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문기고]
- 상담심리학과 정효양 학우의
- 졸업이후 나의 변화
어렸을 적부터 순종적이었던 나는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여상을 가야 한다는 부모님의 권유로 대학은 생각도 못 한 채 상고를 진학하게 되었고, 서울로 취업하게 되었다. 서울은 눈뜨고도 코 베어 가는 곳이니 늘 조심해야 한다고 눈물을 훔치며 버스를 타시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의 서울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마주한 나의 삶의 모든 것들은 마냥 새롭고 신기하기만 하였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어느 정도 익숙해질 즈음 여대생들이 옆구리에 책을 끼고 하하 호호거리며 지나갈 때, 나의 가슴 한구석은 마치 비어있는 것 같은 허전함이 느껴졌다. 대학교 축제와 캠퍼스 라이프가 궁금해 친구와 함께 구경을 갔다 온 날은 남몰래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나의 내면에는 대학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것 같다.
친구 시 낭송의 밤에 초대되어 얘기를 나누던 중 상담심리학과에 대해 알게 되었고, 입학하면서 나의 변화는 시작되었다. 늦은 나이에 일과 살림, 공부를 병행한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컴퓨터도 능숙하지 않았고, 레포트 한 장 쓰는 것도 너무 버거워서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첫 시험에 교수님과 학우님들의 격려 박수를 받아 행복했던 기억이 강해서 포기를 할 수 없었다. 그때를 생각하면서 교수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다시 한번 전해드리고 싶다.
상담심리학 공부는 나의 변화에서부터 시작이 되는 것 같다. 이전에 나는 ‘남들은 다 행복해 보이는데 왜 나만 이럴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살아왔다. 그러나 인간이해동아리를 통해서 누구나 말을 하지는 않지만, 각자의 상처를 안은 채 살아가고 있고, 어떻게 치유하고 사는가의 문제라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어렸을 적, 8살 어린 남동생을 너무 많이 때렸던 적이 있는데, 그동안 나는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 대신 나도 어린 나이에 동생을 돌봐야 했으니 그랬었다고 자기합리화로 포장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동생을 볼 때마다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는 내 생각은 상담 공부를 한 후 ‘사과해’라는 말로 바뀌게 되었고, 동생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 큰 용기를 내어 사과하게 되었다. 기억을 못 할 것이라는 내 생각은 틀렸었고, 동생에게는 40이 넘은 나이에도 큰 상처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날 동생과 나는 많은 눈물과 이야기로 서로의 몇십 년 묵은 감정을 지워버렸다.
얼마 전 특강 때 음악치료, 미술치료 강의에서 학우님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나에 대한 또 다른 면을 보게 되었다. 늘 남 앞에 나서기를 부끄러워하고 발표하는 것도 힘들어하던 나였는데 그날은 뭐든 먼저 하고자 하였다.
이렇듯 졸업하고 보니 나 스스로 많은 변화가 온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토록 원했던 학위도 받고, 긍정적인 변화도 오고 일석이조인 것 같다. 나는 지금도 할 수 있는 한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도 힘이 들어 포기하고 싶은 학우님이 계신다면, 느려도, 천천히 가도 목적지에 도달하면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으니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이 여정을 완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