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JCU 연 Quarterly Webzine 2017년 Spring 제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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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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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주전쯤 모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에 초청받아 국회를 방문하다 생각지 못한 교통체증을 겪었다. 계절의 변화에 무심했지만 바야흐로 벚꽃 놀이 시절이 온 것이다. 여의도 외곽도로는 온통 절정에 이른 벚꽃이 만발했고, 이를 즐기려는 시민들과 각종 먹거리 차량으로 일대가 큰 혼잡을 보였다. 상춘객들 사이로 다정하게 벚꽃을 배경으로 사진 찍으며 즐겁게 웃는 연인들 모습이 보기 좋았다. 출판기념회에 참석하니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뉴스의 한 면을 장식하는 많은 정치인들이 서로 인사하며 웃는 모습이 눈앞에 전개된다. 같은 웃는 모습인데, 좀 전 벚꽃들 사이의 웃는 모습들과는 왠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대한민국은 역사상 초유의 탄핵 정국 소용돌이에서 부여된 임기를 마치지 못한 대통령의 부재 상황에서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조기 대선을 앞두고 있다. 이 와중에 집권당은 둘로 쪼개지고 당명도 전혀 다른 새로운 정당으로 변신했다. 야당도 어수선하기는 마찬가지다. 과거에 같은 정치적 소신과 신념으로 한 당에 몸담았다가 이제는 분당해서 서로 다른 후보자를 지지하며 다른 길을 가면서 심지어 상호 비방을 하면서 심하게 다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모 정치인은 집권 여당을 등지고 신당에 참여하자 자신의 지역구에서 “배신자”라는 말을 듣고 있다고 한다. 모 인사는 과거 집권당과 야당을 오가며 국회의원을 네 번씩이나 하고 있다. 정치적 공동체는 이렇듯 쉽게 뒤바뀔 수 있는 것일까? 자신의 소신과 신념이 우선되어야 할지, 아니면 과거 인연과 초심이 중시되어야 하는 것인지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다. 단지 하나 분명한 것은 간혹 자신의 영달(榮達)과 입신(立身)을 위한 배신(背信)이 거짓 정치적 소신과 신념으로 둔갑하여 가면을 쓴 채 우리에게 다가오기에 그 진위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배신의 특징 중에 하나가 지도자의 실권(失權)과 조직의 위기(危機) 상황에서 유독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탄핵되고 구속되자 측근들의 배신이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 나온다. 모든 걸 대통령이 시켰다고 하면서 자신은 지시를 전달한 것뿐이라는 변명이 최 측근들 이었던 인사들로부터 나온다. 그들이 청와대 현직에 있을 때도 자신들이 힘없는 중간자일 뿐 아무런 의사 결정권이 없는 허수아비일 뿐이라고 주변에 말하고 다녔을까? 청와대 측근들의 무소불위(無所不爲) 권력 행사에 없던 죄가 생기고, 졸지에 무능하고 나쁜 사람이 되어 좌천되거나 옷을 벗게 됐다고 당시 공직자들이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의 책임 전가는 비겁한 자기 살 궁리일 뿐으로만 보인다.

 정치에 있어서 반복된 배신은 사회 변혁을 위한 일정 부분 순 기능 역할이 있기에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일부 학자들도 있다. 탄핵 정국에서 보여준 관료들의 배신과 선거 때만 되면 되풀이 되는 정치인들의 배신을 보면서 우리는 과연 어느 정도까지를 필요한 순 기능으로 인정하고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주군(主君)의 몰락을 보면서 자신은 그 과정에 전혀 관련이 없다는 관료와 권력의 한 귀퉁이를 차지해 보겠다고 이합집산(離合集散)을 밥 먹듯 하는 정치권을 보면서 그 결과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옛 조직과 동료에 대한 공격과 배신에 대해 우려되는 점이 있다면, 행여 배신과 반목이 국민과 나라를 위한 것 이였다는 거짓 가면을 쓰고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마치 작은 애국지사처럼 착각 인식되고 더 나아가 칭송까지 받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과거 우리에겐 배신이 일상처럼 다가왔던 역사적 시절이 있다. 일제(日帝)가 한일합방을 이루자 수많은 배신자가 소위 ‘앞잡이’가 되어 조국을 배신하고 국민에게 등을 돌렸다. 한국 전쟁 당시에도 스스로 부모를 저버리고, 스승을 고발하고, 지주들의 땅을 갈취하려고 억지로 죄를 만들어서 재판에 넘긴 배신이 얼마나 많았는지 잘 알고 있다. 과거 두 번 불행의 역사를 겪으면서 한 민족의 혈통에는 배신의 DNA가 장착됐다는 비아냥거림도 있다. 자신 혼자 살겠다는 비겁한 배신, 권력에 기생하려는 파렴치한 배신 못지않게 남의 약점을 이용해 이익을 챙기려는 비인간적인 배신이나 거짓 증언 등도 사회 발전을 위한 순 기능이 있다고 보기에는 그것들로 인한 폐해(弊害)도 만만치 않기에 오히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갈등과 반목 그리고 불신의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언론사 조사에 따르면 인구 1만 명당 연간 고소 건수가 한국은 80건, 일본은 1.3건이라 한다. 인구 비율을 고려하면 무려 200배가 넘는다. 2007년 통계이지만, 무고죄 기소도 우리나라가 일본의 217배나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고소중의 상당수가 동업했던 사람이나 과거 근무했던 회사 간의 분쟁과 갈등의 결과라고 한다. 우리가 별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관료들과 정치인 그리고 기업과 사회에서의 배신과 고소 남발이 오래전 언제부터인가 ‘나비효과’가 되어 우리 사회 전반에 다양한 종류의 커다란 불신과 갈등을 부추기는 바람(?)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우려도 하게 된다. 목적과 음모를 숨기고 순수한 의도인양 거짓으로 만들어진 가짜 이미지나 배신이 먹히는 사회에서는 신뢰와 믿음, 그리고 건전한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향후 정치적 선택에 있어서 국민의 여망을 배신하지 않을 인물을 뽑아야 하기에 그 만큼 신중한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이경우
국제사이버대학교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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