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담심리학과 김현미 교수의
- 상담 Story
- #40.함께 살아도 어려운 가족 이야기
가족은 인간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맺는 관계이자 가장 오래 지속되는 관계이다. 출생 후 자연스럽게 속하게 되는 집단이며, 개인의 정서적 기반과 가치관 형성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삶의 토대이다. 과거에는 가족이 개개인의 생존과 보호를 위한 공동체적 기능이 중요했다면, 현대사회에서는 정서적 지지와 심리적 안정의 기능이 더욱 중요해졌다. 특히 사이버대학에서 학업을 이어가는 성인학습자들의 경우 학업과 일, 가정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가족의 의미를 다시 성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가족은 단순히 ‘한 공간에서 함께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지지하고 성장시키는 관계적 장이라고 볼 수 있다.
건강한 가족은 갈등이 없는 가족이 아니라 갈등을 다루는 방식이 기능적인 가족이다. 건강한 가족은 가족구성원 간의 의사소통이 개방적이고,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비교적 자유로우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특징을 보인다. 또한 역할이 유연하게 조정되며, 위기 상황에서도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는 협력적 태도를 유지한다.
반대로 병리적인(역기능적인) 가족은 겉으로는 안정되어 보일 수 있으나 내적으로는 의사소통이 단절되어 있거나 왜곡되어 있고, 감정 표현이 억압되거나 과도하게 표출되는 양상을 보인다. 역할이 경직되어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고, 특정 한 사람에게 과도하게 책임이 집중되는 경향도 있다. 건강한 가족과 병리적인 가족의 차이는 단순히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구조와 상호작용 패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갈등을 겪는 가족에게서는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첫 번째는 의사소통의 문제이다. 많은 가족들이 대화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입장만을 말하거나 상대방의 말을 평가하고 해석하는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잘 듣고 알아차리는 것이 되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도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싸움이 반복되거나 극단적인 경우에는 아예 말을 하지 않는 방식을 선택하게 된다.
두 번째는 역할 기대의 차이이다. 부부 간, 부모와 자녀 간에 서로 기대하는 역할이 명확히 공유되지 않거나 시대 변화에 맞게 조정되지 않을 때 갈등이 발생한다. 상대방에게 과도하게 특정 역할을 기대하거나, 분명하게 말하지 않으면서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거나, 상대방의 기대를 알면서도 외면하며 욕구를 좌절시키는 행동 등이 해당된다.
세 번째는 감정 조절의 어려움이다. 서운함이나 화나는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지 못하고 쌓아두다가 갑자기 폭발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표현하는 경우 관계가 악화된다.
네 번째는 과거 경험의 영향이다. 개인이 성장 과정에서 경험한 가족관계가 현재 자신의 관계 방식에 영향을 미치면서 반복적인 갈등 패턴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머레이 보웬(Murray Bowen)은 특정한 가족 문제가 삼대 혹은 사대에 걸쳐 반복되어 나타나는 경우를 가족치료 장면에서 흔히 발견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다세대 가족치료 이론을 정립하였다.
몇 가지 사례를 통해 가족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사례이다.
40대 직장인 A씨는 퇴근 후에도 집에 들어가기 싫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고 했다. 아내와 대화를 하면 늘 지적받고 야단맞는 기분이 들었고, 아내는 남편이 무심하고 책임감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부부와 대화를 나누어 본 결과, 두 사람 모두 실제로는 서로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표현 방식이 전혀 달랐다. 아내는 언어적 표현을 통해 관계를 확인하고 싶어 했고, 남편은 경제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사랑의 표현이라고 믿고 있었다. 서로의 표현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 채 상대를 비난하는 패턴이 반복되면서 갈등이 심화되었던 것이다. 이 사례는 의사소통 방식과 사랑의 표현 차이가 갈등의 중요한 원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두 번째 사례이다.
대학생 자녀를 둔 50대 어머니 B씨는 자녀가 자신의 기대만큼 성취하지 못할 때마다 강하게 간섭하고 통제하려고 하였다. 자녀는 점점 더 어머니와 대화하지 않으려 했고,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 시간이 늘어났다. 이 사례의 핵심은 어머니의 불안이었다. 자녀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간섭과 통제로 나타났고, 자녀는 이를 압박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건강한 가족에서는 자율성과 연결성의 균형이 중요한데, 이 균형이 깨지면서 갈등이 발생한 전형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세 번째 사례이다.
은퇴한 60대 부부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은퇴 이후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사소한 문제로 다투는 일이 잦아졌다. 남편은 집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지 못해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고, 아내는 오랫동안 혼자 감당해온 집안일에 남편이 갑자기 개입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이 경우는 역할 변화에 대한 준비 부족이 갈등으로 이어진 사례였다. 가족은 생애주기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관계의 긴장이 높아질 수 있다.
그렇다면 가족이 건강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첫째는 ‘이해하려는 태도’이다. 상대를 바꾸려 하기보다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관계를 변화시키는 출발점이 된다.
둘째는 ‘감정 표현의 연습’이다. 감정을 억누르거나 공격적으로 표현하는 대신 자신의 감정을 책임 있게 전달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당신은 왜 항상 그래”라는 비난형 표현 대신 “나는 그 상황에서 서운함을 느꼈다”라고 표현하는 방식이 도움이 된다. 상대방을 비난하여 관계를 해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목적임을 기억해야 한다.
셋째는 ‘경계 설정’이다. 건강한 가족은 서로 지나치게 밀착(융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는 관계이다.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면서도 필요할 때 연결될 수 있는 유연성이 중요하다. 특히 자녀가 성장하면서 자녀의 생각과 결정을 존중하고, 물리적으로도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넷째는 ‘함께하는 경험의 축적’이다. 일상 속에서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쌓아가는 것이 관계를 회복시키는 힘이 된다. 작은 대화, 함께하는 식사, 공감의 순간들이 관계의 기반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우리 모두에게 가족은 때로는 가장 큰 지지 체계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가족관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 가능하다. 지금까지의 관계 패턴이 어떠했든지 간에 이해와 소통, 그리고 작은 실천을 통해 충분히 변화할 수 있다. 가족은 완벽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성장해가는 관계이다.
결국 건강한 가족이란 갈등이 없는 가족이 아니라, 갈등 속에서도 서로를 포기하지 않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지속하는 가족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