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은 정신질환자들에게 ‘잔인한 계절’이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은 3월부터 5월에 몰려 있다.
다른 계절의 1.2배다. 기온과 일조량의 변화가 호르몬 불균형을 유발해 기분이 요동치기 때문이다. 기온과 일조량의 변화가 신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로 인해 호르몬 변화가 심해지면서 감정 기복 또한 심해지며, 환경 변화로 인한 스트레스도 영향을 미친다. 대개 입학이나 취업, 인사 등의 경우 봄에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사회 심리적 스트레스가 우울증에 영향을 준다. 계절 변화로 인한 감정 기복이 심해지면서 상대적인 박탈감이 심해지면서 우울증이 심해지기도 한다.
17살 A는 2년 전부터 엄마와 말다툼을 하거나 자신의 처지가 한심하다고 느껴지면 다리, 팔뚝에 자해를 하기 시작했다. 딸의 자해 사실을 알게 된 엄마는 ‘나 살기도 힘든데 왜 너까지 보태느냐’며 그렇게 해서 안 죽는다는 말로 상처받은 마음에 한 번 더 상처를 주었다. 급기야 자살시도를 한 A는 정신과에 내방하여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물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상담을 병행하기 위해 나를 찾아왔다. 어른들 앞에서는 착하고 공부 잘하는 모범적인 아이처럼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게으르고 비관적이며, 미루기를 잘하고, 공부하기도 싫어하고 쓸데없는 걱정이 많고 나쁜 짓(술, 담배, 자해)도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설명했다.
자살이나 자해는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없고, 자신의 문제가 절대 해결될 것 같지 않은 막막함에서 오는 무기력감, 불안과 분노 등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A 역시 몇 차례 자신의 힘듦을 엄마에게 전해보았으나 이혼 후 혼자 가계를 책임지고 사느라 힘들고 지친 엄마는 딸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을 신체적,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부모와 친구를 포함하여 그 누구에게도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고 살아왔음에도 A는 상담자에게 아주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도움받기를 원했다.
부모의 불화와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열등감을 느끼고 타인과의 관계의 통로를 차단하면서 혼자 외로운 싸움을 수년간 해 왔지만 해결이 되기보다는 우울과 무기력의 골이 더 깊어져 도움을 받기로 마음먹은 A는 강점과 자원이 많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예쁜 소녀였다. 친밀한 인간관계를 위해서 자신의 약함이나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은 필수적인 요소인데 열등감에 사로잡히면 자신의 약점이 드러날까 전전긍긍하고, 좋은 모습만 보이려고 애쓰는데 에너지를 쓰게 된다. 상담과정에서 부모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자신의 부족한 면도 드러내는 연습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건 내가 자유로워지는 하나의 방법이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재미있는 제목에 끌려 구입한 이 책은 기분부전장애(우울증)를 앓는 저자의 치료 기록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나의 내담자 A처럼 가난과 어머니를 때리는 아버지. 이런 환경에서 성장하면서 자존감이 낮아졌다고 했다. 가난과 폭력, 부모의 이혼과 같은 부정적인 환경은 아이로 하여금 위축되게 만들지만, 정서적으로 무엇이 제공되었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건강한 부모는 자신의 힘든 것을 감당하면서 아이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아이가 안심이 될 수 있도록 좋은 대상이 되어주지만 건강하지 못한 부모는 자신의 불안이나 분노, 상처를 여과없이 표현하고 아이를 자신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자녀를 붙잡고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엄마와 살아온 B는 어릴 때부터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엄마에게 말을 하지 않았고, 늘 좋은 일, 기쁜 일, 잘한 일만 말하며 ‘괜찮은 척’ 하며 살다가 결혼해서 세 아이를 키우면서 우울증이 발병했다.
우울은 ‘자기 연민’에서 비롯된다. 자신이 자신을 믿지 못하고 소중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생기는 것이므로 자신을 믿고 자신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살아온 과정을 회고하면서 아이의 대견스러운 모습과 행동에 대해 칭찬과 지지를 해주고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그동안의 외로움을 치료해주는 좋은 약이 된다. 어린아이였을 때 부모가 해주지 못했던 위로와 격려, 보살핌을 스스로에게 해줄 때 자살이나 자해와 같은 위험으로부터 나를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우울증 환자는 약 70만 명으로 전체 국민의 1.5%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감기 환자(83만 명)에 가까운 수의 국민이 일생에 한 번쯤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의미이다. 마음의 감기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를 비난하지 말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솔직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고, 가족이나 믿을 만한 친구들에게 터놓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다. 우울증 증세가 오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말고 전문가와 상담을 받는 것을 권유하고 싶다.
또한 내 주위에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힘내라’ 또는 ‘용기를 가져라’ 라는 말보다는 ‘그 사람을 이해하고 견뎌주며 공감하고 지지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