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네 식탁,
- 식문화 역사 탐방
- #7.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대중음식, 만두 이야기
우리네 식탁에 어렵지 않게 자주 볼 수 있는 음식 중에 하나는 바로 만두라고 볼 수있다. 호불호 없는 맛으로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으며, 국물요리에 함께 나오거나 중국요리를 먹을 때도 쉽게 접할 수 있고, 냉동식품으로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음식 중에 하나가 바로 만두일 것이다. 흔히 중국에서 넘어온 것으로 알려진 만두는 비단 중국뿐만이 아닌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형태의 음식으로 많이 보인다. 밀과 같은 곡식으로 만든 파에 소를 만들어 찌거나 구워 먹는 만두와 유사한 요리는 전 세계적으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며 각 나라별로 다양한 요리법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만두는 언제, 어떤 경로를 통해 우리네 식탁에 오르기 시작했던 것일까?
만두의 기원으로 대중적으로 제일 많이 알려진 것은 중국 기원설이나, 이는 정설이라 보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문헌에 명확히 만두, 혹은 만두와 비슷한 음식이 등장한 것 자체가 A.D 200년대라 하며, 중국에 제분기술 자체도 기원후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비슷한 밀가루 식품인 국수가 한국에서는 삼국 시대나 남북국 시대에 전래되어 먹었다고 추측되며 비슷하거나 조금 이른 시기에 전파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중국에서 한반도로 만두라는 형태의 음식이 들어온 것이라 볼 수 있으나, 만두라는 요리 자체가 중국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만두 기원설은 제갈량의 일화에서 나온다. 나관중(羅貫中)이 쓴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보면 다음과 같은 고사(故事)가 실려있다.
삼국시대 촉(蜀)나라의 승상 제갈공명(諸葛孔明)이 남만(南蠻·지금의 미얀마 부근)을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여수(濾水)의 풍랑이 심하여 건널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부하 하나가 남만의 풍속에 따라 사람 목을 베어 머리를 수신(水神)에게 바칠 것을 권했다. 공명은 적지일지라도 더 이상 사람의 목숨을 해칠 수는 없다며 밀가루 반죽에 양과 돼지고기를 넣어 사람의 머리처럼 빚어서 바쳤다.
이 고사로 인해 만두가 남만인의 머리를 뜻하는 ‘만두(蠻頭)’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퍼져있으나, 일부 전문가들은 고사 자체가 정사(正史)에는 나오지 않는 허구(虛構)라서 역사적 근거로 삼기에는 매우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이전인 후한(後漢) 시대에 최식(崔寔)이 지은 《사민월령(四民月令)》에 이미 만두라 할 만한 음식이 등장한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만두의 또 다른 중국 기원설로 장중경 기원설이 있다. 장중경(張仲景)은 후한(23~200년) 말기의 사람으로, 어렸을 때 전국시대의 명의 편작의 이야기를 듣고 의술에 뜻을 품어 의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의술을 배웠다. 후에 효행과 품행이 뛰어난 사람을 추천하는 효렴(孝廉)제도를 통해 하남성 장사 태수로 근무하였다. 태수 일을 하며 의술로 많은 사람을 도왔으며, 황건적의 난, 역병 등에 시달려 권력보다는 백성에게 도움이 될 정책을 펼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서기 220년, 노령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가던 장중경은 추운 겨울 날씨에 전란으로 인해 집을 잃고 거적때기만 입은 난민들이 영양부족으로 황달에 걸리고 동상으로 귀가 얼어붙은 모습을 보게 된다. 이에 장중경은 음식으로 영양도 보충하며 동상도 해결할 수 있는 처방을 연구하게 된다.
[취한자오얼탕]
이것이 취한자오얼탕(祛寒嬌耳湯, 거한교이탕)으로, 한자를 해석하면 '추위를 떨치고 귀를 아름답게 만드는 탕'이다. 장중경은 마을 광장에 천막을 치고 가마솥에 양고기, 약재, 고추 등을 넣고 탕을 끓였으며, 삶은 양고기로 만든 소를 밀가루 피에 싸서 탕에 넣고 끓였다. 그렇게 만든 음식은 귀 모양을 닮았으며 얼어있는 귀를 아름답게 만든다고 하여 자오얼(嬌耳, 교이)이라 불렀다. 장중경은 이렇게 끓인 음식을 탕 한 공기에 자오얼 두 개씩을 넣어 모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먹였다. 탕을 먹은 사람들은 온 몸이 따뜻해지고 귀에도 열이 올랐으며, 두 번 다시 귀에 동상이 걸리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통상 만두로 불리는 교자, "자오쯔(餃子)"의 유래이다.
제갈량의 만터우는 225년, 장중경의 자오쯔는 220년이다. 어느 쪽이든 제대로 기록된 중국의 만두 역사는 후한 말에 불과하다. 중국 사서에 '만두'라는 단어가 등장한 시기를 근거로 제분술도 삼국시대 끝 무렵에 들어온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그렇다면 후한 말 이전에 중국에서 먹던 만두의 기원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이는 우선 만두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만두피를 이루는 재료, 즉 밀의 기원부터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밀을 가장 먼저 재배했던 지역은 기원전 90세기 무렵 아나톨리아 반도이며, 기원전 30세기 무렵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대량 재배한 것으로 추정된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은 밀가루를 물과 반죽한 뒤 뜨거운 돌 위에 넓게 펴서 '닌다'라는 이름의 빵을 만들어 먹었다. 이후 메소포타미아의 요리책에서 '푀겔헨'이라는 요리가 발견되는데, 이는 닌다 위에 다진 고기를 얹고, 다시 닌다를 얹은 후 익혀 먹는 음식이다. 현재 만두와 크게 다르지 않은 조리법이다.
기원전 550년에 메소포타미아 문명 자리에 번성했던 페르시아 제국은 사각형으로 만든 무발효 밀반죽 위에 다진 고기와 양념을 속을 채워 먹는 요리인 '요시파라'라는 요리를 먹었다. 이 요시파라는 중앙아시아 지역에 퍼져 다양한 만두 조리법의 어원이 된다. 당시 페르시아는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의 한나라와 교역하고 있었고, 실크로드를 따라 만두가 중국으로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물이 부족한 중앙아시아, 중동 지역에서는 화덕에 굽거나 튀기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중국인들은 이 음식을 '이민족의 밀가루 음식'이란 뜻의 후빙(胡餠) 이라고 불렀다. 이 후빙은 시간이 지나며 중원의 음식으로 정착, 중국 문화와 융합을 이루어 현재의 지엔빙(煎餠, 전병), 웨빙(月餠, 월병)이 되었다. 후빙은 중앙아시아의 굽는 방식에서 벗어서 물이 풍부한 중국 문화권의 삶고 찌는 조리법과 결합하게 된다. 찌는 방식은 만터우(饅頭)며, 삶는 방식은 탕빙(湯餠)이라 하였으나, 탕빙은 수제비, 만둣국 등 다양하게 추정될 뿐 정확한 조리법이 밝혀지지 않았다.
이러한 문헌들의 기록을 종합해 보았을 때, 결론적으로 만두의 전래는 초기 만두의 형태가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페르시아 시절 실크로드를 타고 중국에 유입, 중국에서 우리가 흔히 아는 만두로 변형되고, 이후 중원을 정복한 몽골 제국이 중앙아시아 및 동유럽으로 다시 전파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다만 중국 내에서는 본래는 민간에서 먹던 음식으로 알음알음 퍼져나가다가 후한 말에 폭발적으로 유행을 타기 시작한 걸로 추측된다.
한반도에서 만두라는 음식이 처음 등장한 것은 1670년대 가장 오래된 한글 음식 서적인 《음식디미방》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메밀가루로 풀을 쑤어서 반죽하고 삶은 무와 다진 꿩고기를 볶아서 소를 넣고 빚어 새옹에 삶아 내었다고 한다. 1800년대의 《주찬(酒饌)》에는 소 내장인 양과 처녑 그리고 숭어 살을 얇게 저며 소를 넣은 만두가 나온다. 한국에서 만두란 말이 처음 기록된 것은 《영접도감의궤》에 나오는데, 명나라에서 온 사신을 대접하기 위하여 특별히 만들었다고 하며, 그 후에는 궁중의 잔치에도 종종 차렸다고 한다. 조선의 조리서인 《규합총서》를 보면, 만두피는 술을 넣고 발효하여 부풀린 반죽을 쓰고 있다.
[한반도에서 만두의 존재가 처음 기록된 서적, 음식디미방]
한반도에서 원래 만두로 가장 유명했던 지역은 북한의 개성으로 이미 고려시대부터 쌍화점 같은 만두 가게가 성행했던 곳이다. 겨울이 되면 만두를 빚어 곳간에 걸어놓은 채반에 저장해 두고 먹었다고 한다. 개성은 서울과 불과 차로 1시간 거리 밖에 안되는 비교적 가까운 지역이지만, 개성에서는 설날에 만두를 먹었고, 서울에서는 떡국을 먹었다. 이렇게 황해도를 비롯한 현재 북한 지방에서는 만두가 명절 음식 취급을 받는다. 즉 남부는 떡국, 북부는 만둣국으로 명절 음식이 갈리는 것. 이를 뒷받침하듯 서울·경기를 비롯한 중부지방에서는 둘의 절충형인 떡만두국을 해먹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사실 개성 만두는 다른 경기도 만두와 맛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지는 않지만, 현재는 개성만두를 포함해 경기도식 만두가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 없어 진짜 개성 만두를 맛보긴 쉽지 않다.
편수라고 하는 개성식 만두도 있는데, 중국식 바오쯔에 가장 근접한 형태의 만두다. 보통은 애호박이나 오이를 물기를 최대한 짜낸 후 살짝 볶아 식힌 후, 다른 물기 없이 볶은 고기나 재료와 함께 만두피에 싸서 쪄먹는다. 특이하게 호박선이라고 하는 개성식 유사 만두도 있다. 애호박을 먹기 좋은 형태로 잘라 그 단면을 열십자로 가른 다음 돼지고기나 쇠고기로 채우고 찐 다음 진간장으로 간을 해서 숟가락으로 떠먹는 방식으로, 만두피 대신 호박에 소를 넣어 만든 만두라고 볼 수 있다.
[개성 지방의 향토음식으로 자리잡은 만두, 편수]
경상도나 전라도 같은 남부 지방에서는 배추김치를 씻지 않고 넣어 속을 빚고, 서울을 포함한 중부와 북부지방은 고춧가루의 텁텁함을 없애기 위해 김치를 씻어서 넣는다. 두부와 고기의 배합 비율도 중요한데, 두부를 너무 많이 넣으면 퍽퍽해진다.
평안도나 황해도 등 한국 북부 지방에서는 예로부터 설날 때 만두를 빚는 풍습이 있었는데, 남쪽으로 풍습이 퍼져서 남북분단 뒤의 남한에서도 설날에 만두를 빚는 풍습이 있다. 주된 원인은 남북이 분단되고 6.25 전쟁 이후 1.4 후퇴로 북부 지방 사람들이 피난을 위해서 월남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온난한 남부 지방에서는 이런 만두를 빚는 풍습이 적었다. 현대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냉장 기술이 부족한 과거에는 봄이나 여름에 속재료인 숙주나물, 두부나 돼지고기가 쉽게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20세기 전까지만 해도 한반도는 제분 기술이 부족하여 밀가루 자체가 고급 식재료여서 중남부 지방은 메밀만두를 주로 소비했다. 즉 현재 남쪽 지방에서 먹는 만두는 실향민의 음식에서 온 것이지, 원래 흔히 먹던 것은 아니다. 또한 메밀뿐만 아니라 다른 재료도 이용했는데 밀가루를 최대한 적게 쓰려고 만두소를 밀가루에 굴려서 만드는 굴림만두, 배추, 상추와 같은 커다란 채소를 만두피로 사용하는 숭채만두 등이 있었고 쌀가루 같은 여러 곡물가루들을 사용하기도 했다.
현대에 들어서는 전통적인 만두 외에 중국식 만두와 현대에 들어 탄생한 여러 가지 만두도 나오고 있다. 중국집에서 중국식 자오쯔의 영향을 받은 군만두와 물만두가 보편적으로 팔리고 있으며, 일부 식당에서는 짜장면과 볶음밥 등 대신 만두 종류만 파는 곳도 있다. 길거리 음식으로도 1000~2000원 가량의 고기만두와 김치만두 등 여러 가지 만두를 맛볼 수 있다. 냉동식품으로도 여러 가지 만두가 팔리고 있는데, 최근 거의 대부분의 요식업계에서는 직접 빚는 만두보단 이 냉동식품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만두는 문명의 시작과 함께하며 전 세계적으로 뻗어나간 범지국적인 음식이라고 볼 수 있으며. 비록 만드는 방식과 모습은 바뀌어도 우리네 식탁에도 든든한 한 끼를 책임지는 음식으로 항상 함께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