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놀이’을 넘어 ‘문화’로, e스포츠 이야기]
- ‘놀이’을 넘어 ‘문화’로, e스포츠 이야기
- #1. e스포츠의 기원과 한국 e스포츠의 시작
‘놀이’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사람이 생계나 의무로서가 아니라 순전히 즐거움을 얻기 위해 일정한 도구나 물건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행하는 활동. 또는, 그렇게 활동할 수 있도록 일정한 규칙으로 짜인 일.’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무언가를 생산하거나 보상을 받는 행동은 아니지만, 놀이는 고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놀이’의 방식은 시대와 세대를 거쳐 많은 형태로 발전해왔으며, 그중에는 단순한 유희를 위한 ‘놀이’를 넘어 스포츠와 같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사회의 ‘문화’로 자리잡기도 한다. 축구와 야구 같이 공을 이용한 놀이에서 수많은 애호가들과 시청자들을 확보하면서 새로운 문화사업으로 발전한 구기종목들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처럼 ‘놀이’의 발전은 오늘날에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데, 20세기 후반으로부터 시작되어 21세기에 들어 우리나라에서 급진적인 성장세를 기록중이며, 단순한 어린이들의 오락을 넘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있는 분야가 바로 e스포츠이다.

21세기 들어 급진적인 성장세를 이루고 있는 e스포츠
1) e스포츠의 기원
e스포츠(Esports)는 전자 스포츠(Electronic sports)의 줄임말이며, 사이버 스포츠(Cyber sports)라고 불리기도 하며, 비디오 게임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스포츠를 가리킨다. 대한민국에서는 'E-Sports'로 주로 표기한다. 「이스포츠(전자스포츠) 진흥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호의 정의에 의하면 '게임물을 매개(媒介)로 하여 사람과 사람 간에 기록 또는 승부를 겨루는 경기 및 부대활동'으로 규정된다.
e스포츠는 일반적인 스포츠와 같은 육체적인 능력보다는 추상전략게임과 같은 정신적인 능력을 요하기 때문에 정신 스포츠(마인드 스포츠)로도 분류된다. 과거의 전자오락은 말 그대로 오락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으나, 1990년대 후반 이후로 게임산업이 급격히 발전하는 동시에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등장하면서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발달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e스포츠란 단어가 통용되기 시작한 것은 1999-2000년으로, 특히 2000년 사단법인 21세기프로게임협회(현 한국e스포츠협회) 창립 행사에서 문화관광부 장관이 축사를 통해 언급되면서 유명해졌다. 이는 당시 정부가 추진하던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였던 IT산업 육성의 수단으로 특히 비디오 게임이 인기가 좋은 편이었기 때문에, 이를 특별히 장려하자는 목적에서 e스포츠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e스포츠는 단어는 사실 실제로는 한국 밖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이른바 ‘콩글리시’에 가까운 용어였다. 형식이 필요하고 사전적인 의미를 중시해야하는 경우엔 e스포츠 자체를 정의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쓰였다. 말하자면 격식 있는 표현. 일반적으로는 '프로게이밍', '게임행사&대회' 등으로 대체 용어가 주로 사용됐으며, 프로게이머 라는 명칭도 일맥상통하여 '네임드', '프로플레이어' 등으로 인터넷 용어나 일반적인 스포츠의 용어 등이 혼용되었다.
e스포츠라는 개념의 창안에는 구세대가 갖고 있던, 게임 및 전자오락 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오락실이라고 하면 특히 질이 좋지 못한 청소년들이 학업 등을 포기하고 드나드는 불건전한 공간이라는 편견이 있었으며, PC방 역시 이보다는 나았지만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스포츠로 인정받아서 대한체육회의 정식 종목이 되면 정부의 지원 등 혜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스포츠로 편입시켰다는 견해도 있었다.
2) 한국 e스포츠의 시작
e스포츠의 본격적인 시작은 1997년 외환 위기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외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일환으로 정보산업의 육성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정보산업 발전의 일환으로 전국적으로 인터넷 네트워크 산업을 육성하였고, 이로인해 PC방이 새로운 놀이문화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1998년 무렵 PC방이 급속도로 전국에 퍼지기 시작하고, 기존에 놀이문화로 자리 잡고있던 당구장, 만화방은 물론 오락실까지 밀어내며 유망업종으로 성장했다. 한국경제는 1998년 당시 외환위기로 인해 신음하고 있었던 반면, 세계 게임시장에서는 기대작들이 출시되면서 급진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PC방에 해당 게임들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또한 가정에서도 당시 정부의 정책으로 국민PC로 대표되는 컴퓨터와 인터넷 보급이 대중화되어 집에서도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사람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 바로 한국 e스포츠 초창기 역사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스타크래프트’이다. 1998년 ‘블리자드’에서 제작한 RTS게임인 스타크래프트는 PC방의 빠른 보급과 뛰어난 게임성을 바탕으로 이른바 ‘열풍’을 불러왔다. 스타크래프트 발매 이전에도 ‘C&C 시리즈’, ‘워크래프트2’, ‘다크레인’과 같은 RTS 게임들,그리고 IFA 시리즈의 대회가 열리곤 했으나 규모나 시스템은 PC통신 동호회 멤버들끼리의 대전이나 대학 대항전 정도의 규모였다. 또한 격투게임 장르의 매니아들이 모여서 대회를 개최하거나 게임 유통사, 오락실 단위의 대회가 열리는 등 e스포츠 문화의 기초적인 부분이 보였고, 한국 격투게임 유저들이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등의 파란이 있었으나 이 역시 국내에서는 소규모에 불과했다.
한국에서의 스타크래프트 열풍은 당해 가을에 정식 발매된 이후로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며 함께 한국 최초의 ‘배틀넷’ 탑랭커 김도형, 프로게이머 신주영이 등장하였다. 신주영은 블리자드가 주최하던 당대 최고의 스타리그였던 ‘레더토너먼트’에서 우승하여 세계 챔피언으로 명성을 날렸고 이후 미국의 프로게임리그인 PGL에서 활동하면서 국내 최초의 프로게이머로 인정받았다. 이 PGL을 본떠서 국내에도 프로게임리그의 필요성이 부각되었고, 이로 인해 중소규모 스타크래프트 대회들을 통합하여 출범한 것이 국내 최초의 프로게임리그인 KPGL이었다. 또한 KPGL과 함께 협회의 전신이 되는 연합회가 출범하였으며, KPGL은 연합회가 공인한 최초의 프로게임리그이다. 같은 시기 PC방 체인업체와 IT 벤처기업들을 중심으로 프로게임단들도 창설되었다.
이 KPGL 1~2회를 연속 우승하면서 떠오른 인물이 신주영과 같은 SG길드 출신의 ‘쌈장’ 이기석이었고, 이기석은 신주영의 뒤를 이어 레더토너먼트 우승을 하면서 세계챔피언이 되었다. 이후 ‘코넷TV’ 광고에 출연하면서 국내 스타크래프트의 상징과 같은 이름으로 새겨지게 된다. 이 ‘코넷TV’ 광고는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공중파TV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사례로 알려져 있으며, 이로 인해 스타크래프트를 필두로 한 비디오 게임은 단순한 놀이에서 문화로 성장하게 되는 인식전환의 시작을 맞게 된다.

공중파에서 처음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등장했던 ‘코넷TV’ 광고
이와 동시에 케이블 방송사들의 비디오 게임 중계에 대한 관심이 e스포츠의 확산에 큰 역할을 맞게 된다. 케이블 방송사 ‘투니버스’는 당시 본격적인 종합게임리뷰 프로그램인 ‘게임플러스’를 편성하고 있었을 정도로 비디오 게임에 관련해서도 어느정도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이에 때마침 1998년 프랑스에서 열린 FIFA 월드컵으로 인해 이른바 축구 ‘붐’이 일고 있던 상황. ‘EA스포츠’에서 제작한 ‘FIFA 시리즈’를 가지고 시뮬레이션을 통한 승자예측을 하는 프로그램인 <예측! 사이버 월드컵>을 방영하였다. 이는 비디오 게임이 다른 사회적 이슈를 제외한, 게임 자체의 재미를 TV 프로그램의 콘텐츠로 다뤄지는 최초의 사례였다.
이러한 ‘스타크래프트’의 열풍과 국내 프로리그 및 e스포츠 창립의 필요성, 비디오 게임 중계에 가능성을 본 케이블 통신사들과의 이해관계가 결합해 ‘온게임넷’이라는 새로운 방송사가 생겨났으며. 이에 게임TV, MBC GAME 등의 회사가 이어 설립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각종 대회들이 주최가 되는 등 e스포츠의 토대가 되는 콘텐츠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여기서 등장한 것이 이른바 ‘테란의 황제’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임요환.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이야기할 때에 가장 먼저 언급되는 선수 중 한 명인 임요환은 이기석 다음으로 e스포츠의 아이콘이 되었으며, 그 영향과 인기만큼은 그 이상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임요환의 등장으로 e스포츠가 급진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부분은 프로팀 창단, 그리고 기업의 스폰싱이었다. 임요환 선수의 특유의 화려한 쇼맨십을 보여주는 경기력, 이를 바탕으로 여러 대회를 평정하여 e스포츠의 인기가 더욱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이를 통해 동양 오리온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기업이 후원하는 프로팀들의 창단이 시작된다. 또한 임요환의 등장을 필두로 홍진호, 박정석, 이윤열 등 걸출한 e스포츠의 아이콘이 탄생하였으며, 각각의 선수들이 가지는 플레이스타일과 성향, 스토리 등이 결합하여 ‘스타크래프트’의 리그는 단순한 게임 중계와 승패 뿐만이 아닌 다양한 요소가 결합된 하나의 문화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現 Sktelecom T1 컨텐츠 크리에이터, ‘테란의 황제’ 임요환
이로 인해 스타크래프트를 필두로 한 e스포츠의 인기는 황금기를 누리게 되었다. 1999년 ‘한국e스포츠협회’가 창설되었고, 2000년 IT버블의 붕괴 사태로 잠깐 위기를 맞긴 했으나 2001년 WCG 대회의 주최를 시작으로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의 탄생, 비디오 게임을 통해 수익을 얻는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됨으로써 e스포츠의 판은 급격하게 확대가 되기 시작했다. 프로게임단들도 점차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면서 감독과 코치 직군 역시 생겨났다. 종목도 ‘스타크래프트’에서 벗어나 ‘워크래프트3’, ‘카운터 스트라이크’ 등 다양한 종목이 추가되었고 2005년 총상금 50억원 278개의 대회가 열리면서 e스포츠는 스포츠의 한 종목으로 인식받게 되는 듯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