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해를 맞이하며

 대학 시절 신촌에 ‘레드 제플린(led zepplin)’이란 카페가 있었다. 간판에 걸맞게 주로 하드 락(hard rock) LP 음악을 틀어 주던 곳이었다. 카페 주인이었던 엄인호가 기타 치던 이정선과 이곳에서 뜻을 모아 밴드를 결성했다. 바로 ‘신촌 블루스’다. 두 사람은 작곡과 연주, 그리고 노래도 했지만, 한영애, 김현식, 박인수 등과 같은 걸출한 보컬리스트들을 배출했다. 이 그룹 2집에 김현식의 <골목길>이 실려있는데 이 곡도 명곡이지만 필자는 side B의 ‘또 하나의 내가 있다면’도 좋아한다. 원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1집 노래인데, 김종진의 멋들어진 어쿠스틱 기타와 감미로운 음성, 그리고 지금은 유명을 달리한 전태관의 드럼을 감상할 수 있다.

 노래는 떠난 연인을 그리워하며 아쉬움을 쓸쓸하고 애절하게 표현한다. 그러면서 - 필자의 해석이 맞는다면 - ‘또 하나의 내가 있다면’ 떠난 그녀에게 보여주고 과거 자신에게 실망했을 연인의 마음을 돌려서 다시 둘의 관계를 복원하고픈 소망을 노래한다. 작곡가 김종진은 남들이 알고 있는 자신 말고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자기 실체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상상하며 그 다른 모습을 옛 연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애절한 마음을 표현한 것 같다. 우리에게도 이런 아쉬운 기억이 꽤 있다고 생각된다. 또 하나의 내가 그 당시 나를 대신해서 좀 더 현명하고 과감하게 결정하고, 행동에 옮겼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운 기억들이 바로 그것이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왔다. 내년 3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 대비해서 각 정치 세력들은 저마다의 이유와 명분을 앞세워 훌륭한 분들을 후보로 내세우고자 분주하다. 어떤 이는 가족의 일로 미담이 넘쳐나지만 다른 분들은 가족 때문에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일부 예비 후보자들은 과거 공직에 있으면서 혹은 정치인의 길을 걸어오면서 많은 업적을 쌓았고, 시의적절한 판단과 처신을 해왔다고 자부하지만, 혹자는 새로운 기준과 잣대를 가지고 비판하고 심지어 해명을 요구하는 일도 종종 벌어지고 있다. ‘또 하나의 내가 있었다면’ 지금 비난받는 지난날의 언행들을 좀 더 다르게 대처하고 행동함으로써 지금은 더욱 담당하고 떳떳했을 텐데 말이다.

 정치 사상가 에드워드 카(Edward Henry Carr)는 정치인들을 "연출된 모습과 신뢰감 주는 목소리, 그리고 친밀감 있는 표정과 어조를 유지하는 사람들이다.”라고 다소 냉소적으로 묘사했지만, 비록 정치인이 아닌 일반인들도 사회생활 하다 보면 마음과는 다른 표정과 언행을 해야 할 때가 종종 있다. 때론 무대 위 배우처럼 연기 아닌 연기를 해야 하고 원치 않는 말을 해야 할 상황에 직면하는데, 인간은(특히 성숙한 직장인) 사회성을 가지고 관계적 일상을 영위하기에 이런 일들을 매일 입는 옷처럼 늘 함께하게 된다. 돌이켜 보면 개인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종종 표정과 언행을 포장(?)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노출되곤 하는데, 마음은 울적한데 웃어야 하고, 더구나 내키지 않는 찬사의 말을 해야 하는 어색한 상황들이 바로 그것이다. 만약 ‘또 하나의 내가 있다면’ 한 걸음 다가가 귓속말이라도 직접 자신의 본심을 전해 줄 텐데 말이다. 그리고 예의 바르게 웃고 있는 현실의 자기에게 한마디 할지도 모르겠다. “속이 다 시원하지? 너는 현실에서 지식인으로 훌륭하게 행동했고, 상대방은 웃는 네 표정 속에서도 감춰진 진심을 알았으니까 엉뚱한 오해는 하지 않을 거야.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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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어색함과 이중적 태도는 다가올 미래 세상에서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을 전망이다. 가상의 ‘또 하나 내가’ 구현되는 온라인 세상이 현실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싸이더스 스튜디오’에서 탄생한 가상 인간 <오로지>라는 이름의 여성 모델이 모 보험회사 TV 광고에 등장했다. 닮음을 넘어 소통까지 신경을 쓴 버츄얼 인플루언서(virtual influencer)로서 벌써 팔로워가 5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실제 인간이 가상 인간을 추종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로지는 이미 70여 개의 광고 제안을 받았는데 금액으로 환산하면 30억 원이 넘을 거란 얘기다. 가상 인간이 히트하면 속된 말로 대박 나는 세상이다. 미국의 가상 팝가수 릴 미켈라는 팔로워가 310만 명인데, 온라인 모델 활동까지 더해서 2020년 한해 130억 원 넘게 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누구든 ‘또 다른 나’를 만들어 또 다른 이미지와 능력을 심으면 나를 대신해서 가상공간을 맘껏 누비면서 멋진 가수, 모델 또는 수호신으로 변신해서 현실에서 불가능했던 꿈을 이루고 멋진 성과를 낼 수 있는 세상이다.

 다소 일방통행식 가상 인간의 활동은 한 단계 발전된 “메타버스(metaverse)”를 통해서 다수의 ‘또 하나의 내’가 다방면으로 소통하고 활동할 수 있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시작은 상업적 목적에 집중되고 있으나, 조만간 교육의 현장에도 적용될 것이다. 교수의 아바타가 프로젝터와 실습 기능이 장착된 가상 교실에서 학생 아바타들을 상대로 강의하고 실시간으로 질문과 대답하게 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공학적 손길을 거친 교안을 기초로 해서 스튜디오 촬영과 도구의 틀로 편집을 한 콘텐츠 시대를 뒤로하고 메타버스 공간을 매개체로 하는 “가상공간”에서 ‘또 하나의 내’가 나를 대신해서 배우고 공유하고 새로움을 창조하는 세상이 오고 있다. 딥 러닝(deep learning)으로 무한 확장성을 확보한 AI(인공 지능) 튜터는 학생 아바타의 질문 공세에 1~2초 안에 답변할 것이고, 증강 현실(augmented reality)과의 결합은 교수 앞에 놓인 실습 도구를 가상 실습 공간에 구현해서 실제처럼 느끼면서 만들고 작동시키는 수업을 가능하게 해 줄 것이다. 온라인 교육의 선두에 있는 사이버대학들에게 커다란 변화와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첨단 기업들의 숨 가쁜 신 기술 혁신이 교육 혁신의 현장에 있는 우리를 정신없게 만들고 있지만, 어차피 해야 할 과제라면 즐거운 마음에 구성원의 중지를 모아 최적의 솔루션을 도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과업은 결코 한 사람의 의지와 결기로는 이룰 수 없으며, 전체 교직원의 적극적인 참여와 아이디어가 종합됐을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국제사이버대학교 총장
경영학 박사 이 경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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