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봄의 향기가 물씬 나는 계절이 되었다. 여기저기 피어나는 화사한 꽃을 바라보면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지게 된다. 봄이 주는 행복은 언제나 그런 것인가 보다. 그리고 이 계절은 늘 새로운 의미를 우리에게 가져다준다. 새 학기, 새 만남, 새 출발, 듣기만 해도 상큼한 단어들이 떠오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대학교에 강의를 나갈 때면 첫 수업에서 반드시 한 가지 질문을 학생들에게 하게 되었다.
“여러분의 행복 점수를 100점 만점 기준으로 할 때 몇 점이나 될까요?”
조금은 식상한 질문을 매번 학생들에게 던지는 것은 까닭이 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유사한 답이, 그것도 믿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나쁜 점수가 나오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의 행복지수를 50점으로 제시한다. 더 놀라운 것은 무엇이 주어지면 행복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 구체적인 답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동일한 반응이 나올 것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같은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새 학기에는 새로운 답을 듣기 원하기 때문이다.
20대와 30대의 사망원인 1위는 결코 질병이 아니다. 교통사고 역시 아니다. 그것은 자살이다. 단군 이래 가장 부유한 시대라는 21세기 대한민국이 직면하고 있는 민낯이다. 연로한 누구는 더 살고 싶어 병원 속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는 동안, 우리 시대의 꽃다운 청춘들은 절망 속에서 삶의 극단적인 선택을 지금도 내리고 있는 것이다.
택시를 탈 때면 기사님들을 관찰하곤 한다. 딱히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일전에 강의를 하기 위해 학교로 가면서 택시를 탔다. 신형 그랜저를 모는 오십 대의 개인택시 기사님은 바람이 난 아내 때문에 너무도 힘들어하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수업 후 다른 학교로 이동하면서 만난 칠십 대의 법인택시 기사님은 연신 욕을 하시면서 차를 거칠게 모셨다. 자녀도, 아내도 다 곁을 떠나고 술 아니면 삶에서 낙이 없다고 했다. 은평구를 떠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주한 또 다른 법인택시 기사님은 아름다운 팝송 속에서 연신 즐거워하셨다. 아내와 내일 서해로 놀러 간다는 기사님은 환갑이 막 넘으셨다고 했다. 차에는 은은한 모과향이 가득했다. 이 분은 자신은 행복하며 성공했다고 자평했다. 같은 직업을 가진 분들이지만, 이들은 각자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곧 계절의 여왕이라는 오월이 다가온다. 가을의 울긋불긋한 단풍만큼이나 이 시절에 볼 수 있는 신록은 아름답다. 여러 해 전 사월에 설악산을 찾은 적이 있었다. 촉촉한 빗속에서 땀을 흘리며 올라간 금강굴에서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의상 대사를 비롯한 고승들이 치열한 수행을 하였다는 자그마한 동굴이 주는 감동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놀라운 것, 그것은 잔잔히 내리는 빗속에서 멀리 보이는 파란 동해바다, 그리고 온갖 연둣빛으로 가득 찬 신록의 아름다움이었다. 아,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은 거짓이었구나. 가지각색의 연둣빛, 초록색을 말로 형용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의 삶은 결코 동일할 수 없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서로가 다른 삶을 살기 때문에 각자의 인생은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없다면, 큰 성공을 해도 불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이들은 행복이라는 단어 자체를 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단코 선언할 수 있다. 행복과 성공은 전혀 다른 개념이라는 점을.
2018년의 이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 이 봄을, 이 계절을, 자연 속에서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 속에서 만끽하자.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두자. 조금 더 행복해지도록 노력하자. 그리고 행복과 성공의 거리를 좁혀 보자. 온몸을 적시는 비가 좀 내리면 어떠랴. 형형색색의 연둣빛으로 물들이면 그만인데.












