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신혼 여행지를 체코 프라하로 결정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정말이지 ‘한결’ 같았다.
“신혼여행으로 왜 그 추운 곳을 가! 1월에 결혼하면 따뜻한 휴양지를 택해야지!”
솔직히 처음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추운 건 정말이지 싫다. 특히 북유럽 쪽은 정말 정말 춥다던데! 겨울에 더 따뜻하다는 뉴질랜드, 호주나 신혼여행지로 각광받는 발리 등의 동남아시아 휴양지를 가는 것이 어떨까에 대해 예비신부님께 몇 번이고 강력히 주장했으나 번번히 실패로 돌아갔다. 우리가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나라에서 문화와 아름다움을 통해 새로운 추억을 쌓아보자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렇게 프라하로 신혼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체코에 도착하고 나서 이틀정도 지났을까. 맑은 햇살을 받으며 프라하 시내를 걷던 중 갑자기 문득 어머니가 어릴 적부터 끊임없이 조기교육 하시듯 되뇌이시던 말씀이 떠올랐다..
“남자는 아내 말 들어서 손해 볼 거 하나도 없다!”
어머니! 현명한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내 말 듣고 온 프라하는 너무 아름답습니다.

2편 [프라하 성과 황금소로]
동유럽의 파리(paris)라고 불리우며 체코의 수도로 서울의 5분의 4정도의 크기인 프라하는 유럽 중에서도 관광산업 의존도가 높은 도시로 유명하다. 프라하를 돌아다닐 때 가장 사람이 붐비고 번화한 곳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동네가 대한민국에 비해 많이 한산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이유를 살펴보니 프라하 전체 인구가 서울의 10분의1 수준인 130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야기가 조금 옆으로 샌 느낌이 있지만 이러한 이유로, 프라하는 거리마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체스키크롬노프에서 길을 잃고 어쩔 줄 몰라할 때 영어로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준 사람도 알고 보니 불가리아에서 체코로 일을 하기 위해 건너온 외국인이었고, 여행 셋째 날 갑자기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 방문한 프라하 시내 유명 한식레스토랑에서는 우리나라 사람들과 외모가 유사한 몽골사람들이 서빙을 하는 모습마저 볼 수 있었다. 정말 다양한 민족들이 어우러져 사는 국가였다.
그렇게나 걱정했던 1월의 프라하. 체코의 겨울은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보다 조금 따뜻한 정도였다고 표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첫날 호텔 픽업을 맡았던 한국인 가이드는 ‘북유럽국가들이 추워서 겨울에 관광하기가 어렵다는 편견이 있는데 프라하는 추위가 몰아치는 기간이 11월 말 정도부터 12월 중순까지’라며 유럽국가 중에서도 물가도 싸고 날씨도 좋아 살기 좋은 도시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실제로 당시를 기억해보면 장갑 하나 끼고 코트 하나 걸치고 자유롭게 여행을 했었다. 한국에서 가져간 거위털 패딩은 마지막 입국하던 날 딱 한번 입었다. (여행 내내 거리에서 아웃도어용 두터운 패딩점퍼를 입은 사람들은 거의 대다수 한국인들이었다. 솔직히 투박한 패딩은 체코의 풍경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프라하는 시내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있다. 어디 한군데 빼놓지 않고 몇 백 년 동안 이어진 예술과 문화, 건축이 고스란히 보존되어있다. 다양한 유럽 국가를 여행해보았지만, 유독 체코의 프라하성과 성 비투스 대성당은 깜짝 놀랄만한 웅장한 자태와 완벽한 보존으로 가는 곳곳 탄성을 짓게 했다.
체코의 프라하 성 곳곳을 걸어다니면서 사진을 찍다보니, 궁 전체가 프라하 시가지에서도 꽤 높은 고지대에 위치해있음을 알 수 있었다.

프라하 성 외곽에서 바라본 프라하 시내의 모습.
높은 산에 올라 내려다보는 착각마저 든다.
프라하 성 가이드를 통해 이유를 들어보니 첫째로는 유럽은 중세시대부터 갖은 전쟁이 늘 있어왔기 때문이란다. 전쟁이 반복되는 역사에서 유럽의 고성들은 외부에서 침투해오는 경우를 항시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시야가 탁 트일 수 있는 고지대에 성을 지었다고 한다. (실제로 성 외벽의 끝자락 어디든지 모든 마을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전망이 좋다)
둘째로는 과거 나라의 흥망성쇠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10세기 후반의 무서운 전염병이 특히 식수를 통해 퍼지는 경우가 많아 이 이후에 지어진 성들은 일반인들이 사용할 수 없고 가장 깨끗한 상류의 물을 식수로 활용할 수 있는 고지대를 선택했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백성들이 왕궁을 우러러볼 수 있고 그들이 범접하기 힘든 곳이라는 인식을 주기 위해 고지대에 성을 지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프라하의 성은 단일 건물로 건축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일종의 궁 개념과 비슷한데 커다란 궁 안에 왕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거주지가 위치해있고, 성당을 비롯하여 다양한 왕족의 건물들이 위치해있다.
한 가지 특이했던 점은 궁에서 일하는 귀족들의 성도 이 프라하 궁에 지어져있고, 후손들이 아직도 거주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보통 성은 왕족만 거주하는 곳으로 알고 있었는데 체코의 왕족들은 지금으로 따지면 재무장관, 법무장관, 국방부장관, 총리 등의 역할을 수행하던 신하들에게 거주할 수 있는 성과 함께 왕가의 식량을 제공해주었다. 유럽은 보통 외부의 침입보다 내부에서 왕족과 신하간의 배신과 싸움이 수없이 역사를 뒤바꿨던 점을 생각하면 이렇게 한 왕궁에서 마치 가족처럼 함께 살아갔다는 점이 매우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귀족이 살았던 성 내부 저택의 모습.
현재는 주로 후손들이 박물관이나 공연장으로 운영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성 비투스 대성당.
정말이지 유럽을 여행 할 때마다 유럽 국가의 역사와 함께 한 카톨릭 문화의 웅장함에 놀라곤 한다. 성 비투스 대성당은 체코라는 국가가 가지는 카톨릭의 상징성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프라하 성의 외부에는 블타바 강이라는 큰 강맥이 흐르는데 이 강 가장 귀퉁이에서도 보일만큼 웅장한 자태를 자랑한다.

9세기, 바츨라프 1세가 처음으로 증축했고 이후 11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증축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4세기 카를 4세가 고딕양식으로 다시 증축하기 시작한 비투스 대성당은 20세기에 이르러서야 완공 될 만큼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14세기부터 진행된 고딕건축양식을 통해 만들어진 성당의 둥근 천장은 고딕 건축 역사에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이렇게 각 시대의 건축양식이 어우러져 완공되는데 무려 1천년 가까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건물 외부의 복잡함과 뛰어난 건축양식, 석공 기술이 놀라움에 관광객들을 멍하게 만든다면, 내부에는 각 시대의 예술양식이 총망라되어있다. 예술작품이라 표현해야 마땅할 것 같은 다양한 문화재에 다시금 놀라움을 감출 수 없게 된다.

프라하의 성 비투스 대성당 내부에는 예배당과 왕족의 무덤 등이 위치해있다. 지금도 매주 미사가 열린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관광객들의 출입도 다른 문화재에 비해 매우 자유로운 편이고, 사진촬영도 얼마든지 허용된다.
내부에 들어섰을 때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이었다. 성당의 역사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았지만, 역대 가장 뛰어난 스테인드글라스 예술이라고 평가받는 알폰스 무하의 작품들을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예술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경이로움의 끝을 봤다고 표현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그만큼 아르누보 양식의 절정을 보여주는 성 비투스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강렬하다.

특히 시선을 끄는 것은 보헤미아의 성인이라 불리우는 바츨라프 1세와 그리스도의 삶을 담은 작품이었다. 한쪽에는 바츨라프 1세가 왕이 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당시 주교의 일생과 왕가가 생겨나는 과정을 담은 모습을 유리공예로 묘사했다. 역대 최고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라고 여겨질 만큼 사람의 혼까지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

비투스 대성당 내 성 얀 네포무츠키(sv. Jan Nepomucky)의 무덤
그 외에도 다양한 예술작품들이 있었지만 특히 은 2톤으로 제작한 조각상이 눈길을 끌었는데 알고 보니 이것이 한 사람의 관이라고 한다. 얀 네포무츠키라는 신부의 무덤인데 아무리 카톨릭 국가였어도 신부의 무덤이 이렇게 화려한가 싶어 알아보니 그 유래가 재미있다.
바츨라프 4세 왕정시절, 왕비가 호위병 한명과 바람이 나 임신을 하게 되었다. 왕비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결국 얀 네포무츠키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게 된다.

바츨라프 4세는 왕비가 고해성사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얀 신부에게 사실을 고하라 명하지만 얀 신부는 고해성사는 하나님께 왕비가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한 것이기 때문에 밝힐 수 없다고 함구한다. 그러자 왕은 얀 신부의 혀를 자르고 현재의 카를교 위에서 블타바 강으로 다리에 돌을 묶어 던져버렸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보헤미아에는 안 좋은 일들이 연이어 벌어졌고 바츨라프 4세는 자신의 분노로 인해 얀 신부를 죽인 것이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깨닫고 괴로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블타바 강 위로 별 다섯 개가 찬란하게 반짝이며 그 아래 얀 네포무츠키 신부의 시체가 떠올랐다. 왕은 그의 시체를 건져 성당에 안치했고, 은 2톤을 들여 그의 업적을 인정하는 거대한 관과 조각상을 만들었다. 그러자 보헤미아에 안 좋은 일들이 점점 사라졌다.
프라하 성에는 특히 관광객들에게 매우 유명한 거리가 있다. 바로 황금소로(Golden Lane)라는 곳이다. 황금으로 된 작은 길이라는 뜻인 줄 알았지만 막상 가서 정보를 보니 당시 궁에서 일하던 ‘금세공업자와 연금술사’ 들이 거주하던 곳이라 황금소로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황금소로의 입구에서 촬영한 사진.
황금소로는 프라하의 유명한 특산품들을 한곳에서 만날 수 있는 장소이다. 예를 들자면 프라하의 목공예 인형(체코는 나무로 제작된 마리오네트, 장난감들이 매우 유명하다), 보헤미안 크리스탈, 자수, 체코 도자기 등이 있다. 생각했던 것에 비해 규모가 매우 작아 처음에는 조금 실망했지만 돌아다녀보니 ‘아! 이곳이 화려한 체코의 문화의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구나’ 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황금소로의 한 상점에 전시되어있던 나무인형들. 체코는 마리오네트가 굉장히 발전했다.
황금소로는 프라하 시내와는 다르게 매우 작은 건물들이 빼곡히 자리해있다. 지금이야 황금소로가 아름다운 프라하의 주요 관광지로 자리 잡게 되었지만, 사실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면 이곳은 그리 아름다운 곳이 아니다. 프라하의 상징과도 같은 빨간 지붕도 없고, 평탄한 평지에 잘 보존된 일자형 돌길도 없이 구불구불하다. 당시에는 금세공업자와 연금술사들이 세계 최고의 실력을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직업 자체가 천대받아서 그들의 삶의 터전도 이렇게 소소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당시 노동자들의 힘듦이 구부러지고 무너진 벽을 통해 전달되는 것 같아 마냥 이곳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즐길 수는 없었다.

황금소로의 소박한 거리모습.
우리 부부의 눈을 특히나 사로잡았던 것은 체코 전통 도자기를 전시한 상점이었다. 체코의 전통 도자기는 파란색 유약을 발라 구워내는 것이 특징인데, 전체가 파란 에머랄드빛인 경우도 있고, 순백색에 보헤미안 전통의 문양을 파란 유약으로 새겨 넣은 도자기도 있다. 가격은 우리나라 기성 그릇제품과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이후 일정도 많다보니 많이 구입을 못해왔다.
(사실 다른 곳에 가도 이정도 퀄리티에 이정도 가격으로 판매하는 도자기들을 만날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프라하 시내의 도자기 상점들이 훨씬 더 비싼 가격을 제시해서 살 수 없었다.)
아직도 와이프와 함께 프라하 여행에서 가장 후회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황금소로에서 판매하던 프라하 전통 도자.
프라하 성을 나오면 그 유명한 까를교가 눈앞에 펼쳐진다. 사실 까를교는 그 위에 서있을때보다 멀리서 바라볼 때 훨씬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프라하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 중 하나이다보니 사람이 많아 정신이 하나도 없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많다. 꼭 국내의 다른 장소에 와있는 기분까지 들 정도였다. (한국 사람이 워낙 많다보니 롯X월드의 실내와 외부를 연결하는 그 다리 같은 느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까를교 아래에서 촬영한 사진. 뒤에 보이는 건물이 프라하성과 비투스 대성당.
프라하는 곳곳이 낭만적이다. 나이가 지긋하게 먹은 궁전마저도 이토록 고풍스럽고 아름다우니 프라하의 야경을 담은 시내는 얼마나 낭만적이겠는가. 그리고 프라하는 어디를 가든지 거리에서 자신의 능력을 뽐내는 다양한 예술가들을 만나볼 수 있다. 가끔 마음에 맞는 예술가를 만날 때면 몇 분이고 그 자리에 서서 함께 음악이나 예술 활동을 즐기고, 박수를 보내줄 수 있는 곳이다.
늦은 겨울, 느즈막한 시간에 프라하 거리를 거닐며 느낀 포근한 감정은 아직도 우리 부부의 마음속에 남아, 일상에 지친 마음을 위로하곤 한다.
[다음편 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