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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야식의 꽃’, ‘서민들의 친구’ 족발 이야기

    #3. ‘야식의 꽃’, ‘서민들의 친구’ 족발 이야기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물가의 상승을 체험할 수 있는 분야는 당연히 식자재 분야일 것이다. 최근 국내외 여러 가지 요인들로 인해 식자재 물가는 지속적으로 상승세에 있다. 매스컴에서는 이러한 식자재 물가의 상승을 서민들이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음식들을 예시로 들어 보도하는데, 그중에서도 삼겹살과 자장면, 냉면과 설렁탕 등을 주로 예시로 든다. 또한 배달음식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부분을 감안하여 배달음식도 주로 비교군에 올리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최근에는 주로 다루어지는 배달음식에는 치킨이 주로 예시로 등장하는 편이다.

     하지만 배달음식의 물가상승을 이야기할 때 치킨보다 먼저 논해졌던 음식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족발이다. 시곗바늘을 잠시 과거로 돌려보면 항상 서민음식의 물가상승을 논할 때 빠지지 않던 것이 바로 족발이었다. 지속적인 물가의 상승으로 인해 족발은 이제 서민음식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을 정도로 비싼 가격대를 이루었고, 매스컴과 시민들은 이를 아쉬워하는 의견을 주로 내었다. 그만큼 족발은 우리네 일상 속에서 ‘야식의 꽃’이라고 불릴 정도로 어렵지 않게, 전국에 2만개에 근접한 매장이 집계될 정도로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다. 그렇다면 족발은 어떻게 우리네 식탁에 오르기 시작했으며, 서민음식으로서 소시민들 사이에 즐겨찾는 음식이 되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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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식의 꽃’이라 불리며 오랜 시간 우리네 식탁에 오른 족발>

     족발은 신체 부위를 가리키는 말인 ‘발’과 발을 뜻하는 한자인 족(足)을 합하여 만들어진 합성어이며, 돼지 족의 털을 제거한 후 파, 마늘, 생강, 청주, 물 등의 재료를 넣고 삶아 간장, 설탕, 물을 넣어 조린 음식이다. 조리법과 식감, 맛 등이 중국의 장육과 흡사한 면을 보여 중국의 장육 조리법에서 유래했을 거라는 설이 유력하다. 실제로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족발은 중국음식 특유의 팔각향이 나는 족발이 흔했을 정도이다. 또한 족발의 색상은 검은색이 진한 중국 전통 간장 노두유의 색과 흡사한 편이다. 또한 족발이 이북에서 유래한 점을 생각해 중국과 지리적 환경으로 교류가 잦았던 이북 쪽에서 중국요리가 유입되어 장육과 비슷한 조리법을 채용했고, 6.25전쟁 후 남한으로 내려온 피난민들에 의해 음식점의 장사메뉴로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족발은 돼지 족을 사용한 음식이며, 우리나라에서 돼지 족을 이용한 음식은 문헌에서도 지속적으로 기록으로 전승되었다. 『시의전서』에서는 족을 삶아 뼈를 추리고 양념하여 굽는 ‘족구이’, 『이조궁정요리통고』의 우족과 생치를 한데 넣어 고아서 만든 족편 종류인 ‘용봉족장’, 『진연의궤』의 쇠족 사태육, 양지 등을 고아서 녹으면 고명을 넣고 식혀서 응고시켜 묵처럼 썰어내는 ‘족병’ 등이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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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의전서의 필사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의 ‘우두병·우족교·연육’은 족편의 동의어로, 쇠족과 생치나 닭을 사용하였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과 『조선요리제법』에는 쇠족을 잘게 썰어 푹 곤 국물에 밀가루를 풀고 무를 썰어 넣어 죽처럼 끓인 ‘주저탕’이 있으며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의 ‘장족편’은 족편과 조금 달리 쇠족과 꿩을 넣어 익히는데 “건지가 있게 되직하게 만들어 진간장을 짭짤하게 사용해야 빛이 검고 맛이 좋다.”라고 하여 익히는 정도에 따라 현재의 족발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돼지 족으로 한 음식으로는 물을 넣어 푹 곤 후 그대로 먹거나 국물용으로 만드는 제주도 향토음식인 돼지 족탕이 있다. 제주도 지역에서는 새끼 돼지의 족을 아강발이라고 한다. 돼지 족을 생강·마늘을 넣고 오래 삶아내어 간장·설탕·참기름·후춧가루로 양념하여 바짝 끓인 ‘돼지 족찜’, 돼지 족을 물을 넣고 끓여 삶아낸 뒤 생강·갱엿·소금·진간장을 넣고 조린 황해도 지역의 ‘강엿돼지 족’, 이와 유사하게 돼지 족을 물과 갱엿·간장·소금에 넣어 조려서 뼈를 발라내고 얇게 저며 내 새우젓국을 곁들여 먹는 ‘돼지 족조림’이 있다. 검붉은 엿인 갱엿이 돼지고기 냄새도 없애주고 단맛과 윤기를 더해 주는 장점이 있다. 북한에서는 돼지 족을 푹 끓여서 간장·설탕·파·마늘·술·후춧가루에 재웠다가 찜통에 찐 ‘돼지발쪽찜’, 돼지 족을 푹 끓여 내어 참기름을 바르고 통깨를 뿌려 초간장과 곁들여 먹는 ‘발쪽(돈족)백숙’이 있다. 돼지 족은 예부터 산모의 젖을 많이 나오게 하는 민간요법으로 사용하였다. 통초(으름덩굴), 천궁, 천산갑, 포황, 감초 등과 함께 달인 통유탕은 산모의 젖이 많이 나오게 하는 처방으로 『동의보감』에도 기록되어 있다.

     여담으로 돼지 족을 활용한 음식은 세계적으로도 각 나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중들 사이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중에 하나인 독일의 슈바인스학세 뿐만 아니라 돼지 족을 햄으로 염지한 후 조리하는 아이스바인이라는 음식도 있으며, 일본 오키나와의 테비치소바, 오스트리아의 슈텔체, 체코의 꼴레뇨, 태국의 카오카무, 아일랜드의 크루빈스 같은 음식들이 돼지 족을 활용한 음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듯 돼지 족을 활용한 요리들은 전세계적으로도 흔히 접할 수 있는 식재료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전승되어 오던 돼지 족 요리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족발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시기는 앞서도 언급했던 6.25전쟁 이후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흔히 국내에서 족발의 원조를 논할 때 언급되는 지역이 바로 장충동이고, 이곳은 1950년대 6.25전쟁 당시 이북에서 피난민들이 정착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피난민들은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살다가 남기고 간 적산가옥들에서 정착해 이북 음식점들을 세웠으며, 주로 평안도와 황해도 지방에서 결혼식, 명절 등의 중요한 날에 먹는 대표 음식이었던 돼지 족요리를 팔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흔히 부르는 ‘족발’의 기원이 되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초창기 족발은 중국식 요리의 영향으로 팔각향이 강하게 나는 것이 특징이었으나 조리과정을 간소화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아는 맛으로 변화되었다. 식자재는 갱엿, 생강, 돼지 족으로 동일하나, 장국과 돼지 족을 따로 조리하던 기존의 방식에서 장국에 돼지 족을 넣고 졸이는 방식으로 변화하였다.

      이처럼 장충동을 중심으로 팔리기 시작한 족발이 어떻게 전국민에게 사랑받는 서민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던 것일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함께 작용한 덕택이라고 볼 수 있다. 첫째로 장충동 족발 골목이 성행하는 데에는 축산시장의 성장이 영향을 미쳤다. 1960년대 국내의 양돈산업이 발달하면서 마장동의 축산시장 역시 성장세에 돌입하였다. 이는 돼지 목살, 삼겹살 등의 중요부위 외에도 족발, 곱창 같은 부산물을 구하기도 수월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였다. 또한 장충동의 족발 골목과 마장동의 축산물 시장은 자전거로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장충동의 족발집들은 멀지 않은 마장동에서 신선한 족발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둘째는 바로 1963년에 개관한 장충체육관이 있다.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체육시설이었던 장충체육관은 프로레슬링, 권투, 농구 등의 큰 규모의 스포츠행사가 열리는 곳이었다. 당시의 언론 보도 내용을 보면 주요 행사가 열릴 때마다 체육관 최대 수용 인원이었던 8000석이 꽉 찼다는 문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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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충제육관 전경>

     장충체육관 출입문에서 장충동 족발 골목 초입까지는 도보로 약 3분 정도의 짧은 거리였으며, 체육관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족발 골목으로 걸음을 옮길 수 있을 정도의 짧은 거리였다. 이를 통해 장충체육관 주변의 상권들은 수많은 유동인구를 수용하게 되었으며 장충동 족발 거리는 경기의 관람을 마친 시민들의 허기를 달래기에 매우 적절한 환경이었다고 볼 수 있다. 덕분에 장충동 족발 거리는 서울시의 주요 상권 중 하나로 자리를 잡고, 족발의 인기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비록 잠실체육관 신설로 인한 장충체육관의 인기 하락과 함께 족발 거리 자체의 상권은 많이 하락세를 탔지만, 족발은 이미 장충동을 넘어 전국으로 퍼져나가 서민들이 즐겨찾는 국민 배달음식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잠실체육관이 장충동 족발 골목을 위협한 원인이라면, 서론에서 언급했던 식자재 물가의 인상은 국민 배달음식으로 자리잡은 족발의 입지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2011년 구제역 파동으로 인해 양돈의 수와 관리비용의 상승이 치명적으로 작용하기도 하였으며, 지속적 물가 인상으로 어느덧 족발을 서민 음식으로 부르는 목소리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족발 대신 서민들의 배달음식으로 자리잡았던 치킨마저 지속적인 가격 인상으로 점점 입지를 잃어가는 시대에 들어오게 되면서, 족발은 어느덧 특별한 약속이나 모임이 아니면 접하기 어려운 음식으로 변해가는 모양새이다.

     하지만 족발은 점점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가격과 맛을 바꾸어가며 우리네 식탁에서 계속 찾아볼 수 있다. 기본적인 조리법으로 삶아낸 족발 이외에도 새콤한 소스와 야채를 곁들이는 냉채족발, 자극적인 매운맛을 선호하는 시대 흐름에 맞춰 매운 양념에 버무리는 불족발, 이외에도 오향족발, 족골뱅이, 족발국밥 등의 형태로 우리네 식탁에 오르고 있다. 또한 원가 절감과 접근성을 위해 진공포장 등으로 대형마트 등에서 소량판매를 하는 형태로 판매되기도 한다. 족발이 높아진 가격과 경쟁력에도 사라지지 않고 여러 가지 레시피로 개발되며 우리네 식탁에서 계속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족발에 대한 시민들의 꾸준한 사랑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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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채족발>

     비록 가격만큼은 예전과 같지 않더라도 식탁에 오르는 순간 보는 사람의 마음을 뿌듯하게 만드는 족발. 앞으로도 족발은 일상에 지친 우리들의 식탁에서 든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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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사진 : 이형주 사원
    국제사이버대학교 기획지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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