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JCU 가족마당
    [‘놀이’을 넘어 ‘문화’로, e스포츠 이야기]
    ‘놀이’을 넘어 ‘문화’로, e스포츠 이야기
    #2. 테란의 황제, 임요환

     ‘박지성과 손흥민, 둘 중에 누가 더 위대한 선수인가?’

     잠시 다른 스포츠 이야기를 해 보자면, 국내 축구 팬들 사이에서 꽤 재밌게 화자되는 내용 중에 하나이다. 한국 축구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두 선수의 업적은 비슷한 점이 많다. 둘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비롯한 유럽 무대에서 뛰었고 각 팀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이 비슷하지만, 전성기가 서로 달랐던 탓에 우위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도 있다. 재밌는 점은 e스포츠에도 이른바 ‘vs논쟁’이 자주 보인다는 점이고, 그 중에 e스포츠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주제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임요환 vs 페이커’ 다. 현재 e스포츠를 상징하는 아이콘인 ‘페이커’와 이전에 e스포츠의 아이콘이었던 ‘임요환’을 비교하는 의견은 이전부터 많은 e스포츠 팬들 사이에서 이견이 갈리는 논쟁거리 중 하나였다. 물론 두 선수의 활동 시기 뿐만이 아니라 종목도 차이가 있는 만큼 완전히 같은 시점에서 바라보긴 어렵지만, 과거와 현재의 아이콘 간의 우위를 논하기엔 흥미로운 소재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까지도 현역 선수로 활동하고 있기에 평가가 현재진행형인 페이커를 제외하고, e스포츠의 시작을 함께했던 임요환은 어떤 선수였으며, 지금까지도 e스포츠의 역사의 한켠을 장식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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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portsawards에 기재되어 있는 Lim “BoxeR” Yo-Hwan, 임요환

     e스포츠에 대한 역사를 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것도 모자라, e스포츠의 개척자이자 선구자라는 표현까지 받고있는 임요환. 그의 명성은 단순히 게임 실력뿐만이 아니라 특정 세대의 놀이문화를 넘어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게임을 기반으로 한 e스포츠를 알리는 데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선수였으며, 현재는 프로 포커 플레이어 및 T1 소속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스타크래프트는 몰라도 임요환은 안다"라는 말도 있을 만큼 2000년대 e스포츠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e스포츠라는 새로운 개념의 스포츠 종목을 알림과 동시에 리그를 흥행시켰으며, 그럼으로써 이후 수많은 후배들이 e스포츠 프로게이머로 활동할 수 있게 해준 선구자 격 인물이다. 본인의 커리어가 곧 대한민국 e스포츠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1세대 e스포츠 스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통상 전적은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한국 e스포츠협회 비 공식전 포함 603승 430패이며, 온게임넷 스타리그 2회 우승, MBC게임 스타리그 1회 우승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임요환이 데뷔하던 시절은 아마추어와 프로게이머의 경계가 불분명하던 시절이기 때문에, 정확히 언제 그가 프로게이머로 데뷔했는지를 단정짓는 것은 어렵다. 방송 경기 데뷔는 1999년 SBS 멀티 게임 챔피언십이기에, 보통은 이 시점을 그의 데뷔일로 잡는 편이다. 데뷔 리그인 SBS 멀티 게임 챔피언십에서부터 상대인 김일재를 잡고 우승했으며, 이듬해인 2000년에는 크고 작은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소규모 리그에서는 우승까지 거머쥐며 테란 중에서는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에는 e스포츠가 자리를 잡기 이전이었고 워낙 많은 리그가 난립했다보니 프로게이머들도 몇몇 리그에 집중해서 경기를 준비하고 상금을 노릴 수밖에 없었는데, 임요환이 이 시기 두각을 나타낸 리그는 당대 최고의 권위를 가진 게임큐 스타리그와 KIGL 스타리그였다. 게임큐에서는 임성춘에게, KIGL에서는 김동우에게 밀려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2000 KIGL 왕중왕전에서 끝내 우승을 거머쥠으로서 이 시점에 임요환은 테란 프로게이머로서는 김정민과 함께 당대 최강자로 언급되는 위치까지 올라섰다.

     이듬해인 2001년이 곧 임요환의 전성기라 말할 수 있다. KIGL 왕중왕전 우승(2000), 게임큐 스타리그 우승(2001), 한빛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2001),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2001), 2001 WCG 우승, KPGA 투어 1차리그 우승(2002) 시절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전년도인 2000년까지 소위 말하는 "자신의 리그"가 없던 임요환에게 다른 잡다한 리그들이 모두 사라지고 사실상 스타크래프트 판에 유일무이한 최고의 리그로 자리 잡은 온게임넷 스타리그가 자신의 독무대가 된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2001년 있었던 3번의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2회 우승, 1회 준우승을 차지하며 온게임넷의 스타플레이어가 되었고, 온게임넷 해설진 특유의 포장 능력과 합쳐져 임요환은 "테란의 황제"라는 별명을 굳히며 당대의 명실상부한 1인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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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게임넷 코카콜라배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인터뷰 중인 임요환

     한빛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 직후 임요환은 각종 행사에 참석했다. 이 시절의 팀은 단순히 '연습 상대 구하기 쉬우라고 만든 클랜' 정도의 개념이었으며, 감독은 매니저 정도의 개념이었다. 임요환은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 이전에도 게임계에서 어느 정도 유명 인사였지만, 대중들에게 본격으로 알려진 것은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 이후다. 인지도가 급격히 오른 임요환은 PC방 행사를 포함해 여러 행사를 돌았다.

     이후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홍진호를 3:2로 꺾고 우승을 차지한다. 코카콜라배와 같은 시기 진행된 WCG(World Cyber Games) 스타크래프트 국가대표 선발전을 10승 무패로 통과했고, 2001 WCG 본선에서도 10승 무패를 기록하며 전승 우승하게 된다. 그후 2002 KPGA 투어 1차리그 우승을 달성하면서 최초의 양대 리그 우승자 기록을 세웠다. 이후 2002 WCG도 우승하며 WCG 스타크래프트 부문 유일한 2연속 우승으로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그의 자서전에서는 2002 WCG에서 우승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큰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2002년 10월에 IS팀에서 나와서 활동하느라 연습 상대도 구하기가 굉장히 힘들었고, 무소속으로 WCG, KPGA투어에 출전했었다. 이 역시 당시 e스포츠에 팀 단위 스폰서 개념이 정착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개개인이 직접 모든 대회를 준비하는 과도기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2001 SKY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온게임넷 스타리그 3연속 결승 진출에 성공하지만 김동수에게 2:3으로 분패하고, 준우승을 기록한다. 최강자 이미지는 다소 퇴색되고, 이윤열이 그 자리를 물려받게 된다. 이 시점에서 임요환은 이미 올드 게이머 내지는 커리어의 중반부를 달리고 있는 게이머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빠른 반응속도와 판단력을 요구하는 RTS게임의 장르적 특성상 해당 능력들이 제일 활발한 10~20대 초반까지를 게이머의 커리어 하이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때문에 1세대 게이머들과 같은 위치에 있던 임요환의 전성기도 지났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하던 시점. 하지만 임요환은 적어도 2003년까지는 이윤열, 서지훈과 더불어 테란 강자의 위치를 지키며, 우승을 노려볼 수 있는 상위권 테란으로 군림했었다.

     2003년 말~2004년 여름 정체기에 들어섰다. 2004년 4월 1일 진행된 듀얼 토너먼트에서 박성준에게 패해 Gillette 스타리그 2004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그의 온게임넷 스타리그 연속 진출 기록은 9연속 진출로 종료되었다. 또한 그전 해에는 심소명에게 TG삼보 MSL 예선에서 패하면서 2001 한빛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본선 진출을 기점으로 최초로 메이저 대회 본선 무대 진출에 실패하고 이후 MSL에서는 당신은 골프왕 MSL까지 총 4시즌 연속 본선 무대에 진출하지 못했다. 게다가 Gillette 스타리그 2004-Spris MSL 시기는 양대리그 모두 본선 무대에 진출하지 못한 시기가 찾아오기도 하였다. 심지어 2003년 말 후원사였던 오리온이 후원을 포기하면서 은퇴설이 돌았지만, 정작 본인은 오히려 본인보다 팀을 살려내기 위해 가장 힘쓰던 시기였다. 당시 e스포츠는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팀 단위 스폰서가 아닌 개인 스폰서의 개념이 자리를 잡던 시기였고, 임요환 또한 개인 스폰서만을 보유했던 상태였다. 그 당시 임요환의 개인 스폰서였던 오리온이 개인 스폰서 연장을 제의했으나 팀 전체를 후원해줄 것을 원한 임요환이 거절한 것. 협상이 결렬된 직후 한동안 4U라는 스폰서 없는 팀을 본인의 상금으로 운영하며 활동하던 임요환은 마침내 SK 텔레콤이라는 스폰서를 잡아냈다. 이는 e스포츠 역사상 처음으로 기업 스폰서를 받는 팀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개인의 커리어에서도 중요한 업적 중 하나였던 스타리그 3회 우승을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임요환이었지만, 라이벌 홍진호를 4강에서 꺾어내며 진출한 EVER 스타리그 2004 결승에서는 자신의 제자였던 최연성에게 패배하며 준우승에 머물렀고, 이후 So1 스타리그에서 결승전에 진출하나 2:3으로 아쉽게 패배하여 준우승한다. 그렇게 그의 인기 요소 중 하나였던 '끊임없는 부활'은 여기서 마무리된다. 이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에선 8강에서 최연성에게 1:2로 패해 탈락, 24강으로 확대된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에선 16강에서 탈락했으며 입대 직전인 프링글스 MSL 시즌 2에서는 8강까지 갔지만 공군 입대로 하차했다. 여담으로 2007년 창설된 공군 ACE는 대한민국 공군에서 자 부대의 홍보 등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세계 최초이자 2025년 기준으로도 유일했던 군 소속 프로게임단이었는데, 공군에서 게임단까지 창설하게 만든 것은 임요환의 병역 의무 때문이었다는 설까지 돌 정도였다. 이를 정식으로 언급된 바는 없었으나, 이미 이 시점에서 e스포츠의 흥행과 영향력이 사회 전반적으로 강해졌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으며, 이 모든 과정에서 임요환이라는 이름이 가진 스타파워가 영향을 끼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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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군 ACE 복무 당시 임요환의 모습

     복무를 마치고 전역 후 SKT T1으로 복귀하였으며, 코칭스태프로 활동했다. T1 측에서는 임요환을 코칭 스태프를 거쳐 감독직으로 물려줄 계획이었지만 본인이 스스로 포기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후에도 간간히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었으나, 이후에 e스포츠 특히 스타크래프트 업계 전체에 큰 파장을 몰고 온 승부조작 스캔들이 터지며 그에 대한 관심은 임요환의 개인적인 커리어보다는 업계 전체의 문제 내지는 개인적인 일들의 이슈가 더욱 부각됬던 시기였고, 임요환은 이후 스타크래프트2 활동을 거쳐 지도자, 포커 플레이어 등의 경력을 쌓아 나갔으며, 현재는 현재 T1의 스트리머 겸 크리에이터로 활동 중이다.

     비록 큰 열풍을 몰고 왔다고는 하나 그 역사가 다른 스포츠들에 비해 짧은 만큼 언제든지 재평가가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 e스포츠의 역사이기에 섣부른 평가를 내리기는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임요환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영향력은 각별하다. 이는 임요환이라는 스타 플레이어가 가진 영향력이 단순히 어린 세대들의 전자오락 문화에 불과했던 e스포츠를 하나의 브레인 스포츠로 자리잡게 만드는 데에 큰 공헌을 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전 현직 프로게이머들이 임요환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존경을 표하는 것은 단순히 그가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혹은 대선배이기에 나오는 이유는 아닌 것이다.

     특히 임요환은 e스포츠 이외의 분야에서 ‘프로게이머’라는 이름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선수 중 하나였다는 점이 그가 가진 스타성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시선이기는 하나 임요환이 주로 활동했던 90년대 말에서 00년 초반까지도 게임은 일종의 사회적 ‘질병’으로 취급받던 시기였다.

     많은 e스포츠 팬들의 격분을 샀던 일화 중에 하나로, 2003년 8월 임요환이 게임 중독에 대한 주제를 다룬 ‘아침마당’에 출연했던 적이 있다. 당시엔 게임중독이 하나의 사회적 이슈로서 방송에서 다루던 시기였기에 이를 방송 소재로 취급하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었으며, 임요환도 게임 관련 전문가 패널로서 출연했던 것이었다. 문제는 당시에 임요환에게 주어진 질문들이 해당 업계에 대한 사전조사나 존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당시에 "사이버 머니 1억은 임요환에게 새발의 피냐?", "PK를 하면 살의가 느껴지느냐?" 등의 질문들이 그에게 주어졌는데, 프로게이머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당시에 프로게이머를 당당한 스포츠 플레이어가 아니라 그저 돈 받고 게임만 하는 폐인 취급했었고, 진행자들의 인격 문제와는 관련없이 짜여진 대본이었던 것. 하지만 당시 임요환은 이러한 무례하게 느껴질 수 있는 질문들에도 프로페셔녈한 답변으로 이에 응대하였으며, 이 방송 이후 임요환은 인터뷰를 통해 네티즌들의 활발한 반론 덕분에 이번 일이 “사회적으로 게임 문화의 이해를 넓히는 긍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이야기 할 때 가장 먼저 논할 수 있는 이름, 차범근과 박지성과 같이 e스포츠를 스포츠의 영역으로 이끌어낸 가장 큰 이름. 그것이 ‘테란의 황제’ 임요환이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가 아닐까 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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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사진 : 이형주 사원
    국제사이버대학교 총무행정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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