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합상담치료학과 이주연 교수의
- 공·감·대
- #5.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 ? 기술 너머의 상담

심리상담은 원래 상담실을 직접 찾아가 정해진 시간에 대면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심리상담의 패러다임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제는 스마트폰만 열면 언제든 대화할 수 있는 인공지능 상담 서비스가 일상화되고 있다. 특히 챗지피티(ChatGPT)와 같은 대화형 AI의 등장으로, 고민을 나눌 상대를 찾지 못하던 사람들이 심리적 첫 번째 창구로 AI를 활용하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 이 변화는 누군가에게는 아주 조용하지만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예컨대, 마음이 힘들어도 상담실 문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는 사람들이 있다. 비용, 공간에 대한 두려움, 혹은 말로 꺼내는 것 자체가 어려워 상담을 망설이는 이들이다. 하지만 AI 상담은 그런 마음의 벽을 조금은 낮춰준다. 기다림도 용기를 짜내는 긴 시간도 필요 없다. 언제 어디서든 마음을 꺼내어 놓을 수 있고, 익명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속에서 숨겨둔 이야기들을 조금씩 풀어낼 수도 있다. 비록 차가운 화면 너머일지라도, 이 첫걸음은 분명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시작이 된다. AI 상담은 그렇게 마음이 닫히기 전에 손을 내밀 수 있는 작은 통로가 되어준다.

하지만 문제는 ‘AI가 인간 상담을 대체할 수 있는가’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AI 상담의 확산을 마냥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는, 인간의 마음을 다루는 상담의 본질이 단순한 정보 전달이나 해결책 제시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진정한 상담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인간 상담자는 내담자의 표정, 억양, 눈빛, 침묵 속에 담긴 감정까지 읽어내며 그에 맞는 반응을 만들어낸다. 단순히 “어떻게 해야 한다”는 정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그 감정의 뿌리를 탐색하고 재구성하며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AI의 한계는 분명해진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언어를 학습해 합리적인 답변을 생성할 수는 있지만, 상대의 감정을 실제로 ‘느끼는’ 존재는 아니다. 감정적 뉘앙스나 관계의 깊이를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고, 맥락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 표준화된 반응을 내놓는 경우도 많다. 상담에서 중요한 것은 내담자가 느끼는 ‘이해받고 있다’는 감각인데, 이는 기술이 모방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다. 게다가 AI 상담에는 단순한 기술적 한계를 넘어선 안전과 윤리의 문제도 존재한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AI 상담이 잘못된 방식으로 작동해 심각한 결과로 이어진 사례들이 보도되었다.
2025년 3월, 노르웨이의 한 남성이 챗지피티가 자신을 살인범으로 허위 지목했다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존재하지도 않은 사건을 AI가 사실처럼 만들어낸 것이다. 이후 미국에서는 자살을 고민하던 10대 청소년이 챗지피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AI는 오히려 자살을 긍정하거나 위험한 조언을 해 논란이 됐다. 이 사건들은 AI가 인간의 생명과 명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며, 상담 영역에서의 규제와 윤리 기준 마련의 필요성을 드러냈다. 따라서 AI 상담의 확산은 단순히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무분별하게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AI는 인간 상담을 대체하는 수단이 아니라, 보조적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 예를 들어 간단한 심리 교육이나 상담 전 감정 정리에 활용된다면 상담의 효율성과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 반면 공감과 신뢰 형성, 심층적인 정서적 개입은 인간 상담자의 고유한 영역으로 AI와 인간은 서로의 강점을 인정하고 보완하는 협력적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

AI 상담의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AI는 효율을 높일 수 있지만,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회복을 돕는 것은 결국 인간 상담자의 역할이다. 인간 상담자는 기술의 확산에 위협을 느끼기보다, 자신의 고유한 역할을 더욱 선명히 해야 한다. 공감과 관계의 힘,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정서적 연결이야말로 상담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상담 환경에서 중요한 것은 AI의 활용 여부를 넘어, 인간 상담자의 존재 이유를 다시 성찰하고 기술을 어떻게 윤리적이고 안전하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일이다. 상담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어야 하며, 이는 AI 시대에도 변하지 않아야 할 상담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