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JCU 연 Quarterly Webzine 2019년 spring 제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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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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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볕이 타는 듯 뜨겁지만, 그늘은 엄청 시원하다.’

 여름의 이탈리아에 머물러 본 헬렌도 말해주었고 유럽여행카페에 올라온 후기에서도 많이 들었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살아생전 대한민국의 고온다습한 여름만 겪어본 나로서는 하나도 와닿지 않는 문장이었다. 어떻게 한여름이고 해가 쨍쨍한데 그늘이라고 숨 막히지 않을 수가 있다는 거지?

 그 의문은 피렌체에서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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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 쿠폴라에 올라 찍은 피렌체. 한낮이 아니고 무려 오전9시도 되기 전의 햇살이 이정도.

 이탈리아 여행을 준비하며 가고 싶은 도시를 정할 때 무수히 많은 도시를 찾아봤었다. 작고 아기자기해서 도보로 여행하기 좋다는 정보를 보자마자 피렌체는 나의 1순위 여행지였다. 로마 직항 항공편이 넘쳐나는데도 일부러 밀라노로 도착하는 여정을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분명 일상에서는 문명이 가져다준 ‘탈 것’을 즐기는데, 여행지에서는 다른 인격이라도 튀어나오는지 지독하게 걷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게 오매불망 그리던 피렌체에는 오후 3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출국 지연의 나비효과로 기존의 계획보다 훌쩍 늦은 시간이었지만, 숙소에 짐을 풀고 나와서 낯선 골목을 걷자니 금세 신났다. 드디어 여행 시작이었다. 물론 예약한 입장시각이 지나서 들어갈 수 없던 아카데미아 미술관을 지날 때는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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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끝내 만나지 못한 진품 다비드.
( 사진출처:네이버지식백과 )

 걸으면 걸을수록 고온건조한 지중해성 기후는 정말 감탄스러웠다. 이것이 바로 태양만 피하면 서늘하다는 그 날씨구나, 여름을 힘들어하던 내가 더위에 약한 것이 아니라 습기 취약한 것이었구나, 난생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서늘한 피렌체 곳곳의 골목이 쾌적하고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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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골목 그림자를 경계로 계절이 다른 듯 뜨겁지만 시원했다.

 다들 이탈리아에서는 ‘1일 1젤라또’를 해야 한다기에 보이는 대로 먹어봤는데, 충격이었다. 맛이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한입 먹고나면 이제 그만먹고 싶었다. 너무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너무 많았다! 매번 가장 작은 사이즈를 주문해도 너무 많았다!! 사이즈를 골라 계산을 한 뒤 원하는 맛을 고르면, 조금만 달라고 말해볼 겨를도 없이 내 손 안에는 엄청난 것이 들어왔다. ‘여기 유명하다는데’ 혹은 ‘오늘은 맛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주문했다가 먹으며 후회하는 연속이어서 여행 초반에 세 번 먹어보고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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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박8일간 먹었던 젤라또. 왼쪽부터 딸기+초코 / 피스타치오+리조(쌀) / 리조+코코메로(수박)
딸기와 초콜릿과 수박을 좋아하지만 딸기맛, 초콜릿맛, 수박맛은 안 좋아하는 별난 입맛인 듯.

 다행히 젤라또와는 상관없이 걸음은 가벼웠다. 들뜬 마음에, 지도에 의존하지 말고 그저 내키는 대로 골목을 즐기며 걸어보자 싶었다. 과감하게 가방에 지도를 넣었고, 휴대폰은 그저 카메라다 생각했다. 태양을 피해가며 높고 커다란 건물 사이를 오가다가 갈림길이 보이면 끌리는 방향을 짚었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선정되었다더니 눈길 닿는 곳마다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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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세례당, 조토의 종탑,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두오모의 쿠폴라까지

 하지만 역시 길치이자 방향치인 나에게는 너무 원대한 목표였을까. 어떻게 걸어도 산 로렌초 성당에 도착했다...... 분명히 이 아담한 도시를 가로지르는 아르노 강이 있다고 했는데 구경도 못했다. 거기에 아침에 로마에서 출발해서 밀라노를 거쳐 피렌체까지 오느라 쌓였던 피로가 몰려왔다. 그냥 성당 앞 피자리아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피자와 맥주를 점심 겸 저녁으로 먹었다.

 성당을 바라보며 앉아서 지도를 펼쳐보니 강은 분명 있었고 나는 정말 주변만 돌고 있었다. 안에서 새는 길치 밖에서도 새고 있는 꼴이었다. 그후로는 깔끔하게 휴대폰으로 구글맵을 보며 돌아다녔다. 눈 앞의 산 로렌초 성당이 그 유명한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두오모의 쿠폴라를 만든 브루넬레스키의 작품인 것과 내부에 미켈란젤로가 만든 도서관이 있다는 것은 귀국 후에 ‘알쓸신잡’ 시즌2 피렌체 편을 통해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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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실컷 본 산 로렌초 성당

 끼니를 해결하고 그늘 아래서 시원하게 쉬다가 야경 명소 미켈란젤로 언덕을 찾아나섰다. 구글맵과 함께하니 드디어 아르노 강도 보였다. 아무래도 소매치기를 조심해야하는 여행길이다 보니 내내 휴대폰을 보며 걷지는 못하고 가끔 틈틈이 봤는데, 아무리 걸어도 미켈란젤로 언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여차하면 사람들이 가는 방향으로 따라가야지 생각했는데 하필 사람도 별로 없었다. 미리 조사해본 일몰예정시각은 8시 54분으로 출발할 때는 충분히 여유가 있었는데 자꾸 길을 헤매다보니 금세 해가 져버렸다.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향하는 방향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두둥실 떠있던 마음이 풍선마냥 김이 새버렸다. 홀로 떠난 첫 여행이었고, 이미 출국 항공편 지연 덕에 출발 전까지의 단단히 준비했던 계획들이 무용해졌는데, 고대하던 야경명소까지 찾지 못하니 너무나도 슬펐다. 길도 제대로 못찾는데 이후의 여행을 이어갈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 내가 불행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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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세상 우울할 때 겨우 찍은 아르노 강 사진

 그렇게 하릴없이 걸어 숙소에 왔는데, 신나게 수영하다 들어온 룸메이트 한명과 마주쳤다. 서로 인사를 하고 대화를 하면서, 미켈란젤로 언덕도 못갔는데 내일 로마로 떠나야하는 서글픈 내 일정을 이야기 했더니, 룸메가 피렌체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밤인데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나를 밖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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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메가 놀던 햇살가득 숙소 수영장.
나는 피렌체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아서 우피치 미술관도 포기했던터라 수영은 꿈도 못꿨다.

  룸메와 함께 나와서 달달한 디저트를 사서 광장에 자리를 잡고, 이런저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룸메는 피렌체에서 수년간 일을 했다가 지금은 몰타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나 자신이 외딴 섬 같이 느껴졌었는데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위로의 말이 없이 이어지는 소소한 대화가 큰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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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메와 함께 먹은 크레페

  룸메와의 그 시간 덕에, 모든 여정이 무너진듯 무겁게 다가오던 이틀간의 시행착오를 그저 딱 보드게임 젠가(Jenga) 한 판 아쉽게 진 것처럼 담백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계획 하나 어그러지지 않는 여행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일단 내 여행의 첫 번째 판은 좀 많이 대차게 와르르 무너졌지만 다시 세우면 될 일이었다.

 2편 [젠가] 끝

 [다음편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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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 이소윤
입학홍보팀 직원
타고난 길치이지만 후천적 노력으로
부지런히 잘 돌아다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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