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JCU 연 Quarterly Webzine 2016년 Autumn 제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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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콘서트 그리고 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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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31살이 된 권혁주는 금호 영재원 출신으로 1997년 20대 초반에 제2회 차이콥스키 청소년 국제 콩쿠르 2위를 하면서 우리에게 크게 알려졌던 바이올린 영재다. 이런 세계적인 젊은 유망주가 콘서트를 준비하다 급성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들었다. 왜 그리도 천재들은 제 명을 다하지 못하는지...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그가 떠난 이 가을은 흔히 콘서트의 계절이라 할 정도로 음악행사가 많은 시기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속 벤치에 앉아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이나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을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어떤 값비싼 보약보다 우리의 마음을 맑게 정화시켜 줄 것으로 믿는다. 요즈음의 클래식은 과거와 달리 특정 계층만을 위한 문화적 유희(遊戱)는 아니다. 비싼 돈 들여서 콘서트홀에 가지 않더라도 스마트폰의 앱과 유튜브(Youtube)를 통해서 다양한 연주를 감상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기술의 발전이 음악 감상의 진입장벽을 허물어 버린 것이다.

 17세기 바로크 시대까지 음악은 유럽 왕족들과 소수 귀족들만을 위한 궁궐 내 행사였는데, 상류층의 문화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극히 배타적인 테두리 안에 있었다. 이러던 음악의 영역이 대중들에게까지 확산된 것은 ‘협주곡’이 만들어 지고 연주자가 오케스트라와 어우러져 연주한 것이 계기가 됐다는 게 통설이다. 협주곡을 뜻하는 콘체르토(Concerto)는 라틴어에서 비롯됐는데, ‘함께’라는 뜻의 콘(Con)과 ‘대결하다’라는 뜻의 체르토(Certo)의 합성어다. 풀어보면 연주자의 악기와 오케스트라 사이에 격렬하면서도 조화로운 연주의 대결과 화합이 연속적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다. 물론 당시에는 변변한 오케스트라가 많지 않았고 심지어 단원들은 악보를 잘못 해석하여 틀린 연주를 하는 일이 많았는데, 이로 인해 연주자와 혼선을 일으키는 일도 비일비재 했다고 한다. 오케스트라와의 불협화음을 단독 연주를 통해서 해소하고 동시에 음악 대중화를 이끈 대표 연주자는 헝가리 출신의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인데, 주로 귀족과 시민들이 모인 공회당이나 궁전의 접견실 등에서 오케스트라 없이 자신의 1인 리사이틀(Recital) 공연을 통해서 음악 대중화를 선도했다.

 리사이틀(Recital)은 프랑스 어원 Reciter에서 유래됐는데, 그 뜻은 ‘암송하다’로 번역된다. 즉, 리사이틀은 악보를 보지 않고 암기해서 연주한다는 의미다. 리스트는 모든 연주를 암보(?譜: 악보를 외움)해서 연주했는데, 당시 인기 연주자였던 클라라 슈만과 함께 이들이 행한 암보 연주는 지금까지 연주자들 사이에서 당연시 여겨지는 하나의 전통이 되어 무반주든 협주든지 간에 연주자는 악보 전체를 외워서 연주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이 같이 악보 전체를 암기해서 연주하는 습관은 깊은 의미를 갖고 있는데, 무엇보다 연주자 자신이 더욱 더 작품에 집중할 수 있으며, 작곡가의 숨겨진 의도와 감정까지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의 표출이었다. 더 나아가 악보 전체를 외우는 과정을 통해서 작품과 친밀해지려고 했으며, 이를 통해 보다 심도 있는 작품 해석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었고, 궁극적으로 작곡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가짐을 유지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과거 특정 집단이 독점했던 수많은 문화 자산과 예술 행위들이 수백 년 세월을 거쳐 우리들 곁으로 다가왔다. 불과 100여 년 전까지 우리나라의 음악은 그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가 정한 궁중 의례(儀禮) 행사를 위한 수단이거나 귀족들의 풍류를 위한 풍악(風樂)이 전부였지 악기가 동원된 대중(평민)을 위한 음악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세대는 악기 연주뿐만 아니라 뮤지컬, 발레 등을 비롯해 유명 화가들의 명작과 황실에서 독점되어 사용하던 도자기 식기류 등도 전시회나 박물관에 가면 언제든 감상할 수 있는 문화 예술 대중화 시대를 살고 있다. 개인적으로 국가 경제력 또는 1인당 국민소득이 민도(民度)를 결정하는 제 1의 핵심 요인이라는 실물 중시자(重視者)들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문화적 소양과 안목이 따라주지 못한 부자는 그저 천박한 졸부(猝富)일 뿐인 것이다.

 나라가 안팎으로 어수선하다. 북한은 핵실험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 위협을 하고 있고, 중국은 자체 건설한 우주 정거장의 도킹 성공을 기반으로 화성 탐사를 시작한다고 한다. 일본은 올해도 3년 연속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우리 사정은 어떤가? 대학 졸업자 3명중에 1명이 무직인 경제 형편에, 가계 빚 총액이 1,200조 원에 이르고, 대표 기업 삼성 전자는 배터리 폭발로, 현대 자동차는 노사 분규로 수십조 원의 매출 감소가 확정적이다. 이에 경제 성장률은 간신히 2% 대에 턱걸이 한다고 하는데, 국회는 여전히 정쟁(政爭) 중인 나라에 살고 있다. 이 와중에 00재단, 0스포츠 비리 의혹의 중심에 서서 국정을 농단하고 권력을 사유화 했다는 최모씨 얘기를 들으면서 또 하나의 정권이 그 마감 시간을 앞두고 ‘광란의 제몫 챙기기를 시작 했구나’라는 스산한 생각을 하게 된다. 재벌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각출했다는 800억 원은 과연 ‘문화 융성’과 ‘콘텐츠 강국’을 조직의 목표라고 정관에 적시한 00재단을 통해서 그나마 살기 힘든 우리들 살림살이에 촉촉한 가을비처럼 정신적 위안을 줄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권력에 빌붙은 천박한 졸부의 헛된 욕망만 키우는 눈먼 돈으로 변신할 것인가? 그저 바람에 낙엽이 구르듯 멍하니 무기력하게 바라만 보고 있다.

이경우
국제사이버대학교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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