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지구상에 생존하면서부터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먹고 사는 문제, 즉 생존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의.식.주라고 한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먹는 것, 즉 식량이라고 볼 수 있다. 최초 인류는 먹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수렵과 채취를 선택했다. 이 기간동안 인류는 사냥감이 되는 멧돼지, 사슴과 같은 초식동물들을 따라 이동해야 했으므로 정착생활을 할 수 없었고, 같이 동행하는 무리도 혈연으로 구성된 소규모의 씨족집단이었다. 그러다가 농사를 시작하면서 인간은 정착생활을 시작했다. 왜냐하면 농작물은 식물이라 움직일 수 없고, 재배기간 중 농작물을 돌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농작물 재배에는 다수의 노동력과 협동이 필요했고, 다른 부족이나 집단으로부터 농작물 약탈에 대비해야 했으므로 인류는 부족이나 고대국가 체제를 형성했다. 부족이나 고대국가는 다른 부족이나 이웃 국가들로부터의 농작물 약탈을 방지해 구성원들의 생명을 보호함과 동시에 내부의 치안 질서를 확립해야 했다. 현대 국가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국방과 치안이라는 점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국방과 치안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조직이 필요했고, 이들 조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생계를 위해 농작물 재배와 같은 일을 하는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일정량의 수확물을 강제로 징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정량의 수확물을 현대에서는 조세라고 한다.
인간의 1차적 욕구는 상기에서 말한 생존이며, 이 욕구가 충족되면 안전, 명예 등 상위 차원의 욕망을 추구한다. 이러한 인간의 욕망은 어느 한도에서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팽창하는 속성이 있다. 물론 여기에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있으나 대부분은 여기에 동의하리라 본다.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대표적 수단이 ‘부(富)’와 ‘권력’이다. 권력의 경우를 보자. 기초자치단체 의원이 된 사람들은 광역자치단체 의원, 나아가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싶을 것이다. 국회의원이 되면 국회의장이나 당대표를 원하고, 궁극적으로는 권력의 최정점인 대통령을 노릴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헌법에 대통령 임기가 제한되어 있고 연임도 불가능하므로 개인의 욕망이 여기에서 그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과거 왕조국가에서는 임금 자리를 자기의 후손에게 승계시켰고, 북한의 경우 세습 독재체제를 유지하는 것만 보아도 인간의 욕망은 무한한 것을 알 수 있다. ‘富’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판단된다.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수단을 경제학에서는 재화와 용역이라 하며, 이들을 자원이라 한다. 앞에서 서술한대로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지만 그 욕망을 충족시키는 자원은 유한하다는 것을 ‘희소성의 법칙’이라 한다. 희소한 자원을 사람들에게 배분하는 제도를 ‘경제체제‘라 한다. 경제체제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흔히 자본주의체제라고 말하는 시장경제체제와 공산주의 경제체제가 있다. 첫째, 시장경제체제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富와 권력을 가지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러다 보니 이 체제의 단점인 소득의 불균형과 ’물질 만능주의‘ 등이 초기 자본주의체제에서 드러났다. 산업혁명 이후 19세기 영국에서는 노동자의 노동시간이 살인적일 만큼 길었고, 미성년자까지 광산에 투입하는 등 노동의 착취가 극심하였으며, 소득의 대부분은 소수 자본가들에게 집중되었다. 이런 현상으로 사회적 불만이 고조되자 20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즈(J. M. Keynes)에 의해 ’수정 자본주의‘가 대두되었다. 이는 국가의 목적으로 국방과 치안외에 시회복지를 추가하는 것이었다. 시회복지란 富를 독점하는 소수 자본기들에게 조세를 징수해 사회적 약자들에게 재분배하여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것이다. 사회복지정책으로 불완전하나 어느 정도 사회적 불만을 감소시키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둘째, 공산주의 경제체제는 초기 자본주의 체제의 단점을 부각시키면서 독일의 경제학자 마르크스(K. Marx)가 제기하였다. 이 체제는 인간의 본능을 부정하면서 모든 사람이 다 같이 잘살고 잘 먹는 이상적인 사회건설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우리들이 각종 경제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소득의 100%를 국가가 조세로 회수하고 이를 재원으로 사람들에게 적절히 배분하면 다 같이 풍요로운 사회가 구축된다는 보는 것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의문점들이 있다. 자기 소득의 100%를 국가가 회수하면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富와 권력을 가지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 같이 잘살고 잘 먹는 이상적인 사회건설이 현실세계에서 가능하냐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되고 싶어하는 대통령과 같은 높은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우리가 창출하는 부가가치로 구성원 전부가 풍요로운 경제생활을 누리기는 힘들다. 이는 ’희소성의 법칙‘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아마 모두가 풍로운 경제생활을 누리는 세계는 성경이나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천당과 극락에서나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자원배분을 담당하는 소수의 엘리트 계층이 과연 그렇게 양심적이고 공평무사한 사람들일까 하는 의문점이 있다. 오늘날 공산주의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들에서 뇌물이 성행하고 자원배분의 권한을 가진 소수가 막대한 富와 권력을 가진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르크스도 사회 구성원들이 소수인 씨족사회에서 자급자족과 상호 간 평등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아 이를 ’원시 공산경제‘로 부를 정도였다. 그러나 이 조차도 오늘날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형제들 간에 서로 더 많은 재산을 차지하겠다고 벌이는 법정소송을 볼 때 가능성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르크스는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체제들 중 경제체제를 가장 하위구조로 삼아 상부에 정치체제, 사회체체 등이 구축된다고 보았다. 이는 경제체체가 사회나 국가의 근간이 되며 이 체체가 정치체제 등 다른 체제들의 바탕이 된다는 생각이다. 시장경제체제는 인간의 본능을 인정하고 자원배분에 있어 다수가 참여하므로 정치체제로 민주주의제도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권력의 최정점인 대통령 자리는 누구나 차지하고 싶은 자리이므로 이를 선거를 통해 선출한다. 그리고 본인 뿐만아니라 후손들에게 이 자리를 물려주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기 위해 임기제를 두고 있다. 반면 공산주의체제는 자원배분에 소수만 참여하므로 정치체제로 독재체제가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자원배분에 참여하는 소수가 인간의 욕망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동경에서 공부한 소수 엘리트 계층의 사람들이 막 전파된 공산주의 사상에 매료되어 이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은 조선시대 양반계층의 후손들로 일제 강점기때도 막대한 토지를 보유한 지주계층이었다. 아마 이들 중 일부는 자기 집안의 노비나 소작인들의 비참한 생활을 보고 인간적인 연민을 느껴 공산주의 사상을 추종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들의 생각 저 깊은 곳에서는 인간의 가진 욕망 중 하나인 ’명예욕‘이 있다고 보인다. 명예도 결국 인간의 욕망 중 하나이다.
예수, 석가모니와 같은 초월적인 존재가 아닌 인간은 조물주가 부여한 원초적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먹어야만 생존을 유지할 수 있고, 살아가는 동안 다른 사람보다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안락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길 원한다. 이런 욕망을 속물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그들 역시 명예라는 또 다른 형태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우리는 국가나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다른 사람들의 행복이나 재산을 침해하면서까지 본인의 안락한 삶을 추구해서는 곤란하다. 무한한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도 관심을 기울이길 바란다. 생전에 부모님께서 조금 손해보면서 사는 것이 더 행복하며, 돈을 떼먹은 사람보다 떼인 사람이 장기적으로 더 마음이 편하다는 말씀을 자주하셨다. 이제 인생의 후반에서 이 말씀을 생각하니 참으로 명언이었다고 생각된다. 본인의 안락과 행복이 중요하나 어렵지만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관심을 기울여 주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