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JCU 연 Quarterly Webzine 2019년 summer 제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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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비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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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1시 45분 출발하는 로마행 비행기, 탑승 수속이 채 시작도 되지 않은 이른 시간에 여유 있게 공항에 도착해서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랐다. 첫 번째 기내식을 먹고, 영화도 한 편 다 보았다. 자리에 앉은 지 얼마나 지났나 싶어 문득 고개를 돌려 바라본 비행기 창 밖에 보이는 건…… 여전히 회색빛의 인천공항 활주로였다.

 그렇다, 생애 최초의 해외여행에서 내가 처음 겪은 건 7시간의 출국항공편 지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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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때마다 매번 설레는 비행기. 물론 저 상태로 7시간을 보내게 될 줄은 몰랐다.

 첫 해외여행을 ‘혼자서’, 그것도 ‘유럽으로’ 가겠다고 결정한 건 오랜 친구 헬렌 덕분이었다.

 대학생 때는 서툰 영어 실력에 대한 걱정과 적지 않은 여행비용 부담으로 한 번도 시도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전 직장에서 2년간 영어로 소통을 하다 보니 ‘나의 영어 실력이 얼마나 보잘것없는가’에 대한 감이 없어지고 ‘그래, 내가 네이티브가 아닌데 어쩔 거야’라는 뻔뻔함이 더해져서 울렁증이 다소 사라졌다.

 그럼에도 시작을 주저하는 기질 탓에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나와는 정반대로 추진력이 참 좋은 헬렌이 이탈리아를 추천해주었다. 평소 내가 좋아하는 ‘지칠 때까지 많이 걷고 많은 것을 보는’ 국내 여행 취향을 십분 고려한 아주 적절한 여행지였다.

 출발을 두 달여 앞두고 7박 8일로 일정을 잡았는데, 함께 갈 사람을 찾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홀로 여행’으로 세부 계획을 시작했다. 모든 것을 오롯이 내가 챙겨야 했기에 유럽여행 카페 등을 정말 열심히 탐독했고, 온갖 정보를 습득했다. 최대한 나 스스로가 준비가 부족해서 당황할만한 상황을 만들지 않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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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전에 조사해서 노트에 붙여간 자료의 일부
다행히 저 중 어떤 정보도 써먹을 일은 없었고, 노트에는 온갖 영수증과 티켓과 추억만 담아왔다.

 가물가물한 영어도 여행회화 중심으로 복습하고 간단한 이탈리아어도 배워갔다. 공부를 위한 공부가 아니어서 즐거웠다. 영어보다 발음구조가 단순하고 쉬운 이탈리아어는 지금도 재미있어서 기초 회화를 혼자 공부하고 있다. 언젠가 또 가서 제대로 말해보고 싶기도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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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의 생수는 NATURALE(네추랄레), 오른쪽 탄산수에는 FRIZZANTE(프리잔떼)라고 적혀있다.
탄산수를 원한다면 이렇게 외쳐보자. Aqua frizante, per favore(아쿠아 프리잔떼 페르파보레)

 여행 전날, 모든 준비는 완벽했다. 출발 전날에는 설렘이 넘쳐흘러 잠을 설쳤지만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일찍 공항에 도착해서 모든 것을 마치고 탑승 게이트에 도착했을 때는 이전 항공편 탑승이 채 마무리되기도 전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을 기점으로 마치 지구 반대편의 작은 나비 날갯짓이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나의 출국을 방해하는 것처럼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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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준비하며 구매했던 종이지도.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밀라노 지도는 나비효과로 인해 사용할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그 시작은 당시 뉴스에서 자주 접했던 중국의 사드 보복 이슈였다. 대체 이탈리아가 중국과 무슨 상관인가!!! 억울했다. 하지만 유럽행 비행기가 중국 항로를 지나야 하는데 중국이 허가를 내주지 않아서 출발 자체를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오후 1시 45분이던 출발 시각은 4시 30분으로 변경되었다. 몇 시간 후에는 하늘이 검어지면서 창밖으로 비가 오더니 중국의 기상 악화로 중국 항로가 폐쇄되었다며 오후 7시 30분에 출발한다는 방송까지 나왔다. (실제 이륙은 그보다 더 늦은 시간이었지만.)

 ‘대체 여행을 시작할 수는 있는 걸까?’ 싶었다. 가뜩이나 실감 나지 않던 여행이 허상인 것만 같고, 내 정신이 저 혼자 이륙하는 기분이었다. 일부 승객들이 술렁이며 승무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몇몇은 결국 비행기에서 내리고 그들의 위탁수하물도 빠졌다. 내 좌석 옆의 갤리에서 한 승무원이 본인의 숙소 예약을 변경하는 전화통화 하는 소리도 들렸다. 오후 5시가 넘어서 받은 첫 번째 기내식은 정말 얼떨떨한 기분으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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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예정된 12시간의 비행 + 출발지연 7시간 동안 먹은 기내식.
이 중 한 끼는 인천공항 활주로 위에서 먹었다.

 결국 [1] 첫날 오후 시간에 로마 경유에 매끄럽게 성공하고 저녁 9시쯤 밀라노에 도착해서 [2] 하루 숙박한 후, [3] 이튿날 이른 아침에 한가로이 밀라노 두오모 성당을 구경하고 [4] 오전에 피렌체로 출발하려던 야심 찬 일정이 하나도 빠짐없이, 완벽하게, 어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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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나지 못했던 밀라노 두오모. (이탈리아어로 대성당이 Duomo(두오모)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한 치 앞도 모르고 ‘환불 불가’로 예약해둔 첫날 숙소부터 밀라노에서 피렌체로 가는 이딸로 기차, 피렌체 도착 일정에 맞춰 입장시각을 지정했던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 예약까지 모조리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이 부분은 여행 후에 항공사에 보상을 요청했지만, 천재지변이 원인이라 보상대상이 아니라는 답변 외에 얻은 것은 없었다. 그 후로 약간의 트라우마가 생겨서 숙소는 꼭 ‘현지결제’로 예매한다.)

 결국, 첫날 저녁 밀라노 입성은커녕, 다음날 새벽에야 로마에 도착했다. 한 가지 위안은 나처럼 경유에 실패한 승객들에게 항공사에서 제공한 숙소가 매우 좋았다는 것. 가성비가 최우선이라 주로 도미토리를 이용했던 이후 숙소들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숙소가 만족스러웠던 덕분에 다음날 체크아웃할 때 온라인 결제방법을 설명해주려던 인턴이 성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무안해하지 않도록 차분하게 항공사에서 잡아준 숙소라는 사실을 설명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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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숙소 - 힐튼 가든 인 롬 에어포트(Hilton Graden Inn Rome Airport)
시내와는 멀지만, 공항호텔이라 셔틀로 공항을 오가기에 참 좋았다.
로마에서 고작 1시간 걸리는 밀라노행 국내선을 타기 위해 반나절 만에 수하물을 다시 부쳐야 했던
내 상황이 고달팠을 뿐.

 일정이 하루 늦어진 탓에 시간이 없어서, 밀라노는 공항에 도착해서 중앙역까지 가는 버스에서만 잠시 구경했다. 리나테 공항은 굉장히 아담했는데, 밀라노 중앙역은 엄청나게 컸다. 정말 컸다. 비로소 내가 다른 나라에 온 거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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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중앙역 플랫폼과 직접 찍은 사진과 영화 속 장면

 여행 준비하며 공부 삼아 봤던,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에 마지막 장면에 나왔던 기차역 플랫폼을 뒤로하고 제대로 여행을 시작했다. 나의 여정이 냉정과 열정, 어느 쪽으로 향하게 될지 떨리는 순간이었다.

 1편 [나비효과] 끝

 [다음편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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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 이소윤
입학홍보팀 직원
타고난 길치이지만 후천적 노력으로
부지런히 잘 돌아다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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