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해를 맞이하며

 코로나19 상황에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자 궁여지책으로 소일거리를 찾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철 지난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이었다. 최근 본 영화가 [적벽대전(赤壁大戰)]이다. 촉과 오나라가 동맹을 맺고 조조의 80만 대군을 초토시킨 적벽대전의 승리는 제갈공명의 천기(天氣)를 읽은 화공(火攻)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사실 그 이전에 두 나라의 임시 결합을 이끌어낸 오나라 책사(策士) 노숙의 지혜와 기개(氣槪)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한(漢)나라 정통론에 입각해 삼국 영웅들의 기개와 야망을 묘사한 소설이다. 자연히 황실 자손인 유비와 그 주변 인물들의 영웅적 일화들이 많이 소개되었고, 상대적으로 조조나 손권의 장수와 책사들은 낮게 평가된 면이 있다. 난세에 군주가 영웅이 되는 길은 전략과 조언을 담당하는 책사의 역량에 크게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유비는 제갈공명, 조조는 곽가 그리고 손권에게는 노숙이 있었기에 그들이 시대의 영웅으로서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오나라 노숙은 주군인 손권에게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설파했는데, 주변국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 강국을 견제하면서 시간을 벌고 이후 국력을 충분히 갖춘 뒤 천하 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계략이다. 당시 조조가 “관도대전”에서 원소를 무찌르고 절대 강국이 된 뒤 손권의 오나라에게 굴복과 조공을 압박하였는데, 이에 화친을 전제로 항복하자는 대부분의 신하들과는 달리 책사 노숙과 맹장 주유는 동맹을 이끌어 항쟁하는 것이 살길이라는 주장을 편다. 여기서 노숙의 담대한 기개와 지략가로서의 진면목이 나온다. 그는 위나라에 비교도 안 될 작은 나라의 일개 신하였으나, 특유의 판단력과 충성심을 바탕으로 체포되어 죽을지도 모를 위험을 무릅쓰고 스스로 촉나라 유비를 찾아가 목숨을 건 담판에 나선다. 결국 유비와 제갈공명의 마음을 움직여 오, 촉 동맹을 만들어 내고, 두 나라가 “적벽대전”에서 대승을 하게 이끈다. 이 승리를 계기로 유비는 형주를 얻게 되어 촉나라 번성의 기초를 다질 수 있게 되었고, 손권의 오나라는 조조의 항복 협박에서 벗어나 대등한 입장을 공고히 할 수 있게 되었다. 책사의 세밀한 판단과 목숨까지 건 담대한 기개가 한 나라를 멸망의 위기에서 구하고, 더 나아가 부강하게 만든 좋은 사례(事例)라 할 것이다. 몇 년 뒤, 오나라가 형주 땅을 되찾기 위해 유비의 촉나라와 더 이상 동맹이 아닌 대립의 상황에서 담판을 벌일 때에도 노숙의 지략과 기개는 천하를 호령하던 관우마저 감복하게 만든다. 훗날 오나라 여명에 의해 죽게 되는 관우도 ‘강동의 영웅은 오직 노숙 한 명이다’고 했을 정도로 노숙의 전략은 제갈공명을 두렵게 했으며, 그의 기개는 관우도 함부로 하지 못했다.

 문득 조선의 ‘친명배금(親明拜金)’이 생각난다. 오랑캐라 얕봤던 금나라가 세력을 키워 명나라를 위협하던 조선 인조(仁祖) 시절에 국제 정세에 대한 판단, 지략 그리고 용기와 기개도 없던 조정 대신들은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항쟁의 기회도 화친(和親)의 적기도 놓쳐버리고 굴욕적인 항복과 속국(屬國)의 운명을 맞이한 슬픈 역사가 노숙의 기개와 명철한 판단력과 대비되어 스쳐 간다. 판단과 지략의 부재는 훗날 ‘쇄국 정책’으로 이어져 세계의 변화로부터 조선을 눈감게 만들어 버리고, 급기야 신문명과 신과학으로 무장한 열강들의 노리개로 전락하는 일련의 안타까운 역사의 원인이 됐을지도 모른다. 하나의 왕조가 500년을 지속하다 보니 세습된 왕위를 바탕으로 절대 권력에 취한 후대의 왕들은 개국 초기의 선대 왕들에 비해 담대한 포부나 기개도 없이 안락한 현실에 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충신을 멀리하고 책사를 홀대하니 먼 훗날 한일합방으로 이어진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1873년 청나라는 일본의 특명대사 소에지마(副島)가 동치제(同治帝)를 알현할 때 삼궤구고두례(三?九叩頭禮)를 요구했다. 인조(仁祖)가 삼전도에서 청나라 태종에게 굴욕적으로 했던 절이다. 당시 일본은 메이지유신 직후라서 국력(國力)이 청나라에 맞설 정도는 못됐지만 소에지마는 위협적 압박 상황에서도 끝까지 못하겠다고 버티고는 마침내 서서 경의를 표하는 입례(立禮)를 관철했다. 외교관 한 사람의 용기와 기개가 한 국가의 체면을 살리고, 이후 양국이 외교적으로 대등한 입장에서 마주하는 기본 틀을 정립한 사건이다.

 1976년 ‘철(鐵)의 여인’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가 영국 수상이 된 때는 경기 침체가 일상이 된 암울한 시기였다. 과도한 복지예산과 과격해진 노조파업으로 고비용과 저생산성으로 표현되는 소위 ‘영국병’이 만연된 상황이었다. 대처는 테러 위협에 당당히 맞서면서 노동계의 반대와 정적들의 우려를 소신과 담대한 기개로 이겨내고 <시장경제 체제>로의 전환을 통해 영국의 경제를 기적적으로 회생시킨 영웅적 업적을 이뤄냈다. 낭비적 예산을 정비하고 노조와의 합의를 이끌어 만년 파업을 종식시키고 경제 부흥의 기반을 다졌는데, 이후 대처의 고효율 경제 정책은 ‘대처니즘’이라 명명되어 세계가 주목하게 된다. 한 정치인의 애국심, 올바른 판단과 강한 의지는 당장에는 국민을 힘들게 할지라도 결국 미래 행복을 보장한다는 신념이 되었고, 이를 통해 <구조개혁의 진전>을 이루어, 경제가 부흥하게 되니, 마침내 세 번 연속 수상으로 당선되는 전폭적인 국민적 지지를 받게 된다.

 노숙, 소에지마 그리고 마가렛 대처는 정치 리더 한 사람의 담대한 기개가 국력 못지않은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역사적 사례다. 과거 우리 조상들이 따랐던 권력자나 리더들은 어떠했는지 이미 역사가 말해 주고 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선진국 문턱까지 오게 만든 이면에는 정치 리더의 용기와 기개가 있었고, 달러 벌이를 위해 세계를 누빈 무역 최전선의 상사맨, 건설맨들의 도전과 당당한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늘날 우리를 대표하고 있는 관료와 책사들은 과연 국제 정세의 흐름,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냉철히 팔로우 업(follow-up)하면서 우리나라 이익 최우선의 외교 정책과 경제 정책을 펴고 있는지 궁금하다. 정치 리더는 의사 결정의 근간이 진영 논리나 정치 세력의 안위만을 위한 판단과 정책이 아니라 국민과 국가의 미래 발전을 위한 충정의 산물인지 뒤돌아봐야 할 것이다. 국가 간 경쟁에 한 치의 오차나 판단의 실수가 있어서는 안되며, 특히 강대국을 상대할 때 리더의 담대한 기개와 냉철한 판단이 요구되는 이유는 국민의 안위(安慰)와 후대(後代)의 번영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기술과 인식 변화의 사이클이 무척이나 빨라져서 정신이 없을 정도다. 관심과 전략의 초점이 세계적 큰 흐름(main stream)에서 벗어나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줄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 가족과 후손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냉철하게 점검하고 뒤돌아봐야 할 때다.

국제사이버대학교 총장
경영학 박사 이 경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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