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인복지학과 김형진 교수 칼럼
- 그림 이야기
- #12. 서수영 작가의 작품세계
서수영 작가하면 떠오르는 말이 매화와 달 항아리이다. 우리 모두의 친숙한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서수영 작가의 작품을 좋아한다. 이번 글에서는 우리의 전통적인 소재와 재료, 한국인의 정서가 물씬 느껴지는 형식, 내용, 작법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는 서수영 작가의 작품세계를 알아보고자 한다.
오랫동안 한국의 전통적 미감을 새롭게 재해석해온 서수영 작가는 조선백자 안에 왕실의 길운을 담은 상징물들을 작품 속에 담았다. 봉황과 책가도의 재배치와 절제된 포인트 색의 재구성이 돋보인다.
또한 극적 반전인 작품의 배경 화면은 절제된 단면이거나 오방색의 무작위적인 충돌로 손으로 하나하나 정성 들여 그려 넣어 쌓인 색들이 작품 전체의 큰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전통 색채 물감의 선명한 무게감이 동양 채색의 중후한 밀도를 만들어내고 있어 작품의 완성도를 배가시킨다.
1990년대부터 지속한 Timelessness 작업의 큰 흐름과 아울러 육체와 정신의 영원함을 화폭에 담아 봉황(극락조)과 봉숭아, 불로초 등을 등장시켰다. 조선시대 책가도에서 복복(福)자와 목숨수(壽)자를 재해석하여 점으로 그려 넣은 것도 이러한 작업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담묵(淡墨)으로 그려진 구름은 화면의 깊이감을 훨씬 배가시킨다. 어찌 보면 꿈속을 그려 넣은 듯한 불멸의 이상세계는 몽환적인 공간처럼 느껴진다.
서수영 작가는 벌써 30여 년을 훌쩍 넘는 화력(畵歷)을 쌓아가고 있다. 30번 이상의 국내외 개인전과 여러 유명 평론가들의 전시평, 패트론이나 수장처의 확산을 통해서 한국화 분야에서 채색 화가로서의 중진급 이상의 위상을 다져왔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작품에 전통 회화의 물감인 돌가루 석채(石彩)를 주로 쓰며, 금박의 활용을 병행하는 금채화(金彩畵) 작업에 꾸준히 매진해 온 작가이다. 전통 채색화인 금채화는 정말 작업공정이 어렵고 까다로운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석채 안료를 갈고 개고, 접착제인 아교나 백반과 아교를 혼용한 교반수를 조절해야 하고 금박을 보완할 경우에는 금가루의 니금(泥金)이나 얇은 판막으로 늘려 쓰는 금박(金箔)기법 역시 사용하는 재료에 대한 이해와 숙련이 필요한 기법이다. 그래서 그런지 보통 미술대학에서 한국화과나 동양화과를 졸업하고도 먹이나 석채보다 아크릴릭 물감을 사용하면서 서양화 방식으로 전환하는 작가들이 아주 많다.
그러나 서수영 작가는 동덕여대에서 석·박사과정을 공부하면서 금을 사용한 석채 그림인 “금채화”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작업을 하면서 그 만의 제작공정을 완성했다. 변치 않는 그림 재료로서 석채와 금의 영원성을 재발견하고 고려 불화에서부터 조선 궁중 회화까지 한국의 전통 금채화 기법을 연마했다. 먹과 더불어 채색의 고귀함을 뽐내는 전통 채색 그림을 통해 독보적인 한국 화가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명지대학교 이태호 교수님은 꽃 그림과 시(詩)의 조합, 화면의 형태 만들기, 두텁고 중후한 색 올림, 분방한 붓질 감각 등을 보고 서수영 작가가 포스트-천경자로 우뚝 서길 기대한다고 그의 평론에서 말하고 있다.(이태호 교수, “서수영의 금채화, 매화를 품은 달항아리”서평에서 일부 인용)
작가의 작품에 나타난 장엄과 화려는 서수영 작가의 작품을 수식함에 요긴한 형용일 것이다. 작가는 궁중을 중심으로 한 복식과 인물로 이미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하였다. 그것은 매우 화려하고 엄숙한 권위의 표출이었으며 그 이면에는 여인의 삶과 숙명에 관한 단상들이 내재된 것이었다.
작가가 주로 사용하는 석채(石彩)와 분채(粉彩)는 명도가 매우 높아 맑고 투명한 독특한 색감을 발현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왕실의 지엄한 권위와 장엄함 속의 화려함을 표출해 내었다. 그것은 이미 일정한 완성도를 지닌 작가 고유의 세계였다. 일견 특정한 소재와 양식으로 귀결되는 듯했던 이러한 작가의 작품세계가 근작에 들어 일변함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작가의 주요 작품들은 매화를 주요 주제로 하고 있다. 매화는 동양 문화에 있어 매우 강한 상징성을 갖는다고 한다. 작가가 굳이 매화를 주제로 삼는 것은 그의 작품 주제로 삼았던 모란과 동백의 연장으로 이해된다. 이들은 다분히 전통적인 것이어서 그 읽힘은 이미 정형화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이를 소재로 삼음은 단순히 전통의 관성에서 비롯된 소재주의로 읽혀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앞의 모란과 동백에서와 같이 작가는 이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또 다른 읽음의 내용들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화는 이른 봄 깊은 산골에서 피어난다. 선비는 나귀를 타고 매화를 찾아 나서는 탐매(探梅)는 거를 수 없는 연중 행사였다. 그들은 왜 아직 눈 덮인 산속으로 떠나 매화를 찾을까? 아직 찬바람이 소슬한 계절에 길을 나서는 것은 단순히 꽃을 좋아하는 관상 취미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이 확인하고 했던 것은 혹독한 시련에도 꿋꿋이 자신을 드러내는 매화의 기개를 배우고자 했을 것이다. 엄동의 계절에 모든 것이 죽은 듯 숨죽이고 있을 때 분연히 꽃을 피워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을 알리는 불굴의 정신을 확인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래서 매화는 고난과 역경의 현실에서 간절히 희구하는 이상의 피안이며, 삶의 굴레 속에서 이미 아득해진 이상의 그림자를 좇는 간절한 선비의 마음을 상징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탐매를 떠난 누구도 매화를 찾았다고 기록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매화는 물질이 아닌 정신이며, 실체가 아닌 상징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매화를 소재로 삼음은 그 형상, 혹은 기성적인 읽음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다고 여겨진다. 작가의 매화는 맑고 명료한 색채로 만개한 형상이다. 특유의 색채감각에 더하여 더욱 분방해진 작품들의 경향 역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한지라는 특유의 물성 역시 집약적인 밀도를 자랑하는 작가의 작업방식에 잘 부합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발현되는 특유의 색채미와 장식미는 매화를 현실의 것이 아닌 또 다른 차원의 상징으로 견인하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변화와 변신 그리고 노력은 매우 풍부한 여지와 여운을 지니고 있다. 내용에 있어서는 오랜 기간에 걸쳐 축적된 동양 회화 전통의 깊이와 넓이가 있을 것이다. 더불어 사유에 있어서는 현상에서 벗어나 본질을 직시하고 주관적인 해석을 더하는 무한한 세계가 열려있기 때문이다. 그간 작가가 보여준 작업에의 열정과 집요함을 통해 미루어 볼 때 이러한 변화가 반가운 것은 그 결과가 자못 기대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모두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상철 교수, 서수영의 “매화, 아득한 피안의 향기를 찾다”서평에서 일부 인용)
오랫동안 한국의 전통적 미감을 새롭게 재해석해온 서수영 작가는 이번에 신작 30여 점으로 개인전을 갖는다. 개관 40주년을 맞는 대표적인 사립미술관 한국미술관(관장 안연민, 장은재)에서 초대전으로 진행된다(2023.4.11. ~ 6.11까지, 한국미술관)
지난 30여 년 동안 서수영 작가에게 가장 큰 과제는 ‘한국 전통 회화에 담긴 특유의 감성미를 어떻게 현대미술로 재해석할 것인가?’였다. 단순히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을 잇는 과정을 넘어, 동시대의 감성적 코드와도 교감할 수 있는 “현재 진행형의 한국미”를 찾기 위한 노력의 연속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작가의 행보는 우리 현대인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요구하며 새로운 미적 경험 등을 통해 한국회화의 자긍심을 다시 전하고 싶은 바램의 실천이었을 것이다. 청화백자는 주로 왕실이나 고위기관에 납품하던 관요에서 만든 최고급 백자이다.
부드러운 곡선미와 풍만한 부피감, 그 위에 최고 수준의 화원의 그림까지 얹힌 백자의 자태는 숭고함 그 자체로 통할 만하다. 매화와 나뭇가지를 향해 날아드는 새, 바람에 흔들리는 댓잎의 리듬감까지 포착한 대나무 그림 등 볼수록 우아하고 아름다운 정취가 일품이다. 마치 흰 화선지에 묘사한 한 폭의 화조화처럼 생동감이 살아 있는 청화백자의 무늬를 서수영 작가는 ”한지부조“로 되살리고 수간 채색이나 금채로 새롭게 재해석한 것이다.
서수영 작가의 이번 ”보물의 정원“전시의 메인 모티브는 ”화면 전체를 차지한 달 항아리“이다. 그 안에 매화를 비롯한 여러 문학적인 요소를 가미한 작품이 매우 인상적이다. 전통 기법의 섬세한 묘사와 다층의 실험정신을 통해 품격 있는 고급문화를 오늘에 되살리려는 작가의 노력은 서구문화와 맞서서 우리의 미감을 회복하고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나가는 매우 의미 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서수영 작가의 전시와 행보를 통해 한국 여성작가가 세계화의 길로 나아가는 발걸음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가 소개>
서수영(b.1972~) 작가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동덕여자대학교 예술대학 학부와 대학원에서 한국화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Galerie Visconti(France), 한벽원미술관, 영은미술관을 비롯해 30여 회의 국내외 개인전과 200여 회의 기획전에 초대되었다.
또한 KIAF SEOUL, 2012 Citizen Art Shanghai(China), Hong Kong Art Fair(Hong Kong), SCOPE(UK) Art Show 등 30회 이상의 국내외 아트페어에도 참가했다.
한편으로 2015년도에 문화예술융성사업으로 진행된 근대 이후 제작된 배채기법 작업 중 가장 큰 대작을 완성하여 한국 미감의 정수를 새로운 세대의 감성으로 보여주었다.
단행본 『그림 속에 나타난 금 이야기』를 저술하였고, 경기문화재단, 용인문화재단,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우수창작 작가에 선정되었고 안견청년작가 대상, 동덕여대 최우수 논문상, 커리어 리더상을 수상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영은미술관, 한국미술관, 수원영선갤러리 등 여러 곳에 소장되었고 동덕여자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현재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