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JCU 교수기고
    이영주 특수상담치료학과 교수 칼럼
    감정인문학
    #5.어제와 다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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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가에 즐비하게 놓인 책을 보면서 ‘언젠가 꼭 읽어야지...’ 다짐이라도 하게 되는가? 그렇다면 ‘내가 더 잘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여전히 살아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럼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잘 사는가? ‘그렇다!’ 언명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쉽게 단언하기 어렵다. 다만 그럼 잘 사는 게 어떤건가? 라고 되묻게 된다. 돈도 많고 명예도 있으며 남이 나를 휘두르지 않고 오히려 남이 내게 쩔쩔매는 그런 권력을 가지면 잘 사는 건가? 그러면 행복할까?

     행복은 주관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그래서 행복은 내가 나를 생각했을 때 ‘잘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하는 것과 연동되어 있다. 잘 삶은 그저 생 앞에 놓여진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음식을 먹고 좋은 영양 상태를 유지하는 것과 같은 노력, 즉 우리가 무엇을 지향하고 어떻게 사느냐 하는 노력에 따라 ‘잘 삶’을 실현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물을 마시는 습관이나 운동을 거르지 않으려고 하는 노력처럼 정신적인 돌봄도 마찬가지이다. 감정을 관리하고 행위를 조율하는 일련의 노력이 중요한데 이러한 노력은 자기 성찰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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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삶의 국면에서 숨 가쁘게 달리는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은 현재까지의 자기 자신을 점검할 뿐 아니라 앞으로 걸어갈 길을 스스로 밝히는 지점까지 나아간다. 연구들에 따르면 ‘자기성찰이 클수록 느끼는 행복감도 크다고 한다.’ Irina Elliott, Suzanne Coke(2008), Independent self-construal, self-reflection, and self-rumination : A path model for predicting happiness. Australian Journal of Psychology, 60(3), p132.

     이렇다 하면 책을 읽고 자기 삶을 돌보는 노력은 행복하고자 하는 열망을 담은 가장 구체적이며 실천적인 모습이다. 그러므로 책을 잘 읽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다.

     알베르토 망구엘도 <독서의 역사>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 존재는 읽은 만큼 성장한다. 그 순환이 완성되는 과정은 단순히 지적인 과정만이 아니라고 휘트먼은 주장했다. 다시 말해 표면적으로는 지적으로 읽어 어떤 의미를 파악하고 어떤 사실들을 자각하지만 그와 동시에 무의식적으로도 텍스트와 독서가는 서로 한 데 얽히면서 새로운 차원의 의미를 창조해 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텍스트로 섭취하여 텍스트가 가두고 있던 무언가를 풀어 낼 때마다 그 텍스트의 깊은 곳에서는 우리가 아직 파악해 내지 못한 다른 무엇가가 새롭게 태어나게 된다. 알베르토 망구엘(Alberto Manguel),『 독서의 역사』, 세종서적, 128쪽.

      망구엘의 언설대로 읽기는 독자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내면을 깨우고 기존의 세계에 균열을 일으키며 새로운 생각을 불러일으켜서 변화를 추동한다. 물론 변화의 정도는 독자의 능력에 따라 그 범위와 깊이가 다르게 됨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또 독서 목적과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책에서 얻는 것도 여러 가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공통적으로 독자는 책을 통해 지식을 얻고, 타인의 생각을 만나고, 정신적인 놀이(유희)를 즐긴다. 이로써 독서는 읽는 주체의 품격을 고양하고 내적 깊이를 이뤄 그가 가진 세계를 확대시킨다.

      ‘그래 책, 너 좋다!’라 생각되면 마음 바빠져, 서둘러서 많이 읽어야겠다는 다독(多讀)의 유혹을 떨칠 수가 없다. 다독의 즐거움은 세상의 많은 이야기와 새로운 지식을 많이 접하여 독자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는 데에 있다. 그러나 너무 빨리 읽거나 너무 느리게 읽으면 아무것도 듣지 못한다고 한 파스칼의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독서가 내 삶과는 유리된 채 단지 빨리, 많이 읽는 것은 깊은 이해와 인격적 성숙(maturity)에까지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식탐처럼 책탐으로 마구 읽는 남독(濫讀)은 경계할 일이다. ‘많이 읽는’이 아니라 ‘새겨 읽는’것이 다독(多讀)이다. 다독은 자기가 소화할 수 있는 속도로 책을 읽어 체화(體化)하여 내 사는데 힘을 주는 독서법이다. 다독이 많이만 읽는 것이 아니라면 똑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는 것은 어떻게 해석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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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책에 꽂혀, 읽고 또 읽고 또 읽는 즉 다시 읽기를 하는 독자의 심리에 대해 <리리딩>의 작가 퍼트리샤 마이어스 스팩스(Patricia Meyer Spacks)는 ‘안전함에 대한 요망’이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본다. 예상치 못하는 변화가 두렵기 때문에 항상 그대로인 것에 대한 안전한 감정을 누리고 싶어 한다는 설명이다. 그렇지만 같은 책을 수 십 번씩 반복적으로 읽고 듣는다고 해서 똑같은 생각과 똑같은 단어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아니다. 그날의 내 기분, 그 당시의 내 지적 능력, 그 시기의 내 욕구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내가 읽고 듣는 것에 관계하게 된다. 어떠한 이유든지 간에 다시 읽기는 처음 읽었을 때의 주의를 끌던 단어가 다시 읽을 때 또 다른 곳으로 내 주의를 옮기어 디테일이 다른 곳에 주목함으로써 책으로부터 더 풍부한 이야기를 가져온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번 보았던 글은 읽을 때마다 해석이 풍부하여져서 독자는 더 깊은 이해를 경험한다. 물리적으로 같은 책이 주는 안정감 바탕위에 독자 스스로가 다른 변주를 시작한다. 조선후기의 문인 양응수가 독서를 집에 비유한 다음의 문장도 흥미롭다.

    “독서란 비유컨대 집 구경과 같다. 만약 바깥에서 집을 보고 나서 ‘보았다’고 말한다면 알 길이 없다. 모름지기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하나 보아 방은 몇 칸이나 되고, 창문은 몇 개인지 살펴야 한다. 한 차례 보고도 또 자꾸자꾸 보아서 통째로 기억나야 본 것이다.” 정민(2013), 『오직 독서뿐』, 김영사, 95쪽.

     같은 맥락에서 ‘각각의 책은 각각의 독서를 통해 다시 태어난다’고 하는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생각도 이를 뒷받침한다. 다시 읽기는 같은 책이라도 10대, 20대, 중년, 노년 등 변화된 독자의 상태에 따라 같은 책이 다른 책이 된다는 의미이다. 하나라도 더 알게 되었고 어떤 것에 대해 좀 더 심각하게 생각을 해 보았고 다른 나라에 문화도 경험해 보았다. 하다못해 책에 밑줄 긋는 곳이 예전 것과 달라짐도 경험한다. 2020년보다 더 나은 ‘2021년의 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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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주
    국제사이버대학교 특수상담치료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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