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네 식탁,
- 식문화 역사 탐방
- #8. 배달음식의 기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치킨 이야기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식자재 물가 상승과 관련된 기사를 읽다 보면,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헤드라인으로 ‘치킨값 0만원 시대’를 볼 수 있다. 이는 치킨 가격의 상승이 그만큼 대중들에게 물가 상승을 크게 느낄 수 있는 점이고, 실제로 이와 관련해 치킨의 가격 상승의 원인에 대해 곳곳에서 활발하게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우리네 식탁에서 치킨을 매번 접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스포츠 경기나 가족들끼리의 식사, 술자리 등 우리네 일상에서 특별한 날에 가장 떠올리기 쉬운 음식이 바로 치킨이기 때문에 더욱 쉽게 물가 상승의 폭을 체감하게 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우리네 식문화에서 깊게 자리잡은 것도 모자라 세계에서도 한국식 음식을 꼽을 때 쉽게 거론되는 치킨은 언제부터 우리의 식문화 속에 자리 잡게 된 것일까?
흔히 우리가 ‘치킨’이라고 지칭하는 음식은 닭고기를 기름에 튀겨 낸 만큼, 우선 치킨의 기원을 알기 위해선 ‘튀김’의 기원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양권의 튀김의 기원을 살펴보면 최초의 기록은 고대 이집트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무덤의 벽화, 식기, 히에로글리프 등 곳곳의 자료들을 통해 이집트에서 기원전 2,500년경에 튀김을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발견되어 전해져 온다. 이후 가장 튀김의 흔적을 찾아보기 쉬운 곳이 바로 중세시대 무렵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튀김은 의외로 음식에 대한 금기가 있는 종교 문화권에서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카톨릭의 수도자들이 고기를 먹을 수 없는, 금욕재라고 불리는 금요일에 고기 대신 튀김요리를 해먹는 문화가 존재했다. 고기를 먹지 못함으로 부족해지기 쉬운 지방을 튀김으로 보충하며 이러면 식문화가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종교문화가 깊게 자리잡고 있던 중세 유럽에서 가장 튀김요리가 발달한 곳은 바로 포르투갈이었다. 이는 포르투갈이 카톨릭 문화권인 이유도 있으나 포르투갈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올리브 오일이었기 때문이다. 튀김에 있어 제일 중요한 식재료는 바로 음식을 튀기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름이며, 따라서 튀김이 발달하기 위한 가장 큰 조건은 이 식용 기름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로 포르투갈은 튀김문화가 발달하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었는데, 포르투갈이 속한 이베리아 반도는 로마시대에 로마제국이 올리브 숲을 조성하여 식용유 공급기지로 삼았던 곳이기에 올리브가 풍부하였고, 이에 따라 튀김요리 또한 발달해 있었다. 또한 대항해시대를 열었던 해양강국 포르투갈이었기에, 특히 생선과 같은 해산물을 튀겨먹는 문화가 크게 발달했다고 한다. 이후 스페인이 포르투갈을 병합한 뒤 펠리페 2세의 이교도 탄압으로 많은 유대인들이 유럽 각지로 피난을 하며 튀김요리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또한 포르투갈이 아시아로 진출하며 일본에도 튀김요리가 전파된다. 이 중 포르투갈식 콩깍지 튀김인 템포라(페이시뉴스 다 오르타)가 일본에 전파되어 덴푸라라는 이름으로 불리었고, 이는 일본식 튀김의 대표격인 덴푸라의 어원으로 자리잡게 된다.

일본식 튀김의 대표격인 덴푸라의 기원은 포르투갈이었다.
여기서 소개하고자 하는 미국식 닭튀김인 프라이드 치킨이 아닌 중국식 요리법에서 기원한 닭튀김은 한국에서도 이전에도 존재한걸로 보인다. 1450년경에 의관 전순의에 의해 편찬된 《산가요록》에는 닭고기를 기름에 조리한 음식인 "포계(抱鷄)"가 소개되어 있는데, 이 포계(抱鷄)가 한국식 닭튀김의 원조로 추정된다. 그러나 당시에 음식을 기름에 튀겨먹는 것은 보통의 백성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방식이었기에 상류층들 외에는 흔히 전파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튀김들 가운데서 우리나라에 미국식 닭튀김, 치킨이 자리를 잡게 된 배경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먼저 프라이드 치킨의 경우 미국 남부에서 흑인 노예들이 먹기 시작한 것을 기원으로 볼 수 있다. 포르투갈을 비롯한 지중해로부터 넘어온 튀김요리 문화는 미국에서도 정착하는데, 당시 미국 남부에서는 다른 지역보다 양돈업이 발달하여 돼지기름이 풍부했던 만큼, 기름 속에 담궈 튀기는 딥 프라잉이 가능한 점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백인 문화권에서는 닭고기를 튀기기 보다는 오븐에 구워 익히는 ‘로스트 치킨’ 방식의 요리가 더욱 성행했고, 섭취하는 부위도 다리와 가슴살 정도로 한정되었다. 이에 흑인 노예들은 백인들이 먹지 않고 남긴 날개 등의 부위를 가져와 기름에 튀겨 먹었는데, 이는 고된 농장 일에 필요한 열량의 섭취, 보존의 용이함 등이 크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조리법은 흑인들의 음식문화에서 점점 백인들의 음식문화로 전파되는데, 이는 미국 남부 특유의 더운 날씨에 쉽게 상하지 않을 보관방식을 필요로 하던 백인 농장주들의 이목을 받은 것이 원으로 보인다. 남북전쟁이 끝난 뒤에는 미국 전역으로 프라이드 치킨이 퍼지기 시작했고, 1952년 커넬 샌더스라는 인물이 자신의 까페에서 개발했던 음식들을 판매하는 프렌차이즈 사업을 시작하여 솔트레이크 시티에 레스토랑을 오픈하게 되는데, 이것이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프라이드 치킨 프렌차이즈인 ‘KFC’이다.

984년 처음 한국에 오픈한 KFC 1호 종로점, 2022년 폐점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치킨이 본격적으로 흥행을 시작하게 된 시기는 언제일까? 위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우리나라에서 튀김문화는 크게 발달하지 않았다. 수질이 나쁘고 내륙의 기후가 건조한 중국은 오래전부터 볶음과 튀김문화가 발달했으나 한반도의 사정은 이와 달랐다. 유럽과 중국에서는 밀을 많이 재배하였으나 한반도에서의 생산량은 적었기 때문에 밀가루는 예로부터 귀한 식재료에 속했으며, 식용유 역시 귀했기 때문에 일부 권력층 또는 부유층에서만 명절 등에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주로 지짐이, 부침개, 볶음 등의 요리였을 뿐 튀김요리는 크게 발달하지 못했다.
일제에 의해 식용유 공장이 들어섰으나 이는 일본의 내수를 충당하기 위한 조치였을 뿐 식용유 공급은 충분하지 못했다. 1970년대 이전에는 튀김닭보다는 전기구이 통닭이 유행했는데, 자급률이 낮은 식용유 수요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던 시절이라 여전히 식용유의 가격이 높았기 때문이다. 가열 후 분쇄 압착을 통한 재래 방식의 소규모 공장 시설로는 식용 기름 공급의 한계가 있었다. 그러던중 1971년 동방유량(사조해표의 전신)에서 ‘식용유’를 대량 생산하였으나 독점 체제가 유지되다가 1979년에 제일제당이 '백설표' 식용유를 생산하여 경쟁 체제가 시작되자 식용기름의 가격이 저렴해지면서 튀김 요리가 대중화 되었다. 또한 일제에 의해 외래종 닭이 도입되기는 했으나 부업수준에 양계가 이루어지던 중에 유축장려정책에 힘입어 배합사료공장 1960년대 초에 본격적으로 들어서며 양계의 전업화가 이루어졌다. 1965년에 증체율이 뛰어난 육계(肉鷄, broiler) 병아리가 수입되었고, 양계의 규모화가 이루어지며 산업화로 인해 증가하는 닭고기 수요에 부응하였다. 점차 전업양계는 기업양계로 전환되었고 1980년대 들어 정부주도 하에 양계 산업의 기업계열화가 추진되며 사료공급, 종계, 양계, 도축, 닭고기 유통, 식품가공의 현대화가 이루어졌다. 식용유가 서민들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하기 이전 1960년대에는 명동에 최초의 전기구이 통닭 전문점임 ‘서울 명동 영양센타’가 개업했으며, 1970년대 중후반 기름에 튀기는 프라이드 치킨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최초의 프라이드 치킨 가게인 ‘림스치킨’이 오픈되었다.

1960년대 최초의 전기구이 통닭 전문점인 ‘서울 명동 영양센타’
1980년대에는 페리카나, 처갓집양념통닭 등에서 양념치킨을 판매하며 본격적으로 치킨산업이 성장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 올림픽 등으로 스포츠 붐이 일고 레저 활동을 즐기는 인구가 크게 늘면서 치킨이 빠르게 전기구이 통닭을 대체하며 가장 대중적인 닭요리로 정착하였다. TV에서는 ‘쓰리랑부부’(김미화, 김한국) 등 유명 연예인들을 앞세운 광고도 시작되었다.
이후 교촌치킨(1991년)과 BBQ(1995년) 등 1990년대 이후 많은 브랜드들이 생겨나 본격적으로 치킨 프랜차이즈 사업이 시작되었다. 이들 기업은 ‘핑클’ ‘신화’ 등 아이돌 가수들을 앞세운 스타 마케팅 시스템을 도입했다. 1997년에 시작된 IMF 경제위기 이후 실업자들에 의해 삼겹살과 더불어 치킨집 창업이 붐을 이루었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단기간 교육을 통해 매뉴얼화되어 있는 메뉴를 제공하면 되었기에 창업이 쉽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퇴직금을 받은 예비 창업자들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하여 이전에 1만여개였던 점포수가 단기간에 2만 5000여개로 증가하여 폭발적으로 치킨 산업이 성장했다. 아울러 파닭, 불닭, 간장치킨, 마늘치킨, 닭강정 등 다양한 메뉴가 개발됐다. 또한, 남북교류가 이루어진 2000년대에는 남한 사람이 북한에 치킨집을 열면서 북한지역에도 남한식 닭튀김이 보급되었다. 오늘날에 이르러 치킨은 ‘한국식 치킨’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전 세계로 진출해 미국식 치킨과는 다른 경쟁력으로 세계의 식탁에 오르기 시작하고 있다.

한국의 직장인 회식메뉴 1위는 삼겹살이지만,
배달음식이라는 전제 하에 외식 메뉴1위는 치킨이 차지하고 있다.
떠올리기만 해도 즐거움이 느껴지는 음식이었던 치킨이지만, 높아지는 음식 물가의 상징적인 기준이 되어버린 요즘에는 가격을 생각하면 이전만큼 즐겁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치킨은 여전히 우리네 배달음식 문화의 중심을 차지할 것이며, 누군가는 맛으로, 누군가는 추억으로 우리네 식탁과 기억 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