하던 낚싯배가 화물선과 충돌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화물선 선원의 증언은 얼마나 우리들이 ‘배려라는 개념’ 없이 마구잡이식으로 살아왔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조그만 낚싯배를 확인하고 충돌 위험이 있다고도 생각했지만 충돌 시 훨씬 피해가 클 상대방이 스스로 알아서 피할 줄 믿고 조치 없이 들어가 잤다는 기사를 봤다. 놀랍도록 어이없고 기막힌 얘기다. 조그만 배려가 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 텐데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교육과 배움이 제로 상태다. 왜 우린 이토록 배려의 습관이 없는 것일까?

 ‘윤창호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여전히 만취 상태의 운전자가 상점으로 돌진해서 사상자를 냈다. 소위 ‘한음이법’ 이후는 어떤가? 승합차로 통학하는 유아들에게는 의무적으로 탑승교사가 동행해야 하지만 신문 기사에 따르면 여전히 애들만 타고 내리는 통학차가 흔히 발견된다고 한다. 어느 날 혼자 내리던 어린이집 유아가 또다시 차 사고를 당하거나, 홀로 차 안에 남겨졌다가 질식사고를 당했다는 뉴스를 접하고는 운전기사나 탑승교사의 배려와 주의를 아쉬워하는 일이 재탕될지도 모를 일이다. 사고가 나면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모두가 난리다. 하지만 몇 명이 구속되고 여론이 잠잠해지면 다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어버리고는 또다시 탈법적인 관행이 반복된다. 들끓는 여론을 땜빵 하듯이 단편적인 접근으로 해결해서 잠재우면 끝이라는 위정자들의 근시안적인 정책이 아직도 우리가 후진국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공사하는 사람은 완공 후 실제 사용할 사람 입장에서 안전과 편리성을 고민하고 만전을 기해야 한다. 식당에서 애들이 정신없이 뛰노는 상황이, 술집에서 만취한 상태로 고성방가(高聲放歌)하는 행태가 타인의 입장에서 어떻게 느껴질까를 습관처럼 생각해야 한다. 내 자유 못지않게 남들에게 주어진 자유도 절대 존중하는 걸 배워야 한다. 평생을 배워서 몸에 밴 습관이나 버릇처럼 나와야 한다. 조그만 공중도덕이 일상이 되고 몸에 배어서 자연스럽게 습관처럼 나타날 때 여객선 선장은 규정대로 선적하고 운항할 것이며, 어린이집 승합차도 교사 탑승 운행이 당연시될 것이며, 음주 후엔 의래 운전대 놓는 것이 몸에 배고, 미숙한 입사 2개월 된 하청 업체 계약 직원을 단독으로 야간 점검에 내모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몸에 밴 도덕의식은 - 나 이외의 존재에 대한 배려(配慮)주의(注意) - 어떻게 내 생각과 행동의 중심에 자리 잡을 수 있을까? 필자는 그에 대한 답이 유아기부터 이어지는 끊임없는 도덕교육에 있다고 생각한다. 자아 형성이 되는 시기부터 나의 자유와 안전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그것들도 존중해야 할 가치임을 배우는 것이 선진 시민으로 가는 출발점이라고 믿는다. 타인 배려에 관한 공중도덕 교육 시간을 늘리고, 자신의 규범을 다지는 윤리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단순 문제풀이 기술자를 만들어 내는 현재의 경쟁 위주 교육에 비해 우선되어야만 대한민국이 진정한 의미에서 선진 사회에 진입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남에게 피해주지 않겠다는 배려와 주의가 공기(空氣)처럼 우리 주변과 사회 전체에 배어있을 때 법과 규정 그리고 업무 매뉴얼이 지켜지고 비로소 ‘사회 안전망’이 확보되는 것이다.

이경우
국제사이버대학교 총장
Copyright ©2014 BY GUKJE CYBER UNIVERSITY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