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수상담치료학과장 이주연 교수 칼럼
- #2.슬픈 음악이 주는 삶의 위로
“이 사악한 세상에
어느 누가 마음을 지킬 수 있을까?
슬픔의 나무에서
하염없이 꽃잎이 떨어진다”
-헤르만 헤세의 슬픔 중에서-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19'와 '우울감(blue)'이 합쳐진 신조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일상에 큰 변화가 닥치면서 생긴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을 뜻한다. 고립, 답답함, 야외활동 부족으로 인한 체중증가, 코로나 감염으로 인한 건강염려증, 소통단절에서 오는 무기력감, 사회적 관계 결여에서 오는 우울감 등은 ‘코로나 블루’를 경험하게 되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의심과 경계심 증가, 감염병 관련 정보검색에 대한 집착, 사회적 관계 고립으로 인한 위축감과 무기력감, 공간 스트레스와 불면증, 식욕감퇴, 소화불량, 어지럼증, 답답함, 공허함, 분노감 등은 코로나19로 인해 경험하고 호소하는 우울한 심리적 위기이다. 최근 20세부터 65세까지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건강 상태’를 조사한 한국갤럽 결과에 의하면 전체 응답자의 40.7%가 ‘코로나 블루’를 경험했다고 하니 ‘코로나 블루’는 국가적 위기의 하나 또는 그 결과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정신적 위기에는 예술이 치유 역할을 할 수 있다. 희로애락, 걱정, 불안, 고뇌 등 인간의 끊임없는 심적 변화 시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예술이 주는 치유적 기능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예술영역 중 음악은 스트레스를 해소할 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여러 가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음악을 감정표현의 도구로 사용하여 부정적인 감정을 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감정적으로 힘듦을 겪고 있다면 일상에서 음악을 적극적으로 가까이 하기를 추천한다. 우울하고 슬플 때 어떤 음악을 들어야 할까? 경쾌한 음악은 어떨까?
관련 연구들은 역설적이지만 슬픈 음악이 오히려 정신적으로 긍정성을 배가시키는 효과를 발휘한다고 보고한다. 경쾌한 음악을 들을 때 순간적으로 도파민이 나와서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효과가 있지만, 음악심리학에서 설명하는 동질성의 원리에 따르면 지속적인 기분 유지에는 도움이 안 된다. 음악에서 공감 요소를 얻을 수 없으므로 자신의 기분과 음악의 교집합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처음에는 자신의 기분과 같은 음악을 듣고 기분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이후 천천히 밝은 음악을 듣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본다.
슬픈 음악은 멜로디나 가사로 뇌의 언어중추를 담당하는 브로카영역을 비롯해 뇌의 다양한 영역을 자극한다. 그러면 행복 호르몬인 도파민과 엔도르핀의 분비를 촉진해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오히려 슬픈 음악이 즐거움을 주는 호르몬을 분비한다는 것이다. 슬픈 음악을 통해 편안하고 마음이 진정되는 기분을 얻는다는 임상연구에서는 우울증이 없는 사람들도 우울할 때 슬픈 음악을 들으면 마치 내 기분을 잘 아는 친구가 자신을 위로해 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보고했다. 이것은 슬픈 감정을 억지로 밀어내거나 외면하기보다는 내 감정과 비슷한 정서의 음악을 들으며 슬픔을 받아들이는 것이 기분 전환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영국 연구를 소개한다. 450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 밝고 경쾌한 음악과 슬프고 우울한 음악을 들은 사람 중 슬프고 우울한 음악을 선택해 들은 그룹이 슬픈 감정을 더 빨리 극복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연구진은 이렇게 설명했다. “슬픔은 수학 문제처럼 정해진 답을 맞히면 풀리거나 한 번에 뒤집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상실감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런 슬픔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뿐인데, 슬프고 우울한 음악을 들은 사람은 슬픔에 푹 젖어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헤어나는 속도도 빠르다.”
그렇다. 사람들은 슬픔이라는 감정을 피하려 하지만, 슬픈 음악은 예외이다. 오히려 슬픈 음악은 우리의 힘든 마음을 위로해 주고 슬픈 감정에서 벗어나게 한다. 자신의 슬픔을 반영하는 슬픈 음악을 듣는 것은 음악을 통한 외현화된 나의 슬픔과 만나고 소통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이 슬픔의 조절과 자기 치료적 결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음악의 미적 체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우울 감정을 극복하기 위해 그 감정을 즐기면서 그 우울함의 바닥까지 떨어지고 나면 오히려 우울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 때가 있다. 슬픈 음악으로 인한 감동은 삶의 중요한 순간들을 기억하게 만든다. 어쩌면 슬픔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은 그 노래 자체보다는 슬픈 노래가 불러일으키는 기억일 수도 있다.

일상에서 불쾌한 감정을 자주 겪는가? 그렇다면 슬픈 음악을 들으라. 부정적인 감정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슬픔에는 절대적인 것이 없다. 쉽게 견딜 비법도 없고 빠져나갈 구멍도 많지 않다. 누구든지 슬픔을 이해하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 음악은 그 길을 가는 동안 동행해줄 뿐이다. 지금 감정으로 힘들다면 그 마음속의 감정들을 애절하고 슬픈 음악을 통해 다 쏟아내어 보는 건 어떨까?
끝으로 필자가 슬플 때 즐겨 듣는 클래식을 소개하고자 한다.
오펜바흐의 자클린의 눈물(Offenbach/ Jacqueline’s Tears)

비탈리의 샤콘느(Vitali / Chaconne in G minor)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Rachmaninoff/ Vocalis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