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해를 맞이하며

 얼마 전 캐나다 대륙을 횡단하는 트레일러 운전기사 부부의 영상 다큐를 볼 기회가 있었다. 주인공인 50대 후반인 남편은 IMF 시절 모든 재산을 날리고 절망감에 방황하던 신용 불량자였다. 삶을 마감하겠다고 마음먹고 죽더라도 아내가 있는 곳에서 죽겠다는 심정으로 먼저 캐나다에 와있던 아내와 합류했다. 그 뒤 마음을 고쳐먹고 특수 운전면허를 취득해서 아내와 함께 1년의 대부분을 트레일러에서 먹고 자면서 장거리 배송일로 살아가는 인생 역전의 내용이다. 40대 이상 대한민국 국민은 우리를 아프게 했던 IMF 시절을 기억한다. 국가 부도(不渡)라는 초유(初有)의 사태 앞에 직장이 없어지고 가정이 파탄 났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던 시절이었다. 가족은 흩어지고, 신용 불량자 가장(家長)은 스스로 생을 마감한 안타까운 사례도 어렵지 않게 접하던 시절이었으니, 당시 경제 상황이 얼마나 절망스러웠는지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기만 하다.

 20여 년이 지난 오늘 이와 비슷한 일들이 또다시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자영업계와 서비스 산업의 생태계를 무너뜨린 것이다. 한 집 건너 불 꺼진 상가가 즐비하고 장사하겠다고 문 연 가게에는 주인 외엔 아무도 없다. 수입 실종으로 이어진 생활고는 자녀 학대와 가정 폭력의 증가라는 부작용을 낳았으며, 재정 적자 부담이 수반되는 정부의 지원금은 한계가 있고 계속되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정상적인 영업을 방해하고 있다. 작년 말 현재 우리나라 가구당 부채가 8,200만 원에 달한다고 한다. 통계를 낸 이래로 최고치다. 특히 30대 세대주의 빚이 가장 많은데, 1억 82만 원을 기록했다. 직전년도 대비 가계 소득은 1.7% 증가에 그친 데 반해 부채는 4.4%가 늘었다. 소득 증가 속도가 부채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는 불량 가계의 적자 가계부가 계속되고 있다. 통계 속의 씁쓸한 내용은 미래를 더욱 걱정하게 만든다. 작년 한 해 시중에 풀린 돈이 기업과 가계를 합쳐 3,200조 원에 달하는데, 이 중 상당 부분이 생산과 소비로 연결되지 않고 부동산 구매로 집중된바, 30대 가장의 부채가 집 장만을 이유로 가장 많은 부채를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어느덧 신축년 새해를 맞이했지만, 신년의 덕담이나 인사가 사라졌다. 성탄절의 가족 식사도, 동창들과의 송년회 모임도 끊어진 필름같이 눈발에 날리듯 생략된 채 지나갔다. 대학 새내기들은 캠퍼스의 낭만은커녕 미팅도 못 해보고 지나가 버린 1년이 억울한데, 동기들이 누군지, 강의실이 어딘지, 동아리는 뭐가 있는지도 헷갈리며 혼란스러운 신입생 시절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가을 자녀 결혼 날짜를 잡았던 필자의 동창 중에 한 친구는 한 차례 연기했다가 연말에 가족들만 모인 극 간소한 결혼식을 치렀고, 다른 친구는 두 번 일정을 변경하다가 결국 올봄에 하기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추도식도 마찬가지다. 사회연결망으로 조문하고 온라인으로 조의금을 보내는 것이 오히려 상주(喪主)를 배려하는 풍토가 됐다. 직접 조문을 간다고 해도, 문상과 위로의 말만 전하고는 바로 뒤돌아 나오는 단순 방문으로 그치는 것이 코로나19 시절의 예의다. 슬픈 일이다. IMF 당시는 금전적으로 어려웠지만, 코로나19 시절엔 인간관계가 단절되니 더욱 힘들다.

 이렇듯 대면(對面) 교류의 위축과 단절은 인터넷을 통한 소통과 구매 그리고 원격 교육을 활성화하여 “언택트(Untacted) 경제”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온라인 상거래와 교육에 대한 욕구가 폭증하면서 이 분야의 경제 유발량(誘發量)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말이다. 현장 매출이 제로에 가까운 가게들이 있는 반면에 온라인 주문으로 특화한 업종은 오히려 호황인 상황이다. 절망과 환희가 공존하니 혼란스러운 상황의 연속이다. 교육 현장에도 유사한 현상이 눈에 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고교생과 대학 재학생들의 학력 저하가 심각한 정도라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본교의 사정은 어떤가? LMS(learning management system) 기반 위에서 수업, 실습, 평가 등 모든 학사 일정이 한 치의 차질없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대학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원격 대학이 언택트 시대를 대표하는 미래 교육의 대안으로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일반 대학의 학생들은 물론 교수들조차 온라인 교육의 효용성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향후 도입될 AI, 빅 데이터 및 가상 현실을 구현할 미래 ICT 기술을 장착한다면 입체 실험과 현장감 있는 실습도 온라인으로 가능하게 될 것이니, 원격 대학의 확장성은 한계를 모르고 발전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유난히 춥고 눈이 많았던 1월이 지나며 에볼라, 사스, 메르스를 이겨낸 위대한 인류는 코로나19 퇴치를 위한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완료하고 접종을 시작했다. 경제 활동의 위축, 교육 현장의 단절 등을 추억거리로 돌릴만한 과묵한 진격(進擊)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백신을 접종한다고 한들 과거와 똑같은 일상으로 돌아갈 확률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변종 바이러스가 번지기 시작했으니, 백신을 맞더라도 독감처럼 우리 일상과 함께할지 모를 일이다. 온라인 쇼핑과 배달 음식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될 것이며, 전자 결제 회사나 배송 업체는 더욱 성장할 것이다. 다중의 밀집(密集) 모임이나 대면 교육, 대규모 공연 등이 재개되겠지만 다소 불편하게 진행될 것이 분명하다. 태어나 처음으로 겪어 본 코로나19 사태가 누구에게는 하나의 추억거리로 남겠지만, 누구에게는 지울 수 없는 아픔을 주었다. 고통받은 이들에겐 돌이키고 싶지 않은 슬픈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다시 기운 차릴 날이 빨리 오기를 기원한다. 분명한 것은, 코로나19가 가져온 단절과 고립을 헤쳐나오기 위해 인류가 발전시킨 의약품, 기술 및 소통 시스템 등은 미리 맛본 우리들의 미래 일상 중의 일부라는 사실이다. 그중에 하나인 “원격 교육”은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장대한 흐름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국제사이버대학교 총장
경영학 박사 이 경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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