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JCU 가족마당
    우리네 식탁,
    식문화 역사 탐방
    #1. 라면이야기

    우리네 식탁에서 흔히 보이는 음식들. 그저 끼니를 때우기 위해 입 안에 넣고 기억 속에서 잊어버리게 되는 음식들. 하지만 음식 하나하나에 새겨진 역사와 시대의 흐름을 알게 된다면 맛에 새로운 풍미가 더해지지 않을까? 우리들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숙한 음식들에 역사라는 조미료를 가해보자는 취지로 이번 글을 시작해봅니다.

    #1. 라면 이야기

     최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2022 가공식품 세분시장 현황’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일주일에 평균 1.7회의 라면을 섭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라면은 오늘날 한국인의 식습관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식품으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식사의 대용이든, 음주 후의 해장이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라면은 항상 우리의 곁에서 언제든지 허기를 달래줄 준비를 하고 있다. 어느 곳에서도 쉽게 구매할 수 있고, 조리법도 간편한 덕분에 가볍게 한 끼를 때우거나, 허기를 달래주는 간식으로 사랑받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우리네 삶에 녹아든 대표 간편식 라면은 어떤 경로로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시대의 흐름을 타고 우리네 식탁에 쉽사리 보이게 된 것일까?

    1-1. 라면의 유래
     보통 일본의 ‘라멘’이 한국에 들어와 라면으로 발전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이는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재밌는 점은 일본에서는 라면의 유래를 중국이라고 보고 있다는 점이다. 라면은 일본어로 라멘이라고 읽지만, 한자로는 납면이라고 표기한다. 납면은 중국 북방의 국수로, 밀가루 반죽을 칼로 썰지 않고 손으로 늘리면서 만드는 국수다. 비록 오늘날의 라면과는 면의 모양이라던지 식감의 차이는 있지만, 기원을 생각해본다면 유사한 점들을 찾아볼 수 있다.

     라면 중국기원설에 대해 확실한 역사적 근거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중국에서 전투 시 비상식량으로 고안되었다는 설이 존재하며, 명나라 시절의 양명학자 주순수라는 인물이 청나라에 대항하다 일본으로 건너와 본국에서 만들어먹던 라면을 대접해 일본에 처음 소개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밖에도 일본이 중일전쟁을 치르면서 중국에서 라면을 만들어먹는 법을 들여왔다는 설도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인스턴트 라면의 형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에서 유래되었다.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일본의 극심한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미군의 구호품으로 밀가루가 많이 유입되기 시작했고, 중국에서 귀국한 일본인들이 이 밀가루를 이용해 중국식 라면을 만들어 팔면서 라면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때 대만계 일본인인 안도 모모후쿠는 밀가루로 국수를 만들어 기름에 튀기면 국수 안의 수분이 증발하고, 이후 온수에 담그면 본래의 상태로 돌아와 먹기 좋은 형태로 변하게 된다. 이 점에 주목한 안도는 이후 현 닛신식품의 전신인 산시쇼쿠산의 설립자가 되었고, 1958년 처음 치킨라멘을 출시하며 일본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을 선보이게 된다. 초기의 라면은 양념이 면에 더해진 형태로 출시되었으나, 이후 개량을 통해 스프를 분말의 형태로 만들어 따로 첨부한 형태의 봉지면이 되었다.

    이미지

    (인스턴트 라면의 원조는 일본. 일본의 컵라면, 출저 : 위키백과)

    1-2. 한국 최초의 라면
     라면이 처음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63년의 일이며,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최초로 한국에 라면을 들여온 것은 현 삼양식품의 창립자인 전중윤 회장이다. 당시 전 회장은 국내 식량자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의 묘조 식품으로부터 기술 원조를 받기 위해 노력했으며, 면의 공정기술은 원조받을 수 있었지만 묘조식품 임직원들의 반대로 끝끝내 스프의 제조공정은 전수받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출국길에 묘조식품 사장이 몰래 건내준 자료를 통해 스프의 제조기술을 한국에 들여올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1963년에 처음 한국식 인스턴트 라면인 삼양라면을 출시하게 됬다.

    이미지

    (1963년 처음 출시된 삼양라면. 출저 : 중앙일보)

     하지만 라면이 처음 출시된 당시에는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귀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고가의 식품이었다는 점도 있었고, 기존의 면의 모습과 다르게 꼬불꼬불한 형태의 생소한 모습에 선뜻 라면을 선택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삼양식품은 종로에서 무료 시식회를 열고, 청와대에 직접 방문해 대통령에게 라면을 대접할 정도로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때 라면회사의 적극적인 홍보와 상호작용을 일으키게 되는 정책이 등장하는데, 바로 혼분식 장려 운동이었다. 1960년대 정부는 쌀 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잡곡밥과 같은 혼식과 밀가루 음식인 분식을 강제하는 정책을 펼쳤고, 이 때문에 라면의 수요가 증가하게 된다. 이와 더불어 삼양식품 이외에도 농심과 같은 라면회사들이 많이 등장하였고, 초기 일본식 소유라멘과 비슷하던 맛도 점점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게 매운맛을 더해 본토의 라면과는 다른 한국식 라면이 정착하게 되었다.

    1-3. 오늘날의 라면
     비록 지금은 베트남에게 1위 자리를 내주게 되었지만, 라면은 우리나라가 오랜기간 세계 면 소비량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우리네 식습관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나올 당시만 하더라도 귀하고 특별한 음식으로 취급되던 라면은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과 더불어 생산량이 폭증하여 반세기만에 부자들의 음식에서 서민들의 저렴한 음식이 되었다. 특히 혼자 사는 사람이나 지갑 사정이 넉넉지 않은 학생들에겐 밥 이상의 위치를 차지하는 경우도 많을 정도다.

    이미지

    (가끔은 밥 이상의 위치가 되기도 한다. 출저 : 나무위키)

     비록 지금은 나트륨 함량 등의 문제들이 제기되며 건강을 생각하는 사회상 속에서 그 기세가 조금은 꺾여 보이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컵라면이나 비빔면, 건면 등의 새로운 형태의 라면을 계속해서 개발하고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이는 그만큼 라면이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 어떠한 위상을 가졌는지를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인기는 이제 국내에서만 머물지 않고 해외에서 뻗어나가, 한국식 인스턴트 라면의 수요는 꾸준히 증가추세를 보이고있다.

     바다 건너에서 넘어와 우리네 식탁을 점령하기까지, 100년도 채 되지 않아 우리네 식문화에 빼놓을 수 없는 위치까지 성장한 라면. 과연 라면의 저력은 과연 어디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연재목록보기
    글, 사진 : 이형주 사원
    국제사이버대학교 기획지원팀
    Copyright ©2014 BY GUKJE CYBER UNIVERSITY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