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JCU 가족마당
    [세계를 보다_이탈리아편]
  • 노력형 길치의 집 밖 기행
  • Piacere, Italia
    #3. 등산은 왜할까

     피렌체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아침을 맞았다. 지난밤 미켈란젤로 언덕의 야경을 볼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쳤지만 룸메와 보낸 다정한 시간 덕에 방전된 마음을 충전한 상태여서 기운이 충분했다.

     첫 시간대로 예약해둔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두오모의 쿠폴라 전망대를 오르고, 조토의 종탑은 낮에 오르고, 관광을 하다가 오후 3시 기차로 로마로 이동할 일정이었다. 피렌체에 머무를 수 있는 반나절의 시간이 아쉬워서 일찍부터 서둘러 씻고 준비했더니, 짐을 다 챙겨서 숙소에 맡기고 출발했을 때가 7시 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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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마주했던 이날의 등정 목표, 쿠폴라와 종탑.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를 사랑하지만 쿠폴라와 종탑 둘 다 갈 체력이 없는 여행자는 선택해야만 한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찾은 쿠폴라를 직접 올라갈 것인지, 종탑에 올라 그곳을 바라볼 것인지.

     이른 아침의 피렌체는 대낮보다 쾌적하고, 늦은 저녁보다 조용했다. 훨씬 더 좋았다. 여름이라 날은 이미 밝아졌는데도 오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골목을 차지하며 소란을 피우는 사기꾼들이 없는 것도 편했다. (그들은 그림을 거리에 넓게 펼쳐두고 관광객이 실수로 밟으면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데, 관광객이 무시하고 자리를 피하려고 하면 화를 내며 쫓아간다. 멀리서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피곤하다.)

     공기도 좋고 발걸음도 가벼워서, 전날 멋진 야경을 제대로 봤더라도 아침의 분위기를 더 좋아했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이날의 기분이 오래 남아서 여정 내내 새벽형 여행자로 살았다. 이 여행의 마지막 날 로마에서는 오전 5시가 되기 전에 숙소를 나섰다. 해도 뜨기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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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폴라 전망대 입구는 약도 중앙의 CUPOLA DOME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
    현장 발권을 원하는 사람은 약도 좌측의 Biglietteria로 가야 한다.
    (빌리에떼리아는 매표소이고 입장권은 빌리에또다.
    같은 원리로 젤라또를 파는 곳은 젤라떼리아, 피자 가게는 피짜리아)

     8시 30분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두오모의 쿠폴라 전망대를 가장 먼저 오를 수 있는 시간대이다. 여행을 준비하며 쿠폴라와 종탑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얻고 예약한 일정이었다. 쿠폴라와 종탑이 가까이 마주하고 있어서 쿠폴라에 올라서는 종탑을, 종탑에 올라서는 쿠폴라를 볼 수 있는데, 역광 없이 카메라에 담으려면 `쿠폴라는 오전에, 종탑은 오후에` 올라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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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폴라 전망대에서 찍은 종탑 / 쿠폴라에서 내려와서 찍은 종탑
    오전에 쿠폴라를 오르면 이렇게 그늘지지 않은 종탑을 찍을 수 있다.
    '쿠폴라는 오전에, 종탑은 오후에' 밑줄 쫙, 별 일곱 개

     성당 내부를 둘러 올라가다가 어둡고 좁은 통로를 만나 작은 계단을 계속 올랐다. 동화 속에서 누군가를 가두어두던 탑이 이랬을까 싶었다. 대체 사람들은 등산을 왜 할까, 폐소공포증이 있는 친구는 여긴 오르지 말라고 해야겠다 등등의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전망대였다. 지금 오르고 있는 쿠폴라 지붕이 이전까지 건축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금속 공예가였던 브루넬레스키의 아이디어였다는 것은 숨이 차서 생각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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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두오모 내부와
    쿠폴라에서 내려오며 찍은 좁은 계단
    그리고 계단 틈으로 보이던, 아침부터 햇볕에 달구어진 피렌체

     전망대에서 머무르며 정말 사랑해 마지않는, 시원한 마른 공기를 느긋하게 즐겼다. 뜨거운 햇볕을 내려다보며 그늘에 있는 순간 너무 좋았다. 사진만 찍고 영상으로 담아오지 않은 것이 아쉽다. 여행은커녕 마스크 없이 외출을 할 수 없게 되어버린 요즘은 더욱더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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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내내 날씨가 맑았는데, 이렇게 높은 곳에서는 특히 더 행복했다.
    언제쯤 다시 떠날 수 있을까.

     여행하면서는 먹는 것에 관심이 없는 편이다. 평소에는 안 그러면서. 그래서 이탈리아 올 계획을 하며 '이곳에선 이것을 꼭 먹어야겠다'라고 정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여행 시작부터 꼭 먹어야 한다고 세뇌 당한 젤라또가 입에 안 맞았던 바람에 '에이 될 대로 되라지' 해버린 것은 두고두고 애석하다. 왜냐면 티라미수는 아주 맛있었으니까!!!!!!! 오죽하면 바티칸 앞에서 티라미수 고를 때가 나 홀로 여행이 아쉬웠던 유일한 순간이었을 정도다.

     쿠폴라 전망대에서 내려와 여유롭게 거리를 걷다가 카푸치노만 홀짝 마시고 나왔던 카페가 티라미수를 꼭 먹었어야 하는, 심지어 로마에는 없고 피렌체에만 있는 카페 질리였다니. 머릿속에 대충 넣어온 유명한 카페 이름 중에 질리 있었는데... 피렌체를 꼭 다시 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못 만난 다비드, 못 찾아간 미켈란젤로 언덕, 못 먹은 질리 티라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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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4일차에 로마에서 먹은 폼피 티라미수. / 카푸치노만 마시고 나온 피렌체 질리 카페
    폼피 티라미수가 너무 맛있어서 질리 티라미수도 정말 궁금하다.
    우리나라에도 폼피 매장이 한동안 들어왔었다는데 그때 가격은 12,000원이었다.
    현지에서는 사딸라 아닌 4유로(2017년 기준)

     하여간 그래서 더더욱 피렌체에 티본스테이크가 유명하다는 것을 알고 갔지만 반드시 먹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우리나라 여행자들에게 유명한 맛집도 여러 곳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왠지 내키지 않았다.

     전날 룸메도 자연스럽게 이탈리아에 도착해서 먹은 것과 앞으로 어떤 것을 먹을 건지 물어봤다. 먹은 것은 아침에 공항에서 먹은 크루아상과 피렌체를 헤매다 먹은 피자+맥주뿐이고, 특별한 계획도 없다고 얘기를 했더니 한국 여행자들이 많지 않은 괜찮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추천해 주었다. 나는 라 스파다에 월요일 점심에 갔는데 정말 현지인들만 많았고 여행자는 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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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렌체 맛집 Risotrante La Spada
    여행 후반에 남부 투어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가 피렌체로 이동한다기에
    라 스파다를 추천해 주었다가 만족스러웠다는 인증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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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먹은 티본스테이크
    굽기를 정확히 주문하지 못해서 취향보다 더 익혀진 것은 아쉬웠지만 아주 맛있었다.
    메뉴에 있는 건 두 명이 먹을 정도의 분량이라고 들어서
    절반 정도로 부탁해서 받았는데 나중에 메뉴 사진 보니 1kg이었다...
    어쩐지 그날 하루 종일 배가 안 고파서 저녁도 안 먹었네.

     식사를 마치고는 조토의 종탑을 오르기 위해 입장 줄에 섰다. 종탑도 쿠폴라와 마찬가지로 온라인 예약을 할 때 시간을 지정했지만, 예약시간과 상관없이 무조건 기다려야 했다. 햇볕을 피할 수 없는 광장 한가운데로 늘어선 끝을 찾아 자리를 잡고, 방금 전 만족스러웠던 식사를 되새겼다. 식사를 하던 현지인들은 대부분 근처에서 출근해서 일하다가 나온 직장인 같았다. 남들 일하는데 나는 여유 있게 놀고 있다는 게 와닿아서 더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얼마나 기다렸을까, 나오는 인원에 맞춰 조금씩 입장을 하다 보니 거의 없이 내내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여전히 해가 발등을 태울 듯 비추었지만... 싸늘했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히는 듯했다. 피렌체 체류 대략 20시간째인 길치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숙소까지 숙소에서 역까지 얼마나 걸리지? 종탑의 500여 개 계단을 내가 과연 다 오를 수는 있는 건가? 아침에는 몇 분이나 걸렸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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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에 쿠폴라 내려와서 구경한 산 지오반니(요한) 세례당
    팔각의 형태와 청동문이 아름다운 건물이다. 천장은 로마 판테온을 닮았다.
    (나중에 보니 참 아름다웠지만, 종탑 입장을 기다리며 초조해하던 당시에는
    오전에 여유롭게 세례당과 주변을 돌아본 것을 많이 후회했다.
    그 시간에 숙소에서 여행 가방을 가지고 나와서 기차역 보관함에 넣었어야 했는데 하고.)

     극단적으로 종탑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까지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비행기 지연으로 밀라노 대성당 근처에도 못 가보고, 예약한 기차도 못 타고, 아카데미아 미술관 예약도 놓쳤는데 이것까지 못 오른다고 생각하니 열받았다.

     그래, 내가 아무리 체력 중에 력은 없고 체만 있다지만 해보자! 있는 의지 없는 의지 끌어모았다. 다행히 종탑의 계단은 아침에 오른 것보다 적었다. 그래도 414개였지만... 큐폴라보다 49개나 적은 거다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나라 지하철 탑승구처럼 생긴 입장 게이트에 출력해온 예약증 QR코드를 게이트에 찍고 두 번째 등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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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등정에 성공한 애증의 종탑.
    전망대 철제 울타리 사이로 셀카봉을 뻗어 얻어낸 쿠폴라의 어여쁜 자태
    과연 두 번째 기차표라도 휴짓조각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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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사진 : 이소윤
    입학홍보팀 직원
    타고난 길치이지만 후천적 노력으로
    부지런히 잘 돌아다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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