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JCU 연 Quarterly Webzine 2015년 Autumn 제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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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학과 김수정 교수의 책이랑 사는 이야기 1. 글로 전하는 아버지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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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편역, 창비, 2009)

 여동생이 A4 용지 크기의 화이트보드를 사와서 현관 앞 신발장 위에 세워 놓았다. 서로 출퇴근 시간도 다르고 바쁘게 사는 가족들, 대화할 시간도 부족하고 얼굴도 못 보는 가족들이기에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 격려해주는 말, 축하해주는 말들을 화이트보드 위에 써서 전하기로 했다.

 항상 언니를 비롯한 다른 가족들에게 따뜻한 말을 잘 쓰는 여동생을 위해 내가 격려해 줬다. ‘천안 초딩들의 미래를 책임지는 김선생 파이팅'. 이 글을 보면서 웃는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가 쓰시면 여동생이 더 좋아할 거라고 했더니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시며, '너희나 써라. 나는……'하면서 말을 줄이신다. 낼 모래면 70세 이신 아버지는 쑥스러워 하셨다. 그래도 계속 쓰시라고 했더니 알았다면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쓰겠다고 하신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확인해 보니, 내 글 밑에 쓰인 글. '내 딸들 파이팅'. 여동생만 힘내라고 쓰면 내가 삐질 것 같아 그러셨단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출근하려고 신발을 꺼내며 다시 본 화이트보드는 달라져 있었다. '내 딸들 파이팅'이 '내 자식들 파이팅'으로 이렇게 '딸들'이 '자식들'로 바뀐 것이 아닌가. 밤늦게 들어온 남동생이 화이트보드를 보고 섭섭한 표정을 지었나 보다. 소심한 우리 아버지. 아침에 재빨리 고쳐놓으신 것이다. 드디어 확실해졌다. 나의 소심함은 100% 유전이다.

 우리 아버지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때로는 이렇게 말보다는 글이 마음을 전하기에 더 좋기도 하다. 지금 소개하려는 다산 정약용의 경우는 우리 아버지와는 다르지만 그 역시 자식들에게 편지로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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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초상

 다산 정약용은 역사에 그리고 최근에는 소설이나 드라마에 많이 나오는 사람이다. 나올 때마다 다양한 모습이 그려지는 데, 때로는 자애로운 스승으로, 때로는 지략이 넘치는 젊은 지식인으로, 임금(정조)의 총애를 받는 신하, 그리고 긴 유배생활을 하며 다작을 남긴 비운의 학자로 나타난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정약용 지음, 박석무 편역, 창비, 2009)’에서는 여러 다산의 모습 중에서 조금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강진의 다산초당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다산은 함께하지 못하는 자식들에게 많은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이 책은 그 중의 일부를 담고 있는데, 편지 속에서 아버지로서의 다산의 마음이 많이 느껴졌다. 특히 ‘폐족(廢族: 조상이 큰 죄를 짓고 죽어 그 자손이 벼슬을 할 수 없게 됨)’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자식들에게 당부를 하는 부분에서는 마음이 숙연해졌다. 사실 폐족이 된 것은 아버지인 본인과 자신의 형제들로 인한 것인지라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 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자식들에게 폐족이기 때문에 관직에 나가지 못한다고 절망만 할 것이 아니라 폐족이라도 학자도 성인도 될 수 있다며 희망을 준다. 폐족이기에 학문에 더욱 매진해야함을 이야기하고, 학자로서 갖춰야하는 자세며, 마음가짐, 옷차림과 살림살이에 대한 세세한 충고를 편지에 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유배로 인해 흔들릴 수 있는 자식들이 불의와 타협하지 않도록 때로는 단호하게 호통을 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다산의 편지에서는 자신의 유배생활의 비참함이나 괴로움은 거의 나타나 있지 않다. 그래서인지 곁에 있지 못하는 미안함과 함께 자식들이 훌륭하게 성장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 더 크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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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정
국제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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