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JCU 연 Quarterly Webzine 2018년 Summer 제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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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BM PC의 탄생과 빌(Bill). 그리고 게리(Gary).

“이것은 내 인생에 다시 안 올 큰 기회야”

 1980년 어느 봄, 미국 워싱턴주의 한 청년은 사무실 바닥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에 잠겼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이 사무실에는 당시 ‘거대한 코끼리’라고 불리며 미국의 산업을 주름잡던 기업 IBM이 비밀리에 진행 중이던 ‘퍼스널컴퓨터 프로젝트의 개발직원’ 들이 방문해있었다.

 “우리 신제품에 들어갈 OS(컴퓨터의 운영체제)를 개발해 줄 수 있겠소?”

 당시까지 미국에서 조금의 인지도를 가진 유능한 젊은 프로그래머에 불과했던 청년은 그들의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당연하죠. 조만간 시연 가능한 16비트 OS를 개발해 전달해드리겠습니다.”

 기회를 잡은 청년은 실제로 거대기업 IBM이 1980년에 출시한 최초의 IBM PC인 MODEL 5150에 OS를 납품하게 된다.

 청년은 OS의 이름을 PC-DOS라고 명명했다.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회사의 이름은 마이크로컴퓨터와 소프트웨어라는 두 가지 단어를 결합하여 microsoft 라고 지었다.

 그렇다.

 사무실 바닥에 누워있던 청년의 이름은 개인용 컴퓨터 발전에 있어 상징과도 같은 이름. 바로 빌게이츠[Bill Gates] 였다.



[드디어 IBM이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다]

 1980년 당시 IBM은 사실 기업의 규모로만 보면 미국의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지배해야 마땅한 기업이었다. 당시 전 세계 최고의 국방력과 경제력을 자랑하던 미국 정부와 군을 상대로 사무, 계산용 컴퓨터를 납품하는 미국의 거대기업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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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낯설지만 1980년 당시에 이 로고는 컴퓨터의 상징과도 같았다

 당시에 컴퓨터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개인이 사용하는 PC는 일부 최신기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로 당시 시장을 지배하던 애플2나 코모도어 정도가 그나마 잘 팔리는 PC였을 정도니까. 동네 아저씨들에게 팔려봐야 얼마나 팔리겠냐는 것이 그들의 계산이었다.

 그렇기에 IBM의 임원들은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하나의 산업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대형 연구소 등에서 복잡한 계산을 처리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 컴퓨터지 개인이 쓰는 컴퓨터는 그들이 보기에는 장난감 그 이상의 가치로 보이지 않았다.

 (IBM의 이름은 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 Corporation의 약자. 즉 기업에서 사용하는 기기를 생산한다는 아이덴티티를 애초부터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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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애플의 APPLE II. 이 기기의 등장으로 PC 시장의 혁명이 일어났다

 그런데 이 시장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캘리포니아 한 창고에서 스티브라는 이름을 가진 두 청년이 만들어 낸 Apple II라는, TV같이 생겼는데 키보드가 달려있던 이상한 물건이 갑자기 불티나게 팔려나가더니 몇 년 새 단일모델로 무려 5억달러(당시금액)를 벌어들였다는 것이었다.

 개인용 컴퓨터 시장이 산업화가 되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Apple II용으로 개발된 비즈칼크라는 연산 프로그램(지금의 ms오피스의 엑셀의 조상님격 프로그램이다)이 대중에게 엄청난 이슈가 되더니, 당시 잘나가던 미국의 거대기업들의 책상에 개인용 컴퓨터가 놓여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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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면 다소 초라해보일 수도 있지만 비지칼크는 복잡한 회계에 골머리를 썩는 사무실에 혁명을 가져
왔다. 잘 보면 왼쪽 열의 숫자, 윗 열의 알파벳이 지금의 MS엑셀 같은 스프레드시트와 매우 유사하다.

 인건비가 비싼 당시 미국 기업의 입장에서는, 회계직원 수십 명이 달라붙어 처리해야 할 복잡한 회계연산을 컴퓨터 한두 대로 빠르게, 그리고 정확하게 끝낼 수 있으니 당연히 들여놓아야 마땅했다. 노동자에게는 슬픈 일이지만, OA(사무자동화)를 통해 인건비는 대폭 줄어들었고, 회사의 업무 효율은 늘어났다. 이러한 비즈칼크 덕분에 애플은 출시한지 오래 된 기기가 해가 지날수록 더 많이 팔리는 기현상 속에서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IBM 내부에서는 ‘지금이라도 시장에 진입해야 한다’ VS ‘시대적 유행일뿐 몇 년 뒤면 사라질 시장이다’ 라는 의견이 끊임없이 대립하게 되었다.


[IBM의 고민]

 사실 IBM이 머뭇거리는 이유는 그들이 그동안 제품을 생산하던 방법에서 비롯되었다. IBM은 기업이 사용하는 전자기기를 주로 생산하는 회사였기에, 제품을 시판하기로 마음먹으면 기획 초기 단계에서부터 마무리까지 전부 내부적으로 자체생산을 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그렇기에 확실하게 이윤이 발생하고, 산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있지 않은 PC시장이 그들의 눈에는 성에 차지 않았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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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컴퓨터는 이렇게 터미널과 연결된 모니터, 키보드를 사용하는 구조였다.
사진은 대표적인 메인프레임 터미널인 IBM의 MODEL 3270

 당시 IBM은 기업용 컴퓨터를 생산하는 세계 최고(그리고 유일)의 기업이었다. 당시에만 해도 기업용 컴퓨터라 함은 거대기업에서 빠른 연산처리와 업무 효율을 위해서, 전산실을 만들고 그 안에 아~~주 거대한 메인프레임을 설치함을 말했다. 터미널 개념. 즉 성능이 아주 뛰어난 컴퓨터 한 대를 놓고 모니터 여러 대를 연결해서 사용하는 것이었다.

 거대기업은 새롭게 개발 된 개인용 컴퓨터를 따로 보급하면 직원들의 교육비용도 발생하고, 직원당 보급하는 가격보다 회사에 꼭 필요한 시스템을 갖춘 메인 터미널 형식의 컴퓨터가 기업 입장에서는 이득이었다.

 어찌 되었건 이럼에도 퍼스널 컴퓨터 시장이 형성됐다. IBM에서는 대립은 대립이고 일단 테스트베드 형식으로 개발팀을 구성했다. 당연히 회사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보니 재정지원을 전폭적으로 받는 팀이 아니었다. 프로젝트의 이름도 Acon(도토리)였다. 이름만 봐도 거대기업에서 하는 중요한 프로젝트가 아님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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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왼쪽과 맨 오른쪽이 애플을 만든 두 명의 스티브. IBM은 자신들이 가진 비즈니스 컴퓨터
시장에서의 왕좌를 저 이름 모를 두 명의 청년에게 빼앗길 위기에 놓였던 것이다.

 그래도 이 분야에서 만들어놓은 명성이란 것이 있는데, 애플이라는 신생기업이 차세대 컴퓨터 시장의 지배자로 군림했다는 것이 코끼리의 자존심을 건드렸을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조직 내의 대립속에서도 Acon 프로젝트는 본격적으로 가동되었다.


[모듈. 그리고 오픈 아키텍처]

 오픈 아키텍처 : 개방형 시스템이라고 정의. 컴퓨터에서는 다른 회사간의 기술 공유, 상호 연결과 부품간의 이식이 자유로운 체제를 의미하는 용어. 쉽게 설명하면 마트에서 아무 업체의 USB 메모리를 구입해도 내 컴퓨터에 꽂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제품에 USB 규격이라는 오픈 아키텍처를 적용했기 때문

 IBM은 PC를 생산하면서 제품의 기획부터 생산라인까지 전부 자체 설비하던 기존의 방식을 버리기로 결정했다. 기존에 나와 있는 기성제품(메인보드, CPU, 플로피디스크, 파워서플라이 등등)을 대량으로 구입, 상호 호환되도록 조립해서 하나의 PC를 만들어내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당시 IBM 내부뿐 아니라 업계에서도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당시 PC를 대표하던 Apple II는 공장에서 생산된 단일모델이었다. 확장이나 변경이 불가능한 완전체 제품이었다. (애플은 지금도 이러한 제품생산방식을 고집한다. 모든 제품의 확장이나 변경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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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 최초의 PC인 MODEL 5051.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기능을 위해 개발된 모듈 형태의
제품을 꽂아 쓸 수 있도록 확장슬롯이 마련되어있다. 지금의 PC형태와도 매우 유사하다.

 무엇보다 자체 개발하지 않고, 기존에 개발된 타사의 제품을 모듈형식으로 조립해서 하나의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연구개발비용, 공정 라인구축비용과 QC에서의 문제점 등 다양한 골치아픈 문제가 해결된다. 그리고 몇 대가 팔릴지 모르는, 지금으로 말하면 ‘스타트업 시장’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본인들에게 직접타격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IBM은 모듈식 오픈 아키텍처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다양한 서드파티 회사가 IBM PC에 맞는 규격의 제품을 개발하고, 유저가 이를 구입하여 조합하거나 업그레이드 할 수 있도록 했다. IBM PC의 이러한 형식은 현재 우리가 쓰는 PC까지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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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의 16비트 플랫폼인 8088(좌) 8086(우)
[공정상 채택된 8086칩은 그 유명한 286 386 486의 조상님이 되는데...]

 그리고 서드파티 회사의 발전도 함께 가져오게 된다. IBM PC의 성공으로 함께 공룡기업으로 성장한 업체들이 몇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CPU 플랫폼을 생산하던 인텔이었다. 당시 인텔은 기술력이 월등하거나 대중화 된 기업이 아니었음에도 IBM이 인텔이 개발한 호환성이 좋은 8088과 8086이라는 16비트 기반의 플랫폼을 채택함으로서 전세계 최고의 CPU 개발업체로 성장했다. 그때 인텔에 밀려 선택을 못 받은 대표적 기업은 모토로라가 있었다.


[운영체제(OS)와 게리킬달]

 IBM의 내부 고민은 또 있었다.

 바로 컴퓨터를 구동하는 운영체제. OS를 새롭게 자체개발할 것이냐, 기존에 개발되어있는 안정된 OS를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다.

 과거 애플2와 같은 8비트 컴퓨터는 컴퓨터를 딱 켜면 롬베이직이 구동되며 OK. 라는 싸인만 나오는 형식이었다. 지금과 같이 OS가 구동되며 내가 아무것도 입력하지 않아도 자유자재로 인터넷이나 워드, 음악플레이나 동영상 시청을 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아니었다.

 이러한 이유로 컴퓨터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프로그래머들이 개발한 OS를 유료로 구입해 사용해야 했다. 지금도 우리가 사용하는 윈도우나 맥OS는 유료 OS이다.(모르시는분들이 많지만)

 당시 게리킬달이라는 천재 소리 듣던 워싱턴대 컴퓨터과학 박사이자 미 해군대학원 교수가 있었다. 그가 만든 CP/M이라는 뛰어난 OS는 애플2를 중심으로 엄청나게 보급되어,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애플에서 자체개발한 애플디스크라는 약식 OS가 있었지만 CP/M에 비하면 장난 수준의 운영체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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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년도에 개발 된 CP/M의 초기화면. 과거 도스를 써본 사람이라면 매우 익숙한 화면이다.

 IBM은 그들이 만든 PC가 사무기기로 사용되길 원했다. 애플과 비지칼크가 빼앗아간 업무용 PC 점유율을 빼앗아오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그래서 그들이 따로 OS를 구입하지 않고 컴퓨터 구매와 함께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OS를 끼워팔기로 했다. 컴퓨터 한 대를 구입하는게 아니라 몇십대를 구입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번거로운 절차 없이 OS를 함께 사는 것만으로도 시간과 비용이 엄청나게 아껴진다는 것을 IBM은 알고 있었다.

 자체개발이 아닌 호환성 좋은 기존 OS를 탑재하기로 한 IBM은 당연히 당시의 시장의 지배자였던 CP/M을 생각했다. 16비트 PC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애플용 8비트로 만들어진 CP/M을 16비트로 컨버팅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게리킬달을 찾아갔다.

 IBM 직원들이 게리킬달과 사전에 시간을 약속하고 그의 집에 방문했다. 그런데 그가 없는 것이었다. 게리킬달은 사실 이미 본인이 만든 OS의 대성공으로 인해 어느 정도 부호의 위치에 올라가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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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킬달과 그의 부인 도로시 킬달

 그가 미리 약속을 했음에도 자리에 없는 걸 안 IBM 직원들은 분노를 억누르며 어쩔 수 없이 그의 아내와 대화를 시작했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비밀리에 진행되던 PC 프로젝트에서 게리킬달 이외의 다른 사람이 그들의 개발계획을 듣는다는 것은 그들에겐 엄청난 정보누설이었다. 그런 이유로 IBM직원들은 OS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먼저 아내에게 기밀유지협약서 즉 NDA(Non-Disclosure Agreement)를 꺼내놓는다.

 게리킬달의 부인은 당황했다. 본인은 정작 이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갑자기 약속을 지킬 수 있냐, 우리와 이야기하는 것은 전부 비밀이고 누구한테도 발설하면 안 된다며 협박 비슷한 말을 하니 당황할 수 밖에. 마치 CIA의 비밀요원이 그녀의 집에 방문한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녀는 실랑이 끝에 NDA를 거부하고 IBM 직원들을 집 밖으로 내쫒는다.

 IBM직원들은 문전박대를 당한 후 큰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그럴만도 한 것이 1970년~80년대 IBM하면 전세계 당대 최고의 기업이었는데 자신들이 이런 취급을 당해 본 적이 있겠는가. 게리킬달이 얼마나 대인배인지, 자유영혼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게리킬달과 예정된 모든 협의 사항을 파기했다.

 코끼리라 불리던 초일류 거대기업이 개인 개발자 한 명에게 바람을 맞고 차선책을 찾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당시는 1970년도 후반이었다. 지금이야 DOS정도 만들려면 뛰어난 프로그래머들은 몇 개월이면 뚝딱 만들어내지만 당시는 OS의 개념이 깨어나던 시절이었고 태동기였다. 처음 가는 길이었다. 아무리 뒤져도 쓸만한 OS가 나오지 않았다.


[빌게이츠와 IBM의 만남]

 그때 그들의 눈에 워싱턴에서 베이직 인터프리터(베이직 코드 해석기)를 만들어서 팔고 있던 청년이 들어온다. 조사를 해보니 하버드에서도 전설적인 코더였고 하버드대학을 자퇴하고 나와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는 이것저것 잘하는 인재라는 것이었다. 그가 바로 글의 처음에 등장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게이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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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빌게이츠의 모습. 지금과는 달리 매우 앳된 얼굴이다.

 하지만 빌게이츠도 16비트에서 구동되는 OS를 만들어놓은 것이 없었다. 당장에 개발하려고 해도 몇 개월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그럼에도 빌게이츠는 (약간의 허세를 담아) 당연히 개발할 수 있다며 큰소리를 쳐놓고 그들을 돌려보낸다. IBM 직원들은 드디어 해결했다며 웃으며 돌아갔겠지만 빌게이츠에게는 이제부터 큰 강을 건너야 하는 미션이 주어진 것이다.

 필자는 빌게이츠가 뛰어난 사업가(장사꾼)의 기질을 보인 것이 이 선택이었다고 생각이 드는 것이, 게리킬달은 조금의 부를 얻었다고 거만해져서 거대기업을 등 돌리게 만들었지만, 빌게이츠는 달랐다. IBM이라는 호랑이 등에 잘만 올라타면 자신이 세계를 집어삼킬수 있다는 것을 꽤뚫어 본 것이었다. 당시 호랑이었던 IBM이 자신이 없는 숲의 왕으로 군림해있던 애플이라는 여우를 이기기 위해 새로운 PC를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그 본질을 파악한 빌게이츠였다.

 하지만 당시 천재적인 코딩 능력을 가지고 있던 빌게이츠도 단시간에 16비트용 OS를 만들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일단 원작자인 게리킬달을 찾아가 자신이 16비트로 컨버전 된 CP/M을 팔아보겠다고 설득했다. 게리킬달은 그 분야의 창조주였고 충분히 16비트용 OS를 단시간에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게리킬달은 단칼에 거절하고 빌게이츠를 내쫒았다. 팔거면 내가 직접 팔지 왜 네가 거기에 끼냐는 논리였다. 사실 맞는 말이었다.


[시애틀 컴퓨터 프로덕트. 그리고 게리킬달 VS 빌게이츠]

 빌게이츠는 포기하지 않고 사방으로 수소문을 시작했다. 그때 시애틀에 시애틀 컴퓨터 프로덕트라는 작은 회사 하나가 8비트 CP/M을 16비트로 변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제품에 적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큰 욕심 없이 개발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 OS의 이름은 86-DOS였다. 빌게이츠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그가 가진 걸출한 장사수완을 통해 당시 돈으로 5만달러에 소스코드에 관한 모든 권한을 전부 인수했다. 시애틀은 앞뒤 사정도 모른 채 거금에 제품을 팔았다는 성공에만 도취되어있었다. 계약은 성사되었고 빌게이츠는 드디어 돌파구를 찾았다.

 (당시 제대로 일도 안하던 빌게이츠가 어떻게 5만달러가 생겼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잘못 알려진 정보와는 달리 빌게이츠는 기업 변호사 아버지와 금융기업 이사 어머니를 둔 미국 최상위 부유층 가정에서 유복하게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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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 최초의 PC MODEL 5150. 정말 현재의 컴퓨터와 생김새가 유사하다.

 전 세계의 유능한 it사업가들의 성공사례를 보면 비슷한 양상이 참 많은데, 특히 그 분야에서 성공한 천재 소리를 듣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뿌리부터 직접 만들기보다는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기본소스를 가지고 더 좋고 사용하기 편하도록 완벽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소비자의 입맛을 정확히 캐치하는 능력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귀찮고 복잡한 초기 개발과정은 다 생략되었고, 안정적이고 완벽하게 수정된 이 OS는 PC-DOS라는 이름이 붙었다.(후에 MS-DOS가 된다)

 당시 CP/M을 16비트로 컨버전중이던 게리킬달은 이 이야기를 듣고 매우 분노했다. 다른 건 몰라도 CP/M을 개조해서 운영체제를 만들었다면 그건 본인의 저작물을 배낀 아류작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IBM에서 정식으로 이 DOS를 판매한다고 하니 화가 나는 것이 당연했다. 법적인 검토를 시작했고, IBM은 중재에 나섰다.

 여기서 또 하나 불같이 화를 내던 쪽이 바로 86-DOS를 개발해 빌게이츠에게 모든 권한을 넘긴 시애틀 컴퓨터 프로덕트였다. 자신들은 업계에서 이미 바보 취급을 받고 있었다. IBM이라는 거대기업에 들어갈 OS를 고작 5만불에 한 개인 프로그래머에게 팔아넘긴 바보였다. 그들은 빌게이츠와 IBM에게 지속적으로 항의를 했다. 법적 검토를 했지만 계약서는 이미 써졌기에 소용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비공식적으로 빌게이츠가 100만 달러 정도를 상도 차원에서 전달해 충돌을 정리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결국 게리킬달과 빌게이츠, IBM 3자가 모여서 협의를 하게 된다. IBM은 자신들이 새롭게 진입하는 시장에서 시작도 하기 전에 마찰이 일어나는 것만은 막기 위해 다방면으로 해결점을 모색했다. 아무런 힘이 없던 빌게이츠는 논외로 하더라도, 자존심이 강한 게리킬달을 설득하기 위해 그들이 제시한 중재안은 의외로 단순했다.

 IBM은 이번에 새로 출시되는 16비트 PC에서는 소비자들이 OS를 옵션으로 선택하는 협의안을 제시했다. 다시 말해 소비자들이 게리킬달의 CP/M이 좋으면 그걸 옵션으로 선택하고, 빌게이츠의 PC-DOS가 좋으면 그걸 선택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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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봐도 게리킬달은 호인인 듯. 240달러 VS 40달러의 세기의 경쟁

 문제는 가격이었다. 자존심이 강한 게리킬달은 자신이 만든 오리지널 OS의 가치를 소비자들이 인정해 줄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결국 자신이 만든 OS의 가격을 (무려) 240달러로 측정했다.

 그에 반해 빌게이츠는 영리했다. 어짜피 자신이 오리지널이 아닌 이상, 낮은 가격에 IBM PC에 최적화 된 가성비 OS라는 점을 어필하기로 했다. 패키지당 가격은 40달러였다.


[빌게이츠가 될 수도 있었던 사나이]

 게리킬달은 자신의 코드를 배낀 저 OS는 판매하면 안 된다는 논리로 나갔으면 빌게이츠의 PC-DOS는 계속 화두에 오르게 되고, 망할수도 있었지만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앞서 말했지만 그는 자존심이 강하고 동시에 자유분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자신이 질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대결을 좋아하는 타고난 싸움꾼이었을지도)

 그에 반해 빌게이츠는 천운을 타고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게리킬달이 법적인 모든 절차를 포기하고, 스스로 빌게이츠에게 자신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셈이 되었다. 거기에 대기업 IBM이 자신을 위해 중재를 해주고 있었다.

 어찌 되었건 OS 전쟁은 어느 한쪽은 대박을 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세계 최고의 기업인 IBM이 만드는 PC에 옵션으로 들어가는 것이니 어마어마하게 팔릴 것은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두 사람 모두 이 의견에 찬성했다.

 240달러와 40달러. 성능은 거의 동일했고 명품시장이 아닌 PC 시장에서 오리지널이라는 딱지는 소비자들에게 그닥 와닿지 않았다. 특히 실리주의의 미국 시장에서는 말이다. 빌게이츠의 40달러짜리 OS는 IBM PC와 함께 불티나게 팔려나가기 시작했고 게리킬달은 말 그대로 상남자의 최후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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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워낙 많은 부를 축적했기 때문에 길거리에 나앉거나 하지 않았다.
미국의 한 바에서 취한 채 싸우다 뇌출혈로 사망하는 끝만 봐도 그는...

 이 결정으로 빌게이츠는 향후 몇십 년간의 컴퓨터 시장을 싹 바꾸는 대업을 이뤄냈다. 빌게이츠는 세계 최고의 IT 갑부가 됨과 동시에,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WINDOWS를 포함해 MS오피스 등의 여러 소프트웨어,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굴지의 기업 마이크로소프트를 키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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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로고를 한 번도 못 본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어졌다

 게리킬달은 CP/M의 실패 이후에도 디지털리서치라는 본인의 회사를 통해 DR-DOS를 개발해서 시장에 내놓았지만 이미 전 세계 시장은 IBM PC와 함께 성장한 빌게이츠의 MS-DOS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그의 유명한 별명은 바로

‘빌게이츠가 될 수도 있었던 사나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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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에는 [But there is one more thing. 두 명의 스티브와 APPLE II] 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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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 Team Cheongs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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