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가적으로 중요한 선거가 치루어졌다. 4년 동안 각 지역의 국민을 대표하여 선출된 국회의원을 국민선거를 통해 뽑았다. 사람들은 각기 지지한 정당의 후보들이 전국적으로 얼마나 선출되었는지에 따라 각자의 입장에서 다양한 의견을 얘기하며 어떤 이는 희망을, 어떤 이는 걱정된 마음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 있다. 사람들은 왜 의견이 다른 상대방 사람들을 우려의 시각으로 볼까? 그리고 그들은 왜 서로 설득되지 않음에 답답해 할까?
우선, 우리의 지각은 객관적이지 않다. 인간은 다섯 가지 감각을 통해 정보를 받아들인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및 촉각을 통해 외부 정보를 물리적 차원에서 받아들인다. 그런 다음에 인체의 각 기관을 거치면서 물리적 정보가 전기적 정보로 바뀌면서 우리의 뇌가 그것을 인식하는 지각과정을 거치게 된다. 바로 이 지각의 과정에서 사람마다 다르게 정보를 해석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지각은 우리의 뇌가 세상에 대한 표상을 창출하기 위해 감각 정보를 통합하고 조직하여 해석하는 과정인데, 우리 뇌는 표적 물체를 고려할 때 주변에 있는 물체와의 관계까지 고려하며, 동일한 자극에 대한 지각 경험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해석을 제각각 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의식하는 세상의 지각은 자신만의 착각일 수 있다.
프로이트(S.Freud)는 꿈 분석을 통한 정신분석치료를 설명하면서 우리는 자신의 꿈도 의식에서는 그 내용을 조작하여 감춘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여러분도 아침에 꿈을 꾸다가 깨어날 때, 아주 부정적인 내용의 꿈(누군가에게 쫒기거나, 누군가와 싸우거나 등등)을 꾸다가 의식이 돌아오면서 꿈의 내용을 긍정적인 내용(내가 이기거나. 어떤 일을 잘 마무리하거나 등)으로 급하게 바꾸는 것을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법정 진술의 경우에도 판사는 유도 질문을 하지 말라고 검사와 변호사에게 말한다. 증인은 법원에서 진술하는 과정에서 정확하지 않은 기억으로 유도 심문에 의해 자신의 뱉은 말로 입장을 오히려 번복하는 경우도 있다. 기억은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속 예상이나 선입견에 지각 경험이 따라 달라지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각자가 속한 집단과 개인적 경험에 따라 많은 편견 속에 살고 있다. 집단은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집합체이다. 우리는 모두 가족과 팀으로부터 종교, 지역사회 및 국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집단의 한 구성원이다. 이 모든 집단은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집단의 구성원들은 서로를 잘 봐주는 사람들일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집단의 구성원들과 같이하는 가치관이 생긴다. 편견은 오로지 소속 집단에 근거하여 어떤 사람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긍정적 또는 부정적인 평가이다. 편견은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지만, 사실 부정적 평가와 긍정적 평가를 모두 의미하는 용어이기도 한다.
심리학 연구를 따르면(Brewer, 1999), 다른 집단의 사람들에 대해 항상 부정적인 편견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집단의 사람에 대해서는 거의 대부분 긍정적인 편견을 갖는다고 한다.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이 같은 학교(초, 중, 고, 대 등) 출신이거나, 같은 동네 사람이거나, 같은 종교, 같은 지역사람, 같은 취미 등등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을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집단은 서로 간의 협력을 통해 이익을 얻고 다른 결과와 비용을 함께 부담한다. 이런 위험성을 나누는 의미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결과적인 면에서 우수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기도 한다. 집단이 공통의 지식을 나누는 거 같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중요한 정보는 소수만 알게 된다. 그래서 개인들은 찬성에 표만 던지고 실질적인 이득은 없는 경우도 더러 있다. 우리는 집단 속에 있을 때 다소 중립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결국은 인화단결을 유지하기 위해 집단의 동의하는 생각으로 자신의 생각을 맞추는 집단사고가 일어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점점 극단적으로 집단의 공통된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아 정체 망각이 일어난다. 자아 정체 망각은 사람이 집단 속에 파 뭍힐 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망각하게 되는 현상이다. 그래서 현명한 노인들은 생의 말미에 ‘아 그때 내가 너무 나의 입장만을 고수했어. 지나고 보니 큰 차이 없는데’라고 많이들 얘기한다.
우리가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따로 또 같이’라는 말이 가장 적절한 거 같다. 기본적으로 독립적인 인격체로 살되, 필요시 협력을 하는 것이다. 연말이 되면 한해를 돌아보며 대인관계 속에 갈등을 일으켰던 사람들에게 진실한 위로, 사과 그리고 배려의 말을 전하듯이, 새해가 되면 우리는 ‘이렇게 저렇게 살리라’ 다짐을 한다. 이것이 좀더 짧은 주기로 삶 속에 함께 한다면 불가에서 말하는 ‘늘 깨어있음’이 될 것이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불안이 있다. 과거, 현재 및 미래에 대한 불안이 늘 있다. 이러한 불안 속에 발전도 있고 마음의 어려움도 겪는다. 우리는 나이가 들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마음속의 불안을 조금씩 내려 놓는 연습을 하는 것이 편견과 갈등없이 살아가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내가 지각하는 경험이 항상 옳지는 않다는 것을 늘 마음에 새기며 살면 좋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