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네 식탁,
- 식문화 역사 탐방
- #4. “무더운 더위를 식혀주는 여름철 별미” 냉면 이야기
어느덧 중반에 접어든 무더운 여름. 갈수록 강해지는 더위를 견디다 보면 입맛을 쉽게 잃어버리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예전부터 더위로 인해 잃어버린 입맛을 찾기 위한 여러 가지 음식들을 찾기 마련이다. 그래서 유독 여름에 찾게 되는 음식들이 있고, 그중에서도 여름에 자주 찾는 음식을 고르자면 당연히 냉면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무더위를 쫒아낼 시원하고 새콤한 육수와 쫄깃한 면발이 달아난 입맛을 되찾아주기엔 더할 나위 없는 음식이 바로 냉면이다. 최근에는 치솟는 식자재 물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음식 중에 하나로 자리 잡고 있지만, 이는 그만큼 냉면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사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냉면을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으며 오늘날의 냉면과는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
한반도에서 냉면을 언제부터 즐기기 시작했는지는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해왔으나, 고려시대부터 즐기기 시작했다는 설이 북한의 연구 결과에서 밝혀진 바 있다. 고려시대 평양의 찬샘골(현 동대원구역 랭천동) 주막집에 얹혀살던 달세라는 사위가 메밀 반죽을 국수틀에 눌러 뺀 것을 물에 삶아서 찬물에 헹군 다음 동치미 국물에 말아 먹은 음식이 그 시작이며, 이것을 당시에는 곡수(穀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후 조선시대에 넘어와서도 냉면은 꾸준히 언급된다. ≪동국세시기≫에서는 냉면을 동짓달(음력 11월) 시식으로 소개하며, ≪규곤요람閨?要覽≫에서는 냉면에 대해 "싱거운 무 김치국에다 화청(和淸)해서 국수를 말고 돼지고기를 잘 삶아 넣고 배, 밤과 복숭아를 얇게 저며 넣고 잣을 떨어 나니라."라고 기록되었다. 이 밖에도 ≪진찬의궤進饌儀軌≫, ≪부인필지夫人必知≫ 등의 서적에서 냉면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특히 ≪시의전서是議全書≫에는 냉면의 구체적인 조리법에 대해서도 기재되어 있는 것을 보면 냉면은 선호도가 높은 기호식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 숙종이 냉면을 먹었다는 내용이나 고종 황제가 냉면을 좋아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덕수궁 대한문 밖의 국숫집에서 배달하여 편육과 배, 잣을 얹어 먹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냉면은 신분을 막론하고 모두가 즐기는 음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냉면의 조리법이 기재되어 있는 시의전서의 모습>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냉면이 한여름의 더위를 쫓아내는 여름철 별미로 인식되고 있지만, 냉면은 사실 겨울에 먹을 수 있는 겨울 별미였다. 그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첫째로 냉면의 국수를 만드는 메밀의 재배 시기가 있다. 메밀은 조선시대에는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에서 재배됬는데, 주로 음력 7월 초순에 심어 가장 늦게 수확되고는 했다. 당시 평안도 사람들은 한여름에 밀을 수확해 만두와 국수를 만들어 먹고, 겨울이 되면 늦가을에 추수한 메밀로 냉면을 만들어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두 번째로 온돌 문화가 영향을 끼친 것이 있다. 온돌난방을 하던 시절엔 실내 온도 조절이 어려워, 추운 날씨에 불을 많이떼면 실내 온도가 필요 이상으로 올라, 그 더위를 식히기 위해 냉면을 주로 만들어 먹었다는 이야기다. 세 번째로 냉장 기술의 여부였는데, 여름철에는 냉면의 차가운 육수를 만들 얼음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아 냉면을 먹기 쉽지 않았다는 의미도 있다. 따라서 여름철의 냉면은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 아니면 좀처럼 접하기 어려웠기에 겨울철 제철 음식으로 취급받았으며, 근현대에 이르러 냉장 기술이 발달하고, 온도 조절이 용이해지며 냉면의 선호도가 여름으로 옮겨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냉면의 기원에 대해서는 특히 북한에서 자주 다루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것은 냉면의 유래가 이북에서 온 것이 유력하기 때문이다. 냉면은 주로 이북 지역의 지역요리로 인기가 있었지만 전국적으로 소비되던 형태의 음식은 아니었다. 이 냉면이 본격적으로 전국에 퍼지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일제강점기다. 일제강점기에 평양 출신 냉면 요리사들이 서울로 대거 진출하면서 냉면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특히 냉면집임을 나타내는 중이를 매단 ‘장대이’는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서울의 여름철 대표적인 풍경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냉면의 종류에는 보통 조리법의 근원지역 이름을 붙이며, 평양냉면, 해주냉면, 강계냉면, 진주냉면, 함흥냉면 등이 있다. 이 중에 오늘날 냉면의 종류를 논하게 되면 주로 나오는 이름이 함흥냉면과 평양냉면이라고 볼 수 있지만, 사실 근대까지만 하더라도 냉면의 대표명사에는 평양냉면과 함께 진주냉면이 있었다. 이 두 가지 냉면 이외에는 냉면이라는 호칭이 붙지 않았었다.
<평양냉면>
평양냉면은 메밀가루에 녹말을 약간 섞어 국수를 만든 다음, 꿩탕과 동치미국물을 붓고 돼지고기삼겹살·무채김치·배·삶은 달걀을 얹은 다음 잣·실고추·겨자·초 등으로 맛을 낸다. 1920년 중반 서울로 진출하면서 한반도의 남부에서도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메밀을 주로 사용하는 평양냉면의 조리법이 냉면의 표준화로 자리를 잡으면서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도 급속히 냉면이 퍼져나갔다. 다른 음식들에 비해 냉면이 가지고 있던 장점이 바로 배달이 된다는 점이었는데, 이러한 장점이 급속도로 근대화, 도시화되면 서울의 상황과 맞물려 냉면은 설렁탕과 같이 서울의 배달음식의 대표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러한 평양냉면의 성공적인 상품화와는 달리 진주냉면은 널리 보급되는데 실패하였다, 요정에서 주막까지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접할 수 있었던 평양냉면과는 달리 진주냉면은 진주 지역에 소재한 소수의 요정에서 엄격한 조리법을 따라 조리되던 고급음식 취급이 원인이었다. 더불어 일제강점기 이후 서울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요정들이 영업을 할 수 없게 된 것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이처럼 진주냉면이 사라진 자리에 함흥냉면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함흥냉면은 본래 냉면으로 불리던 음식은 아니었지만, 평양냉면과 같이 널리 알려진 냉면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함흥냉면은 함경도지방에서 많이 생산되는 감자녹말로 국수를 만들어 국수의 올이 소의 힘줄보다 질기고 오들오들하며, 가재미나 홍어 등 생선으로 회를 쳐서 고추장으로 양념하여 국수에 얹어 맵게 비벼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진주냉면은 순메밀로 냉면국수를 만들며, 쇠고기를 삶아 수육으로 썰고 국물은 냉면육수로 쓰는데, 돼지고기는 쓰지 않는다.
<함흥냉면>
오늘날에 들어 냉면과 같이 곁들여 먹는 음식들의 종류도 늘어났고, 아예 냉면과 같이 내는 식당도 많아졌다. 대표적인 것이 편육인데, 국물을 내기 위해 삶은 고기로 편육을 만들어 같이 내는 방식이다. 냉면 육수를 고기로 내는 식당이라면 반드시 고기가 나오기 마련이기에 보통 편육을 같이 파는 식당이 많다 만두를 같이 파는 곳도 있는데, 주로 적당한 가격과 무난한 맛으로 곁들여 먹기 적당한 음식이기에 같이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무렵 갑작스레 유행하기 시작한 숯불고기는 흔히 육쌈냉면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조합을 이루고 있으며, 이밖에도 돈가스, 육전, 완자 등을 같이 내는 경우도 늘었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우리네 식탁에서 더위를 물리쳐준 든든한 지원군 냉면. 갈수록 혹독해지는 여름 더위를 이기기 위해선 이만한 음식도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