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JCU 가족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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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문화 역사 탐방
    #2. 떡 이야기

    우리네 식탁에서 흔히 보이는 음식들. 그저 끼니를 때우기 위해 입 안에 넣고 기억 속에서 잊어버리게 되는 음식들. 하지만 음식 하나하나에 새겨진 역사와 시대의 흐름을 알게 된다면 맛에 새로운 풍미가 더해지지 않을까? 우리들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숙한 음식들에 역사라는 조미료를 가해보자는 취지로 이번 글을 시작해봅니다.

    #2. 떡 이야기

     ‘설날에 떡국을 먹으면 나이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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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 번 이상은 들어본 이야기일 것이다. 어린 나이에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떡국을 허겁지겁 먹던 추억이 있는 사람도 있고, 나이를 먹는다는 압박감에 편치 않게 수저를 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떡국이란 특히 설날에는 빼고 이야기하기 어려울 정도의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설에 먹는 전통음식인 떡국은 흰 가래떡을 썰어 사골 혹은 맑은 육수에 넣고 끓어먹는 음식이다. 새해 첫날의 밝음의 의미로 흰 떡을 사용하고, 떡을 길게 늘여 가래로 뽑는 것은 재산이 늘어나길 바란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현대에 들어오면서 점점 소비량이 감소세를 보이고 있지만, 떡은 오랜 시간동안 한국인의 식문화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떡은 언제부터 우리네 식탁에 자리 잡기 시작했으며, 현대에 들어와서는 어떠한 변화를 겪고 있을까?

    #2-1. 떡의 시작

     한반도에서 첫 떡의 흔적은 농경문화의 시작인 청동기 시대의 유적지인 나진초도패총과 삼국시대 고분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곳에서 출토된 시루가 우리나라 떡의 유래와 발달과정을 상징하는 유물이다. 유물의 흔적을 보았을 때 초기농경이 시작된 선사시대에 잡곡농사를 먼저 지었으며, 갈돌과 같은 원초적 도구를 사용한 탈곡과정에서 얻어진 거친 잡곡가루를 먹는 과정에서 구운 떡이 처음 등장한 것으로 보여진다. 구운 떡은 특별한 조리용구가 필요치 않으며, 단순히 불에 달구어진 돌만으로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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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토기시루 (출저 : 옥당박물관)

     이후 토기시루가 상용 도구로 선보이기 시작하는 청동기시대 이후에는 찌는 조리, 즉 찌는 떡이 주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고구려벽화인 안악3호분의 ‘부엌’ 장면을 보면 당시 사용하던 시루가 그려져 있다. 이를 통해 고구려 사람들의 음식문화를 알 수 있는데,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인들은 조와 콩을 비롯하여 밀, 보리, 수수, 기장 등의 곡식을 주식으로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곡물을 가루 내 시루에 쪄 먹은 것이다.

     통일신라시대로 접어들어 본격적인 농경시대가 시작되면서 쌀을 중심으로 한 곡물의 생산량이 증대되었다.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쌀 외의 곡물을 이용한 떡이 다양하게 발전하기 시작한다. 고려시대에는 떡이 한층 더 발달하게 되며, 주로 상류층이나 세시행사, 제사음식으로 쓰이다가 점점 하나의 별식으로 일반 소시민들에게도 널리 보급된다.

     위에서 보듯 떡과 관련된 유물 중 시루의 흔적이 자주 보이는데, 따라서 떡의 원형은 백설기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성호사설』에서는 ‘멥쌀가루에 습기를 준 다음, 시루에 넣어 떡이 되도록 오래 익힌다. 이것을 백설기라고 한다. 백설기는 시루떡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으로서, 신성한 의미가 있는 행사의 필수 음식이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흰 백설기는 어린아이 3·7일, 백일, 돌, 생일 때 많이 하는데, 그것은 아무것도 섞지 않은 순수한 것으로 순결과 축원을 깃들인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2-2. 떡의 전성기, 얽힌 속설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 떡은 혼례, 빈례, 제례 등의 각종 행사와 연회에 필수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전반적으로 농업 기술과 음식 조리 및 가공기술의 발달로 식생활문화가 향상되었다. 유교가 사회 깊숙이 뿌리내리면서 관혼상제 등의 의례와 세 시행사가 함께 자리 잡았고, 한과류와 함께 다양한 떡이 전통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특히 궁중과 반가를 중심으로 더욱 사치스럽게 발전하여, 조선시대 음식 관련 조리에서 등장하는 떡의 종류 만 해도 무려 198가지에 이르고, 떡을 만드는 재료나 가짓수가 95가지나 된다. 특히 궁중에서는 사치의 정도가 더욱 심하여 각 색 메시루떡, 각색 차시루떡, 화전, 각색단자 등을 1자 8치로 높이 고여서 연회에 사용하였다. 이러한 기록들로 보아 당시 조선시대 떡이 가장 화려하였음을 엿볼 수 있고, 이때가 바로 떡의 전성기였다고 볼 수 있겠다.

     이렇듯 한국인들은 오랜 시간 떡과 함께 해왔으며, 떡과 관련된 많은 풍속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 소개할 만한 일화는 인절미에 있다. 『주례』에서는 인절미를 ‘떡 중에서 제일 오래인 것’, ‘떡 중의 별미는 단연 인절미이며 찰지면서 쫀득한 맛을 으뜸으로 여긴다.’ 라고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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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인절미 (출저 : 위키백과)

     인절미의 이름에 관한 속설로는 조선시대 인조 때 이괄이 난을 일으켜 한양이 반란군에게 점령당하자, 인조는 공주 공산성으로 피란을 갔다. 그곳에서 피란 중인 어느 날, 임씨라는 농부가 찰떡을 해 임금께 바쳤는데 그 떡 맛이 좋고 처음 먹어보는 것이라 신하들에게 그 이름을 물었으나 아는 사람이 없어 임금이 친히 떡 이름을 지어 내렸다. 임 서방이 절미한 떡이라 하며 ‘임절미’라 한 것이 ‘인절미’로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2-3. 오늘날의 떡

     현대에 들어서 빵과 같은 서양음식의 유입과 함께 떡의 선호도는 예전과 같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닌, 동양권의 식사 문화가 쌀 위주에서 밀과 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서구권의 식사로 변해가는 추세에 따른 선호도 하락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여전히 떡은 현대인의 식문화에서 여전히 굳건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특히 쌀 생산량이 점점 줄어드는 현대에 들어서 떡은 남는 쌀을 소비할 대체제로 주목받고 있다. 떡은 쌀로 만드는 어떤 음식보다도 쌀의 양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부피당 쌀 소비량이 가장 높으며, 소스를 첨가하는 등의 간단한 가공을 통해서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간편식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즉, 간식에서부터 간편식에 이르기까지 범용성을 다양하게 가져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아직은 쿠키나 케이크 같은 밀로 만든 서양식 디저트보다는 인지도가 부족하긴 하지만, 디저트로서의 떡의 입지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섭취하는 식후 음료인 커피와는 어울리는 편이라 보긴 어려우나, 대신 전통 차와의 궁합이 매우 좋아 전통식 디저트와의 조합이 매우 잘 어울린다. 이 밖에도 딸기와 같은 과일, 초콜릿이나 티라미슈 같은 서양식 디저트와의 퓨전을 통한 새로운 변화도 시장에서 꾸준히 연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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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티라미슈 크림치즈 찹쌀떡 (출저 : 착한방앗간)

     누구나 설에는 반드시 먹게 되는 떡. 기념일마다 찾게 되는 떡. 허기를 달래주는 식사에서부터 고품격의 디저트까지. 떡은 여전히 우리의 식탁에서 모습을 바꾸어가며 우리의 곁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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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사진 : 이형주 사원
    국제사이버대학교 기획지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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